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정국의 선봉에 선 여야 4인 전사

언론사 세무조사 및 검찰의 탈세수사를 둘러싼 여당과 야당의 공방이 한달동안 계속되면서 각 당의 ‘창’과 ‘방패’를 자처하는 전사들이 수면위로 급부상했다. 각 당의 선봉장으로 떠오른 인물은 민주당의 노무현 상임고문, 김근태 최고위원과 한나라당의 홍사덕 전 국회부의장, 박종웅 의원 등 4명.

이들 ‘4인방’은 각각 ‘언론개혁’과‘언론 말살음모 분쇄’라는 상반된 기치를 내걸고 한치의 양보도 없이 각종 당내 회의 및 포럼,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전방위적인 난타전을 벌이고 있다.

당 안팎에서는 “이들의 설전을 보고 있노라면 같은 하늘을 이고 도저히 살 수 없는 ‘적을 겨냥한 듯한 살기마저 느껴진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중 민주당 노 고문은 수개월전부터 언론개혁의 전도사로 나서 적극적인 대야 공세로 당내 개혁파의 확실한 리더로 자리잡았다. 그는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이던 지난 2월 “언론과의 전쟁선포도 불사해야 한다”고 포문을 열더니 이틀 뒤“‘조폭적 언론’이라는 말에 공감한다”며 본격적인 언론개혁을 주창하기 시작했다.


노무현, 실리명분 얻으며 전면전

노 고문은 특히 언론사중 조선일보와 사력을 다한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지난달 28일 민주당보 인터뷰에서 “조선일보는 이미 신문도, 언론도 아니며, 수구세력의 선봉이자, 이회창 총재의 기관지”라고 몰아 세우고, 1일에는 “조선일보는 ‘한나라당 이회창총재의 대통령 만들기’구상을 갖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날을 세웠다.

노 고문은 조선일보를 비판하는 이유에 대해 “조선일보가 개혁 저지세력으로서 수구적 본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들은 일제 때 친일을 하고 군사독재와 결탁해 민주화 열망과 서민의 권리를 억압하는 대신 특권과 특혜를 누렸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보수언론과의 전면전을 꺼리는 것과 달리 노 고문이 조선일보와 집요하게 싸우는 데 대해 정치권 안팎에서는 ‘실리’와 ‘명분’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우선 노고문과 조선일보간의 개인적 악연이다. 그는 92년 14대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인권변호사이면서도 노.사 양쪽에서 돈을 챙긴다”는 등의 (주간조선) 보도로 피해를 봤다고 한다. 나중에 소송을 내 승소하긴 했지만, 당시 선거에서 경쟁후보쪽은 이 주간지를 대량으로 뿌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노 고문도 싸움에 따른 피해가 만만치 않다. 그의 극단적인 발언을 두고(조선일보)가 지면을 통해 비판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부 신문들도 그리 우호적이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것은 나름대로 당내 대선후보 경선 등에서 정치적 실리와 승산 따위가 엿보이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한 측근은 “민주당원들은 평민당 시절 이래 색깔 시비등에 시달려오면서 조선일보에 앙금이 남아있었다”면서 “이 대목을 노 고문이 정면으로 언급하자 통쾌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근태, 합리적 전투로 이미지 제고

노 고문이 다소 ‘직설적’이라면 민주당 김근태 최고위원은 ‘합리’적인 방식으로 언론비판 대열에 가세, 노고문과 당내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다. 방송 토론 등을 통해 논리정연하고 차분한 말솜씨로 ‘조세정의’를 강조하는가 하면 각종 포럼 등을 통해 각계 사회ㆍ시민단체와의 연대를 모색하는 등 다각도로 전선을 펼치고 있다.

당안팎에서는 김 위원의 경우 재야 시절의 ‘투사’이미지가 일반인들에게 지나치게 각인된 점을 우려, 이를 탈피하기 위한 ‘이미지 메이킹’차원의 전술로 보고 있다.

김 위원은 지난 6월25일 당확대 간부회의에서 “언론자유는 국민의 알 권리 신장과보장을 위해 필요하다”며 “권위주의 정권과 더불어 언론사 사주가 이에 부담과 장애를 조성한 측면이 있었다”고 언론사주들을 정면으로 질타했다.

또 지난 3일 당 확대간부회의에서는 “최근 언론세무조사 문제에 대한 언론의 보도를 보면 일부 언론들이 사주의 사법처리를 예상하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사용하고 있다”며 확고하고 단호한 대응조치를 취할 것을 당지도부에 강력하게 촉구하기도 했다.

지난 19일에는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한반도 재단’ 주최로 ‘언론개혁과 한국의 미래’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언론개혁을 위한 제도적, 법적 방안을 집중 논의했다.

이 토론회에서 민주당 이미경 제3정조위원장은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의 유착이 차기정권창출까지 이어진다면 과거보다 더욱 심각한 권언유착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며 현행 여론독과점 현상의 해소를 위해 중소규모 언론사에 대한 각종면세혜택과 신문 공동판매제 도입시 장려금 지원을 촉구했다. 단지 말로만 외치는 언론개혁이 아니라, 제도가 뒷받침되는 실질적인 방안을 찾겠다는 김위원의 의중이 반영된 셈이다.

