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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싸움 된 '합병은행장'

피할 수 없는 싸움 된 '합병은행장'

국내 리딩뱅크 첫 수장…兩 金으로 좁혀져

7월19일 오전, 김정태 주택은행장이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시내 모호텔에 들어섰다. 마주앉은 사람들은 김병주 국민ㆍ주택 합병추진위원장을 비롯한 6명의 최고영영자(CEO) 선정위원들.

“합병은행의 위상을 어떻게 보느냐.” “두 은행 직원들간 화합을 위한 복안은.”“합병은행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방안은.” “본인이 합병은행장에 적임자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3시간여간 쉴새 없는 질문에 김 행장은 평소 소신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뒤에는 늦출 수 없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이날 오후 또 다른 시내호텔. 6명의 선정위원들은 또 다른 후보인 김상훈 국민은행장을 맞아 역시 장시간에 걸친 면접을 진행했다.


김상훈 국민·김정태 주택은행장 2파전

자산 규모 170조원, 2,000만명 이상의 고객을 확보한 세계 60위권의 명실상부한 국내 리딩뱅크의수장. ‘최고의 뱅커’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한번쯤 욕심을 내볼 만한 자리가 아닐까. 게다가 50%의 확률을 갖고 경쟁에 뛰어든 이들이라면 더 더욱.

후보는 김상훈 국민은행장과 김정태 주택은행장을 포함한 7명. 하지만 금융계, 재계, 전직 관료 출신의 나머지 5명의 후보는 두 후보를 견제하기 위한 압박용 카드에 불과할 가능성이 짙다.

CEO 선정위원회가 정해놓은 시한은 7월말. 후보 면접까지 끝내고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는 50% 확률게임에서 과연 누가 승리할 수 있을까.

“김정태 행장은 리더적인 카리스마를, 김상훈 행장은 합리적인 카리스마를 지녔다.” (정부 고위 관계자 A씨) “김상훈 행장은 합리적이고 침착한 반면 적극적인 창의성이 아쉽다.

김정태 행장은 개척적이고 소신이 확실하지만 지나치게 일방적이라는 느낌이 있다.”(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 B씨) “대형은행장으로서의 품위를 고려한다면 김상훈 행장이, 장사꾼적인 기질을 높이 산다면 김정태 행장이 적임자다.” (시중은행 부행장 C씨)

각계의 평가 대로 두 후보의 면면을 살펴보면 저울추가 어느 쪽으로도 쉽게 쏠리지 않는다. “두 은행장이 1년씩 합병은행장을 나눠 맡겠다고 하면 어떻겠느냐”는 우스개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게다가 두 은행장은 이미 너무 깊게 발을 담근 탓에 양보의 미덕을 발휘하기도 쉽지 않은 처지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두 은행장이라고 한번쯤 포기할 생각을 해보지 않았겠느냐”며 “하지만 두 은행장을 뒤에서 밀고 있는 은행 내ㆍ외부 참모진들이 떠받치고 있는 한 두 은행장의 의사와 무관하게 끝까지 피 말리는 싸움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대주주가 캐스팅보트

합병은행장이 누가 되느냐를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서는 캐스팅보트를 누가 쥐게 될 것인가에 주목해야 한다. 캐스팅보트를 쥔 주체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첫 선을 보인 CEO 선정위원회 멤버는 김병주 합추위원장, 최범수 합추위 간사위원과 두 은행 사외이사 및 외국 대주주 대표 1명씩 총 6명.

김병주 합추위원장은 선정위원회 첫 회의 직후 “합추위 멤버 2명은 일단 중립적인 입장에서 나머지 4명의 위원들의 의견 수렴 과정을 지켜본 뒤 한 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여기에 힘을 실어주는 방향이 될 것”이라고 운을 뗐다.

중립적인 멤버인 두 사람이 처음부터 어느 한 쪽을 지지하기가 부담스럽다는 것을 감안할 때 결코 포장성 발언은 아닌 셈이다.

