[트랜스 젠더] 여자의 인생…'천생여자' 진주

유준성(26ㆍ가명)씨의 요즘 이름은 ‘진주’다. 그는 전라남도 광주에서 1남3녀중 셋째로 태어 났다. 부모님에게는 금쪽 같이 귀한 외아들이었다.

언니와 여동생의 영향을 받은 탓이었을까. 진주는 막 대ㆍ소변을 가리기 시작한 3~4세 때부터 여자처럼 앉아서 소변을 봤다. 바지 보다는 치마 입기를 좋아했고, 특히 고무줄 놀이는 동네에서 첫손 꼽을 만큼 뛰어 났다.

엄한 부모님은 ‘언니와 여동생에 치여 잠시 그러겠지’ 하고 가볍게 넘겼다.

물론 진주 스스로도 왜 자신이 반 친구 중에 여자 보다는 남자 아이들이 더 좋고 멋지게 보이는 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진주는 보는 이가 없을 때면 꼭여자 화장실을 다녔다.

어쩔 수 없이 남자 화장실을 가더라도 좌변기가 있는 대변실로 가 앉아서 소변을 해결했다. 그것이 더 자연스러웠고 편했다.

여자처럼 다리를 꼬며 걷는 진주를 보고 학교 친구들은 ‘여자’ ‘미스 유’ ‘유 마담’ 이라 부르며 놀리곤 했다. 하지만 진주는 그것이 싫지가 않았다.


성 정체성에 의문, 정신적 방황에 빠져

중학교 시절 진주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사춘기를 겪지 않았다. 변성기도 없었다. 그래서 그의 목소리는 항상 여자처럼 낭랑했다. 그 때부터 공부 잘하고 잘생긴 반 친구 아이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쳐다보기 조차 힘들어 졌다.

그래서 어느 날인가는 사모하는 마음을 담은 러브레터를 보냈다가 오해를 받아 관계가 서먹서먹 해지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 하면서 그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긴 정신적 방황이 시작됐다.

“내 신체와 달리 내 마음과 정신 속에 또 다른 성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두려웠습니다. 스스로 ‘성적 돌연변이가 아닌가’ 비관해 수차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외아들 하나만을 바라보며 사는 부모님 생각에 차마 세상을 등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잡지에서 트랜스 젠더라는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됐고, 그때 우연히 같은 고민을 했던 선배 언니를 만났다. 당시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선배 언니(당시는 누나)는 ‘그것은 고민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여자라는 새로운 성으로, 새 삶을 살아야 할 선택의 문제’라는 충고를 받았다. 그리고 “졸업한 뒤에 카페에 나오라”는 격려를 받고는 매우 기뻤다.

“언니를 통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을 받았습니다. 여자로 살아가는 언니들을 보면서 ‘바로 이것이 내가 갈 유일한 길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집을 뛰쳐 나왔습니다. 당시 극한 절망 속에서 어쩔 수 없는 마지막 선택이었습니다”

집을 박차고 나와 처음 정착한 곳은 유흥주점의 종업원 이었다. 낮에는 호프집에서, 밤이 되면 가라오케에서 일을 했다. 이때부터 마음 놓고 여장을 하고 다녔다. 몸은 고단했지만 마음은 더 없이 행복했다. 그는 그 때 ‘평생을 여자로 살리라’는 다짐을 했다.

군대 문제는 우습게 마무리 됐다. 졸업 후 몇 달 뒤 신체검사 통지서가 날라왔다. 언니의 조언에 따라 그는 미니 스커트에 짙은 화장을 하고 신검장으로 갔다.

그 곳에서 그는 수위아저씨로부터 “오빠 때문에 왔니”, “호적이 잘못된 것 아니냐” 하는 말을 들었다. 결국 단 2시간만에 면제판정으로 병역 의무를 마무리 지었다. 6급 면제 판정의 이유는 ‘인격 장애’. 판정을 내리는 군의관이 “외국에는 나갈 수 있게 해 줄게” 하며 인심을 쓴 것이었다.


천성적 여자몸매ㆍ목소리, 완벽한 변신

진주는 그 후 서울과 광주 창원등의 카페와 단란 주점을 돌며 돈을 모았다. 메이크업, 미장원, 술집 종업원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리고 21살 되던 해 부산 동아대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수술실로 ‘아들’을 들여 보낸뒤 눈물을 훔치며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생각하며 진주는 수술대 위에서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비록 여자로 변하지만 부모님에게는 아들 못지 않은 자식이 되겠노라고’ 다짐하면서.

수술이 성공리에 끝나면서 그는 ‘이제야 완전한 여자로 살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너무도 기뻤다.

천성적으로 여성적인 몸매에 목소리까지 미성으로 타고나 주민등록증과 대조해 보지 않고는 같은 여자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여자로 변신했다. 그의 인생에 비로서 행복의 미소가 돌기 시작했다. 그는 한 남자와 뜨거운 사랑도 해봤으며, 원없이 화장하고 아슬아슬한 옷도 마음껏 입었다.

지난해부터는 그는 노래와 춤 장기를 살려 ‘하하호호’(이태원동 소재)라는 게이쇼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단란주점 같은 유흥업소 보다 수입은 적지만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어 마냥 즐겁다. 빼어난 외모와 노래 솜씨 덕에 이곳에서 그는 손님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다. 조만간 꿈이었던 개인 음반도 낼 계획이다.

“트랜스젠더는 상처 받은 영혼들입니다. 이 사회에서 마땅히 갈 곳이 없다보니 그늘진 곳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바람은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만 대해 줬으면 하는 것입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07/18 20:51


송영웅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