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LP여행] HE5·HE6(下)

멤버들의 독립과 수입문제로 흔들렸던 H5. 고별공연으로 해체의 수순을 밟는 듯 했지만 오히려 멤버 보강작업을 가하며 더욱 탄탄한 HE6로 거듭났다.

이때가 1970년초. 창립자 한웅은 서울미대 여학생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유영춘은 영사운드를 창립하며 독립했다. 이들의 공백은 남성 포크듀오 투에이스의 오승근과 홍순백이 메워보려했지만 음악적 이질감으로 이내 탈퇴, 그 자리를 미키즈의 리드보컬 이영덕과 절친한 친구인 세컨 기타 김용중이 자리했다.

여기에 송민영악단에서 활동하던 플룻 섹소폰주자 유상윤까지 가세하며 6인의 새로운 라인업, HE6 오리지널 멤버가 구성되었다. 1집발표후 세컨기타 김용중은 재즈쪽으로 음악변신을 해 최헌이 세컨기타겸 보컬로 1970년 후반에 영입되었다.

HE6의 주무대는 명동의 오비스 캐빈. 당시 이곳은 2층엔 포크, 3층에 선록을 연주했던 전문 음악감상실로 젊은이들의 명소로 명성이 자자했다. 3층입구에 걸려있던 실물크기의 대형 캐리커쳐.

바로 오비스캐빈의 대표 록그룹 HE6멤버들의 연주모습이였다. HE6는 콘서트형식으로만 연주할 뿐, 당시 유행하던 고고장의 전속밴드화하는 것을 경계했다.

닐바나 등 최고급 GOGO클럽 등에서 고액의 개런티로 유혹했지만 고집스레 원칙을 지켜 나갔다. 이미 30년전에 '사운드를 받쳐주지 못하고 음악적 컨셉이 아닌 오락위주의 TV프로그램엔 출연하지 않겠다'는 거부선언을 했던 HE6.

이런 자존심은 대학생들과 젊은층의 절대적 지지와 호응을 이끌어냈다. 미디어매체보다는 팬들과의직접적인 대면을 선호했던 이들은 전국대학가를 돌며 순회공연까지 벌였다.

1970년 춘천의 성심여대 공연때는 강의실 책상에 멤버 이름이 도배되어 있었을 정도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이들은 기성세대들이 장발문화를 주도했던 대부분 록그룹들을 퇴폐의 주범으로 단속했던 것과는 달리 짧은 머리 깔끔한 복장으로 오히려 사랑받았던 특이한 그룹이었다.

69년부터 3년간 개최되었던 전국그룹사운드 경연대회. 록그룹의 발전을 불러왔던 이 대회는 장안의 화제였다.

특히 후기 키보이스와 HE5, 6의 정상다툼은 그룹사운드시대의 열기를 한껏 달아오르게 했다. 1회 플레이보이배때는 키보이스가 정상을 차지했고 2회대회와 주최사가 교체된 71년 1회 선데이서울컵에서는 HE6가 연달아 그랑프리를 차지했다.

김홍탁은 개인연주상을 수상하며 절정의 기량을 뽐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대회에 참가한 3인조 '김트리오'의 리드싱어 조용필의 가수왕 수상 사실이다.

HE6의 첫음반 . 창작곡 '초원의 사랑', '말하라 사랑이 어떻게 왔는 가를' 등은 록사운드의 대중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던 히트곡들. 2집 은 최고급 워커힐 빌라를 빌려 합숙훈련하며 발표해 다른 그룹들의 부러움을 샀던 앨범이다.

2집의 히트곡은 상큼한 감각의 '물새의 노래', '초원의빛'. 3집 은 HE6가 대중적인기에만 연연한 그룹이 아님을 증명하는 불후의 연주명반이다.

마치 한국의 산타나를 연상시키는 타악기와 플룻등이 가미된 프로그레시브한 창작사운드는 신중현의 연주곡집들보다 훨씬 더 음악적으로 앞선 환상적 음악세계를 유감없이 펼쳐 보인다.

특히 오비스캐빈 입구에 걸려있던 멤버들의 연주모습 캐리커쳐가 수록된 귀한 음반이기도 하다. 리더 김홍탁은 "우리가락과 록을 접목한 창작연주음반이 한 장 더 있었음'을 귀띔해 준다.

5집 는 불후의 명곡 '당신을 몰라'가 수록된 HE6 음악의 결정판.

최헌이 들려주는 허스키하면서 맛깔난 보컬이 돋보이는 이 음반은 마니아들이 가장 선호하는 희귀음반이기도 하다.

특히 14분28초라는 초유의 롱버전 번안곡 '아름다운 인형(GetReady)'은 RARE EARTH의 원곡을 능가하는 재해석 능력을 발휘했다.

72년 가을, 리더 김홍탁은 본고장의 음악을 체험하고 익히기 위해 미국샌프란시스코 베이 재즈아카데미로 유학길에 올랐다. HE6는 정훈희의 오빠 정희택을 영입하며 다시 HE5로 돌아갔지만 더 이상의 영화를 누리지는 못하고 최헌의 그룹창립을 위한 독립과 더불어 사라져갔다.

음악인생 40년을 앞둔 김홍탁은 현재 서울재즈아카데미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요즘 그는 '한국록 명예의 전당 건립과 우수 록그룹시상식 제정'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한국록그룹협회도 조만간 재발족될 예정'임을 전해주는 그의 표정에서 한국록의 부활을 위한 작은 꿈틀거림이 느껴진다.

뒤늦었지만 신중현은 업적에 걸맞는 재평가를 받고 있듯, 탄탄한 팀웍에서 일궈낸 음악적 실험성과 그룹사운드시대를 만개시켰던 HE6도 한국을 대표하는 록그룹으로 재평가 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입력시간 2001/07/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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