현재까지 가장 확실한 것은 두 은행 사외이사(김지홍, 최운열 이사)는 각각 본인이 속한 은행의 은행장을 지지할 것이라는 사실. 그렇다면 결국 캐스팅보트는 골드만 삭스와 ING, 두 외국인 대주주가 쥐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표면적으로는 두 대주주 모두 각자의 은행장을 지지하겠지만 속으로는 이해득실을 꼼꼼히 따져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결국 두 대주주 중 어느 한 쪽이라도 ‘배신’을 하게 된다면 예상외로 쉽게 결론이 내려질 수 있는 상황. “2대 2의 팽팽한 구도가 무너져 3대 1로 변화할 조짐을 보일 때 합추위원 2명이 다수 의견을 지지한다면 5대 1 상황으로 돌변하지 않겠느냐”는 최범수 간사위원의 발언도 이를 뒷받침한다.

문제는 어느 쪽이 ‘배신’을 할 것인지 여부다. 합병 작업에 깊숙이 개입한 두 은행 관계자들도 이 같은 구도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누가 배신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180도 다른 입장을 내비친다.

“골드만삭스는 이미 오래전부터 김상훈 행장에 대한 지지를 표명해왔다. 김상훈 행장 취임 이후 두 은행의 주가상승률을 비교해봐도 국민은행이 앞서는 만큼 골드만삭스가 김정태행장을 지지할 이유는 없다.”(국민은행)

“골드만삭스든 ING든 둘 다 수익만을 쫓는 투자자다. 개인적인 친분을 떠나 시장에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인물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주택은행)


정부게입 등 최악의 경우 '제3후보' 가능성도

두 외국인 대주주가 끝까지 ‘신의’를 지켜 2대 2의 팽팽한 구도가 좀처럼 무너지지 않을 경우 시나리오는 상당히 복잡해진다. 명목상 캐스팅보트는 김병주 위원장과 최범수 간사위원 두명이 쥘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이 경우 최대의 변수는 정부다. 정부가 두 합추위원에게 ‘입김’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분명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다소 김정태 행장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운듯 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지난해 말 두 은행 합병 발표 당시 김상훈 행장이 보여줬던 우유부단한 모습에 금융감독위원회가 실망을 했다느니, 재정경제부 내에서도 김정태 행장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정설’처럼 나돌고 있다.

이근영 금감위원장이 지난 9일 청와대 업무보고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 주택 두 은행장은 각각 합병은행의 은행장과 이사회 의장을 나눠맡게 될 것”이라고 발언한 것도이 같은 견해와 일맥상통한다.

금융계에서는 나이나 경륜, 경영 스타일 등을 감안할 때 ‘김정태 행장-김상훈 의장’ 구도 외에 역(逆)의 구도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김병주 위원장이 정부와 ‘난기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정부의 입김이 얼마나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김 위원장은 이근영 금감위원장의 발언이 있은 며칠 뒤 “두 은행장이 자리를 나눠 맡게 될 것이라는 것은 밖에 있는 사람이 한 말이니 우리가 구속될 필요가 없다.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해야할 문제를 왜 정부가 개입하느냐”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했다.

그는 특히 “CEO 선정 과정에서부터 정부로부터 외압을 받는 것처럼 비춰지면 향후 초일류 은행의 수장 역할을 제대로 못하지 않겠느냐”며 “정부는 사후적으로 CEO 선정 절차나 자격 등에 대해서만 문제 삼으면 된다”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결국 최악의 경우 김병주 위원장이 비장의 카드로 내세운 5명의 ‘제3의 후보’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한 시중은행장은 “두 은행장 중 한 명이 기권하거나 두 외국인 대주주가 담판을 벌여 결론을 내지 못하는 경우 합추위는 ‘제3의 카드’로 양자를 압박해 들어갈 것”이라며 “경우에 따라서는 압박용 카드가 어부지리 격으로 합병은행장 자리를 꿰찰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고 내다봤다.

이영태 경제부기자 ytlee@hk.co.kr

입력시간 2001/07/2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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