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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일본(67)] 야스쿠니진자(靖國神社)②

[재미있는 일본(67)] 야스쿠니진자(靖國神社)②

일본이 '종전기념일' 40주년을 맞은 85년 8월15일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당시 총리는 각료들을 이끌고 야스쿠니(靖國)신사에 공식 참배했다.

앞서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미키 다케오(三木武夫),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스즈키 젠코(鈴木善幸) 등 자민당출신의 역대 총리는 빠짐없이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다.

이중 8월15일의 참배는 패전 30주년인 75년 당시 미키 총리가 유일한 예였다. 자민당내 좌파로 분류될 정도였던 그의 참배는 상대적으로 우파의 압력이 더욱 심했던 때문이었다.

대신 그는 개인 자격으로 참배했다. 관용차를 쓰고, 경호원이 붙고, 방명록에 '내각 총리대신'이라고 직함을 적었지만 참배료를 공금으로 내지 않아 일본 정부 해석상 '공식' 참배에는 해당하지 않도록 했다. 더욱이 이때는 A급 전범이 합사되기 전이었다.

나카소네 총리의 참배는 78년 A급 전범 합사 이후, 그것도 8월15일에 이뤄진 최초의 공식참배였다. 종교색을 띠면 헌법의 정교분리 규정에 위배된다는 고려에서 두 번 고개를 숙이고, 두 번 박수를 치고,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는 신도식 참배의식을 피해 그냥 고개만 숙였지만 참배료를 공금으로 지출, 공식참배의 분명한 징표로 삼았다.

'전후정치 총결산'과 '신국가주의'를 외친 그는 야스쿠니 공식 참배에 앞서 자민당 수련회에서 이렇게 밝혔다.

현재 한중 양국과의 외교 마찰의 불씨가 된 중학교용 역사교과서를 편찬한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그에 앞서 기존 교과서의 역사 인식을 마구 비판해 온 '자유주의 사관연구회'의 주장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전전(戰前)에는 황국사관이 있었다. 전쟁에 진 후 태평양전쟁 사관, 즉 도쿄(東京)재판 사관이나타났다. 연합국의 법률로 문명과 평화, 인도의 이름으로 일본을 심판했다. 이는 역사가 최종적으로 판정을 내릴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모두 나빴다는 자학적 사상이 뒤덮었고 지금도 남아 있다. 일본의 나쁜 점, 전전의 나쁜 점을 쓰기만 하면 된다는 풍조가 있었다. 나는 반대다. 이기든 지든 국가이다. 영광과 오욕을 함께 하는 것이 국민이다. 오욕을 버리고 영광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국가와 국민의 참모습이다."

긴장속에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했던 한중 양국은 공식 참배에 즉각 반발했다. 타고 난 국가주의자인 그도 이듬해에는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포기해야 했다.

그 이후 일본 총리들은 8월15일의 공식 참배는 커녕 평일의 개인 참배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일본유족회 회장을 지낸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전총리가 96년 자신의 생일날에 개인 자격으로 참배한 것이 고작이다.

'다함께 야스쿠니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등 보수파들의 공식 참배 주장은 계속됐지만 일본 정부는 움직이지 않았다.

98년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 등장 이후 이런 분위기에 변화가 찾아 들었다. 우파는 이른바 '국립묘지론'을 들고 나왔다. 어느 나라나 국립묘지에 묻힌 전몰자를 추모하는 만큼 기능이 비슷한 야스쿠니신사에 공식적으로 참배하자는 주장이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 여당은 한때 A급 전범의 위패를 다른 곳으로 옮겨 한중 양국의 반발을 피하자는 '분사론'(分祀論)도 일었다.

야스쿠니신사는 이에 반대했다. 사자(死者)의 영혼을 신으로 섬기는 신도의 교의상 합사된 신을 함부로 옮길 수 없다는 이유였다.

야당은 국립 '치도리가후치'(千鳥ケ淵) 전몰자 묘역에 추모 시설을 만들자는 대안을 내놓았다. 야스쿠니신사바로 아래, 황궁의 해자를 내려보는 언덕 기슭에 자리잡은 무명 전몰자의 묘역이다.

여기에 추모시설을 만들어 야스쿠니신사를 대체할 가능성은 당분간 희박하다. 유체를 묻는 '우메바카'(埋墓)와 제사를 지내는 '마이리바카'(詣墓)를 따로 두는 양묘제(兩墓制)의 풍습상 묘지가 추모시설이 될 수 없다는 우파의 주장은 핑계로 칠 수 있다.

야스쿠니신사의 전몰자 추도 기능에 익숙한 일본 국민의 정서, 특히 유족회의 특별한 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야 할 필요성이 보다 근본적인 이유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의 8월15일 참배 계획을 둘러싸고 A급 전범 분사나 국립묘지 조성론이 다시 일고 있지만 과거의 예로 보아 어느 것도 실현을 점치기 어렵다.

따라서 역사의 기억이 남아 있는 한 야스쿠니신사는 한일, 중일간의 영원한 갈등요인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

입력시간 2001/07/18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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