김 대통령은 최근 김 위원을 불러 “잘하고 있다”며 격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에서 지지기반이 약한 그에게는이 방법이 김 대통령의 신임을 얻는 대선전략이자 승부수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홍사덕, 색깔론 등으로 여권에 집중포화

민주당의 방패를 뚫기 위한 한나라당의 서슬퍼런 ‘창’가운데 돋보이는 인물은 홍사덕전 국회부의장이다. 그는 언론정국의 와중에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이용, 여권에 집중포화를 쏟아붓고 있다.

지난달 ‘5,056억원과 헌법 제1조’를 제 1탄으로 ‘대통령을 속이는 사람들’, ‘언론이 한 목소리만 낸다면 더 이상 민주공화국이 아니다’는 시리즈를 잇따라 실어 언론사 세무조사를 신랄하고 집요하게 비난했다.

특히 ‘언론사 세무조사-보수언론 목조르기-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 사전정지용’이라는 ‘색깔론’을 제기, 정국을 한바탕 소용돌이로 몰아넣기까지 했다.

현 정권의 언론압살은 정권 연장 이상의 목적이 있는 것으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에 가장 걸림돌이 되고 있는 비판적 언론을 무력화시킨뒤 답방을 실현시키고, 남북관계의 대대적인 변화를 통해 정치판을 뒤엎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민주당으로부터 ‘국기를 흔드는 망언’‘안기부연락병’ 등 격한 비난이 쏟아졌지만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오히려 그의 발언은 민주당 외곽연구소인 새시

대전략연구소의 ‘통일헌법’논의와 맞물려 더욱 증폭됐다. 그는 “현 정권이 김정일위원장 답방후 통일헌법 개헌 등을 시도할 것이며, 언론계 재편과 야당 흔들기에 이은 정계개편을 통해 장기집권을 노릴 가능성이 크다”고 민주당을 거세게 몰아부쳤다.

또 지난 16일에는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의 부인 안경희 여사의 별세와 관련‘국격(國格)을 위해’라는 글을 올려 현 정권에 직격탄을 가했다. 내용은 “이건 투신자살이 아니라 권력의 살인이다. 권력은 밝히고 통회해야 한다. 무엇을 얼마나 모질게 파헤치고 괴롭혔는지, 그 행태와 목적을 밝히고 통회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홍 전 부의장이 이처럼 당내에서 ‘선명성’을 내보이는 것은 차기 서울시장 출마를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관측이 많다.

실제로 그는 지난 12일 서울시장 출마여부에 대해 “이회창 총재의 뜻이 가장 중요하다”면서도 “최근 한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여야를 통틀어 내가 가장 앞서 있고, 여권의 여론조사에서도 내가 여권의 유력후보 보다 앞서는 것으로 나와 청와대가 고민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박종웅, 특유의 독설로 스포트라이트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변인 격인 한나라당 박종웅 의원은 첨예한 여야 대치정국에서 상대방의 폐부를 찌르는 ‘독설’로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이번 언론 사태를 두고“독재자 김대중씨가 음모를 꾸민 재집권 쿠데타의 서막”이라고 독설을 퍼부은 것과 궤를 같이 한다.

특히 그는 언론사 세무조사를 막후에서 조종한현 정권의 배후세력 실체 여부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가 하면 국세청장과 검찰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연일 거센 공세를 펼치고 있다.

박 의원은 지난달 25일 김한길 문화관광부장관을 출석시킨 가운데 열린 국회 문광위에서 “언론사 세무조사가 (여권에서 작성한) 언론문건 시나리오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며 “청와대 모수석 비서관과 여권의 모관계자들이 참여한 대책팀이 있다는데 사실이냐”고 따졌다.

1일에는 국정홍보처가 국제언론인협회(IPI)에 보냈던 공개질의서와 관련, “국정홍보처를 정권홍보처로 전락시키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침해하는 위법행위와 권력남용을 일삼는 국정홍보처장을 즉각 문책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급기야 지난 18일 국회 본회의장 긴급현안질문에서는 원색적이고 인신공격적인 발언으로 여당의원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다.

“이번 언론탄압공작은 김대중 대통령이 총감독,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이 총괄한 것”이라며 “국민들 사이에선 김대중대통령이 노벨평화상 대신 노벨독재상, 노벨언론 탄압상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고 주장했던 것.

심지어 이미 무혐의처분이 내려진 DJ의 비자금및 외화도피 문제 등을 언론사주에 대한 검찰 조사와 비교하며 언론세무조사의 부당성을 지적하기까지 했다.

이들 4인방 주장의 시비(是非)에 대해서는 당안팎에서도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린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들의 불꽃튀는 공방이 앞으로 검찰 수사 이후 열리게 될 국회 국정조사에서도 계속돼 올 가을 정국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워질 것이라는 점이다.

박정철 정치부 기자

입력시간 2001/07/24 20:02


박정철 정치부 parkjc@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