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달라지고 정치판이 달라진다

1인1표제 손질 불가피, 정치권 득실계산 분주

국회의원 선거가 달라진다. 달라지는 의원 선거는 정치판에도 변화를 가져온다.

현행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이 규정하고 있는 비례대표 의석 배분방식과 기탁금 납부 조항에 대해 위헌결정이, ‘1인1표제’에 대해선 한정위헌 결정이 7월19일 헌법재판소에서 내려졌기 때문이다.

현행 비례대표 배분과 1인1표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은 지난 40여년간유지돼온 선거제도 골격의 일대변화를 의미한다. 각 정당들은 위헌 결정이 가져올 파장과 자당에 미치는 유ㆍ불리를 저울질하며 자체 선거법 개정안 마련에 나서는 등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위헌결정에 따라 기탁금 납부제는 10월 보궐 선거부터 폐지돼야 하지만 여야협상으로 개정되는 선거법은 3년후 실시되는 17대 총선 때부터 적용된다.

하지만 선거제도 변화를 감안한 정당간 제휴전략의 변화나 군소정당의 입지확대, 정치지망생들의 대거 등장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내년 대통령선거 구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국민기본권 확대, 군소정당 입지 넓어져

헙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은 선거권과 피선거권 등 국민의 기본권을 대폭 확대시킨 것이다.

헌재 전원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현행 1인1표제하에서의 비례대표제 배분방식은 유권자의 정당지지와 후보자 지지가 엇갈릴 경우 절반의 선택권을 박탈당할 수 밖에 없고 비례대표 의원 선출도 정당의 명부작성 행위에 따라 결정돼 직접선거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현행 비례대표제는 또 유권자인 국민들의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권을 침해하고 무소속 후보자에게 투표하는 유권자를 차별,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 고 말했다.

재판부는 기탁금조항에 대해서도 "기탁금은 불성실한 입후보 차단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 액수로 결정돼야 하고 국민의 피선거권을 제한해서는 안된다"며 "현행 선거법상 2,000만원의 후보자 기탁금은 일반국민의 경제력으로는 손쉽게 조달할 수 없는 금액이고 반환기준도 과도하게 높아 후보자의 입후보를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탁금액의 위헌성은 89년 9월 국회의원 지역구후보자등록 신청에2,000만원(정당은 1,000만원)을 기탁하도록 했던 옛 대통령선거법 제33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이번 위헌결정으로 ▲입후보시 2,000만원의 기탁금을 납부토록한 선거법 조항중 국회의원 관련부분 ▲지역구 국회의원선거의 득표비율에 따라 비례대표의석을 배분토록 한 조항은 자동으로 효력을 상실하게 됐다.

또 한정위헌이 내려진 `1인1표제'를 규정한 선거법 제146조 제2항은 향후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1인2표제'로 개정해야 하는 만큼 현행 선거법 개정이 불가피해졌다.


정치개혁 앞당기는 계기 될 둣

헌재의 위헌 결정은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정치개혁을 한걸음 앞당기는 계기가될 것이다. 위헌 결정으로 일어날 수 있는 변화들을 다양하다.

선거제도 변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서 가장 큰 변화가 불가피한 것이 1인1표제하의 비례대표제(전국구제)다.

전국구제를 아예 없애면 1인1표제 위헌 시비를 피할 수 있으나 각계 전문가의 정치권 진출 창구로 활용돼온 제도 자체를 폐지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1인2표제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16대 총선전 당론으로 주장했던 이 방식의 도입을 추진할 뜻을밝힌 상태고,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헌재 결정에 불만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선거제도의 변경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한나라당도 16대 총선을 앞두고 99년 여야간 선거법 개정협상 과정에서 1인2투표제를 수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이러한 투표방식과 의석배분 방식의 변화 논의를 계기로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될 수 있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유권자가 적은 농촌과 많은 도시지역의 표의 등가성 문제로 위헌시비가 있어왔다.

그러나 여야가 조기에 선거법 개정에 합의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역대 선거법 협상을 보면 여야 모두 제도변화에 따른 유ㆍ불리를 따지느라 예외없이 선거에 임박해서야 절충이 이뤄졌다.

정치권 구도 변화= 1인2투표제가 채택되더라도 비례대표 선출방식이 폐쇄형 정당명부식이 될지, 개방형 명부식이 될지, 혹은 전국단위가 될지 권역단위가 될지 변형이 많기 때문에 여야 정당관계자들은 섣부른 예단을 못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군소정당의 입지가 넓어진다는 점이다. 때문에 민주노동당민국당 등 현 군소정당의 원내진출 가능성이 높아지고, 특정이념이나 이익에 기반한 군소정당의 창당도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원내정당의 다양화, 군소정당의 난립 등 긍정ㆍ부정적인 측면을 함께 안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군소정당 입지강화는 당장 내년 지방선거와 대선때 신생정당들의 출현을 촉진할 가능성도 있다.

지역구도 완화= 1인2표제의 긍정적 효과로 지역구도의 완화를 예상할 수있다.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현 정당구도에서도 영남에서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이, 호남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이 각각 당선될 수 있어 정당의 지역분할 구도를 완화할 수 있다.

