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우익으로 가는 일본] 일본 군비증강, 동북아 긴장 부채질

중기방위력 정비계획, 중·대만·러시아 등 주변국 자극

역사 교과서 문제와 야스쿠니(靖國)신사 문제로 한중 양국의 대일 경계심이 크게 부풀고 있다.

중국이 공산당정권 특유의 '군국주의'라는 용어를 써 가며 일본의 보수 우경화를 경고하는 것은 물론 한국에서도 우경화, 군사 대국화를 경계하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7월6일 일본의 2001년도 방위백서가 각의를 통과한 것과 관련, 구미와 일본 언론은 최초로 등장한 중국의 군비 증강 우려, 중국 대만의 전력 비교, 집단적 자위권 검토, 전역미사일 방어(TMD) 배치 검토 등의 내용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이런 정세 분석보다는 2001~2005년도의 중기방위력 정비계획(중기방)의 내용에 치중했다. 지난해 12월 15일 각의를 통과, 확정될 당시는 특별한 관심을 끌지 못했던 내용이다. '구문'(舊聞)이 새롭게 포장된 것은 일본을 보는 우리 여론이 한쪽으로 급히 쏠리고 있음을 반영했다.


공중급유기 도입 등 '전수방위'에 변화

중기방은 총액 25조 1,600억엔 규모에 달해 95~2000년도보다 9,300억엔이 늘어났다.

그러나 연평균신장률은 86년도에 중기방이 책정되기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0.7%에 머물렀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 자위관의 정년 퇴직이 한꺼번에 몰리는 등의 요인에 따라 인건비와 급양비가 현행 중기방보다 7,200억엔 늘어난 11조1,100억엔에 달했다.

시설과 장비 유지비 등을 제외한 장비비는 4조엔으로 현행 중기방과 같은 수준이다. 재정구조 개혁 노선을 택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다른 예산과 마찬가지로 방위비도 감축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적어도 중기방의 규모에서는 변화를 찾기 어렵다.

그러나 중기방의 구체적인 장비 조달 계획은 이런 겉모습과는 딴판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900억엔을 들여 공중급유기 4대를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일본이 표방한 전수방위의 내용과 범위가 크게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다.

72년 10월31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당시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총리는 이렇게 밝혔다.

"전수방위 또는 전수방어라는 것은 방위상 필요하더라도 상대국의 기지를 공격하지 않고 오직 자국 영토 및 그 주변에 대해서만 방위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방위의 기본적 방침이며 이런 사고방식을 바꾸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그는 또 공중급유기 문제에 대해 ①공중급유는 하지 않는다 ②공중급유기는 보유하지 않는다 ③공중급유기의 연습, 훈련도 하지 않는다는 '공중급유기 3원칙'을 천명했다.

이에 따라 항공자위대 F4 전투기의 공중급유장치를 지상 급유장치로 개조하는 한편 F4 전투기의 뛰어난 대지 공격능력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대지 폭격 장치를 부착하지 않도록 했다.

그것이 현재 항공자위대의 주력 전투기가 돼 있는 F15의 도입과 관련한 78년 3월4일의 국회 답변에서 일본 정부는 ①F4에 비해 행동반경이 크나 대지공격보다는 공중전 능력이 주안점이다 ②80년대 중반 이후 주력전투기가 되면 공중 경계대기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돼 공중 급유 장치는 남긴다는 견해로 바뀌었다.

이때 처음 등장한 '공중 경계대기'(CAP)라는 개념은 지금도 공중 급유기 도입에 대한 방위청의 핵심 논리가 되고 있다.


장거리 공대지 공격능력 보유

방위백서는 '요격 전투기를 사전에 공중에 대기시켜 목표 발견후 곧바로 요격할 수 있는 태세가 필요 불가결하다'고 적었다. 방위청은 자위대기의 대지 공격 능력이 한정적이어서 비행 반경이 커지더라도 타국에 대한 위협을 부르지는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지금까지 공중급유기는 공중 경계대기보다는 장거리 폭격과 전투 비행에 주로 이용됐던 경험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91년 걸프전쟁 당시 아오모리(靑森)현미사와(三澤)기지의 미공군 F16기가 공중급유를 통해 이라크 공격에 참가했고, 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코소보 폭격 당시에는 미본토의 스텔스폭격기가 공중급유기의 도움으로 폭격에 참가, 무착륙 왕복한 바 있다.