99년 선거법 개정 협상 때 여당총무로서 1인2표제를 주장했던 민주당 박상천최고위원은 “1인2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독일의 경우 지역구 의원에 대한 투표와 비례대표 의원에 대한 투표의 정당이 일치하지 않는 비율이 15%로 알려졌다”며 “한국의 경우 이념투표 성향이 작은 점과 동양인 특유의 인정 문화를 감안하면 이러한 상이율이 30%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당제휴와 연합공천= 1인2표제는 더 크게는 정당간 선거연합을 더욱 용이하게하는 효과도 예상된다. 1인2표제가 도입되면 정당차원에서 전국구 의석을 의식, 전국적인 득표율을 올리기 위해 모든 선거구에 후보를 내려는 ‘욕심’을 자제함으로써 연합공천이 더욱 쉬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97년 대선에서 처음 시도된 정당간 연합인 DJP선거공조가 지난해 4ㆍ13 총선에선 민주당과 자민련간 이해의 정면충돌로 무산된 것은 바로 전국적인 득표율 욕심 때문이었다.

후보자 기탁금제 완화= 경제적 능력이 떨어지는 후보자들의 출마요건이 완화돼 군소정당과 그간 원내 진입에 번번이 실패한 진보정파 등의 원내진입 장벽이 낮아지는 효과가 기대된다. 정치지망생에게도 문호가 넓어졌다.

헌재가 현행 선거법상 2,000만원에 달하는 후보자의 기탁금을 과도하다고 봤을 뿐아니라 반환기준이 되는 득표율도 높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헌재는 일반 국민의 경제력으로는 피선거권 행사를 위해 손쉽게 조달 할 수 없는 과도한 기탁금은 아무리 훌륭한 자질을 갖추고 있다 해도 입후보를 사실상 봉쇄당하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하며 서민층과 젊은 세대를 대표할 인사를 국회에 진출시키지 못하는 모순을 낳는다고 판단했다.

민주노동당은 헌재결정 직후 “기탁금 위헌결정은 기성정당들이 기탁금을 1,000만원에서 2,000만원으로 올려 기득권을 지키고 신진세력의 진입을 봉쇄하려했던 추악한 야합에 대한 경고”라며 기탁금 폐지입법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여야는 헌재결정으로 기탁금 수준을 대폭 낮추거나 반환기준이 되는 득표율을 하향 조정하는 방향으로 절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탁금 납부제는 헌재 결정과 동시에 효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당장 오는 10월 열릴재ㆍ보궐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돼 선거전까지 기탁금 납부에 대한 새 법률을 만들지 않으면 기탁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


비례대표제 변천사

총선에서 비례대표제가 처음 도입된 것은 3공화국 때인 제6대 국회. 5ㆍ16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세력은 선거법 개정을 통해 전체 의석의 4분의 1(44명)을 비례대표제로 선출토록 했고, 지역구 선거에서의 정당간 득표비율을 배정기준으로 삼았다.

전국구 배분은 제1당의 득표율이 50%를 넘으면 전국구 의석의 3분의 2를 넘지않는 선에서 득표율에 따라, 득표율이 50% 미만이면 득표율에 관계없이 전국구 의석의 2분의 1을 배정받도록 하는 등 제1당에 유리하도록 했다.

이같은 비례대표제와 배분방식은 8대총선까지 전국구 의원수가 51명으로 늘기는 했지만 그대로 유지됐다.

그러나 10월 유신 직후인 9대국회 때는 전국구 비례대표제가 없어지고 대신 1구2인 선출의 중선거구제와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선출하는 ‘유신정우회’가 도입됐다.

비례대표제는 5공 출범후인 11대 국회에서 다시 등장해 지역구 의석의2분의 1(92석)을 전국구 의석으로 배정했는데 3공때와는 달리 지역구 의석을 배분기준으로 한게 특징. 의석배분은 제1당에 무조건 3분의 2를 배분하고 제2당부터는 지역구 의석수에 따라 잔여의석을 배분했는데 이같은 제도는 12대 총선까지 이어졌다.

6공때인 13대 국회에서는 지역구가 소선거구제로 전환돼 선거구가 92개에서 224개로 대폭 증가했고, 전국구는 지역구 의석의 3분의 1인 75석으로 변경됐다.

전국구 의석배분은 지역구 의석비율로 하되 지역구에서 1위를 차지한 정당이 지역구 의석의 2분의 1 미만을 차지했을 경우 제1정당에 전국구 의석 총수의 2분의 1을 우선 배분하고, 나머지 의석은 잔여정당에 의석비율에 따라 배분하도록 했다.

14대 국회도 큰 틀에서는 13대 국회와 비슷한 제도를 택한 가운데 전국구를 지역구 선거에서 5석 이상 의석을 차지한 정당에 한해 지역구 의석비율에 따라 배분하고, 5석미만을 차지한 정당중 유효투표 총수가 100분의 3 이상인 정당도 의석을 배분받을 수 있도록 했다.

15대 국회와 16대 국회에서는 지역구 선거에서 5석 이상의 의석을 차지했거나 유효투표 총수의 100분의 5 이상을 득표한 정당에 대해 득표비율에 따라 전국구를 배분토록 다시 변경됐다.

송영웅기자

입력시간 2001/07/25 11:40


송영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