중기방에 따라 항공자위대가 보유한 전투기와 전폭기 구성 비율이 상당한 변화를 겪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중급유기의위협은 더욱 커진다. 항공자위대는 현재 주력전투기인 F15 203대, F4 104대를 갖고 있다.

또 대지 공격 능력을 갖춘 지원전투기 F1이 46대, F16에 일본 독자기술을 덧붙여 개발한 차세대 지원전투기 F2 23대를 보유하고 있다.

중기방에는 F15 12대의 개량과 F2 47대의 추가 배치가 포함돼 있다. F2의 추가 배치로 대지 공격 능력을 갖춘 전투기가 116대로 늘어 난다. 언제든 폭격 및 공중급유 장치를 회복할 수 있는 F4의 잠재력을 고려하면 사실상 220대의 전투기가 장거리 대지 공격 능력을 갖추는 셈이다.

공중급유기 도입과 함께 주목되는 것은 해상자위대의 전력 증강이다. 해상자위대는 중기방 기간에 호위함 5척과 잠수함 5척을 포함한 25척의 함정 건조에 착수하고 대잠 초계용 헬리콥터 SH60 개량형 37대와 소해·수송용 헬리콥터 2대를 도입한다. 대잠초계기 P3C의 후계기 개발에도 3,400억엔을 들인다.

2009년까지 배치가 끝날 호위함은 재래형 1척(4,600톤)과 미사일호위함(DDG·7,700톤) 2척, 헬리콥터 탑재 호위함(DDH·1만3,500톤) 2척이다.

미사일 호위함은 개량 이지스함으로 전역미사일 방어(TMD) 구상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 스텔스 기능을 고려하고 헬리콥터 2대분의 격납고도 갖추어 앞으로 일본 이지스호위함의 표준형이 될 전망이다.

기존의 2척을 대체할 신형 헬리콥터탑재 호위함은 SH60 3대와 소해용 헬리콥터 등 4대를 탑재할 수 있다. 대형 갑판을 갖춘 수송함 '오스미'(8,900톤)가 갑판 보강 등을 거치면 언제든 준항모로 변신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듯 수직 이착륙기 탑재가 가능한 신형 DDH 2척도 주변국의 경계를 자극할 만하다.


행상·항공전력 강화, 주변국 긴장

중기방은 안 그래도 실질적으로는 동북아 최강으로 여겨져 온 일본의 해상·항공 전력의 강화를 예고 한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평가되는 해상자위대의 대잠 초계 능력이 더욱 커질 것이란 점에서 뒤늦게 해상 전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국의 발걸음을 재촉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가지고 곧바로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거론하기는 어렵다. 특히 과거의 침략을 염두에 둔 군사 대국화 우려는 객관적 정세와는 거리가 있다.

80년대 중반부터 끊임없이 제기돼 온 그런 우려를 막아 온 것은 다름 아닌 미일 안보체제였다. 자위대의 꾸준한 역할증대도 미일 안보체제의 틀안에서 이뤄져 왔으며 그 틀은 조금도 약화하지 않고 있다.

현대 전력의 핵심인 독자적 핵·미사일 전력을 갖추지 못했고, 설사 갖추더라도 국토가 협소한 기본 조건상 전략적 의미를 갖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일본의 군사 위협은 한정돼 있다.

무엇보다 동북아 지역의 전반적 경제 발전과 전력 증강의 결과 구한말 당시 일본이 누릴 수 있었던 절대적 우위는 아득한 옛날 얘기가 됐고 이런 정세의 극적인 변화 요인은 찾기 어렵다.

다만 일본의 군비 증강과 미일 안보체제의 강화가 곧바로 중국을 자극, 대만의 즉각적 대응과 러시아의 장기적극동 전력 회복을 불러 한반도에 미칠 압력이 커질 조짐은 뚜렷하다.

오히려 그것이 일본의 군비 증강에 대한 진정한 우려가 돼야 할 것이다. 또한 중국의 군비 증강이 이미 일본 변수를 넘어 미국 변수와 직접 맞물리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에 집중된 우려의 분산은 보다 균형잡힌 정세분석을 가능하게할 것이다.

도쿄=황영식특파원

입력시간 2001/07/19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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