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淸凉里)역 백합나무

청량리는 조선조 초기 동부 인창방(仁昌坊)지역으로 나무가 많이 우거지고 남서쪽이 확트여서 늘 시원한 바람이 그칠 날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생겨난 땅이름이 청량(淸凉)이요, 또 바리산 기슭에는 그 맑고 서늘함을 뜻하는 청량사(淸凉寺)가 자리하고 있는 것도 우연만은 아닌 것같다.

‘나무는 늘 내게 가장 감명을 주는 설교자였다 / 우리가 슬프고 더 이상 삶을 잘 견뎌내기 힘들 때/ 나무는 우리를 타이를 것이다 / 자,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를 봐 /산다는 것은 쉽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아 /나무는 우리보다 오래 사는 만큼 생각이 깊고 여유있으며 차분하다/ 우리가 나무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나면 /짧고 조급한 생각이 익숙해있던 우리는 삐진데 없는 기쁨을 얻는다.’ 헤르만 헤세의 ‘나무’중에서 인용한 글이다.

청량리의 중심은 뭐니뭐니해도 청량리역이다. 경춘선과 중앙선의 철도시발점이 청량리역이고, 국철의 전철과 지하철이 통과하는 곳이 되다보니, 늘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이 청량리 역사 가까이에 언제 누가 어떻게 심었는지는 몰라도 백합나무한 그루가 마치 우리네 시골 동네 어귀 당산나무처럼 버티고 서있다. 나무는 지름 80cm정도에 높이는 15m가 족히 됨직하다.

그 크기로 보아 일제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청량리역에서 가까운 홍릉수목원에 지름이 1m쯤 되는 것이 있었다고 하니, 백합나무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초기의 것으로 보인다.

백합나무는 원래 아메리카산 나무로 우리나라에는 20세기 초쯤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백합나무는 꽃모양이 백합과 흡사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튤립나무라고도 하는데 이 역시 꽃이 튤립을 닮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튤립포플러라고도 하고 옐로포플러고도 한다. 나무모양과 잎모양이 열핏 포플러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이 나무를 ‘한텐보꾸’라 하는데 잎의 생김새가 일본 남자들이 옛날 입던 윗옷 ‘한텐’을 닮았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백합나무는 가지가 크게 옆으로 퍼지는 편은 아니나 모양이 고루 정돈되어 아담하게 보인다.

청량리역 백합나무 밑에 서면, 맞은편 바리산 기슭의 청량사가 보이고 해질무렵이면그 풍경소리가 가히 일품이었다는 데 지금은 아파트 숲에 가리어 어디쯤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청량사는 고종 광무년에 중건되어 도성 사람들이 두루 찾아와 시원한 바람을 쐬며 휴양을 즐겼던 곳이기도 하다.

3ㆍ1운동때 33인 가운데 한 사람인 만해(卍海) 한용운(韓龍雲)선생이 뜻을 같이하던 우국지사들과 어울러서 이 청량사에서 환갑잔치를 치르며 시원한 바람을 즐겼다는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그래서 청량사 큰방에 걸려있는 ‘청량사(淸凉寺)’ 현판과 기둥의 주련(柱聯)이 한용운과 함께 조선 불교의 전통을 지키면서 교정을 지낸바 있는 석현 박한영(石顯 朴漢永)의 글씨라고 한다.

숲이 우거져 늘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는 청량리. 지금은 도시화의 밀림에 가리어 숲은 사라지고 외국서 흘러 들어 온 청량리역의 백합나무가 바람이 불 때 마다 사시나무처럼 잎을 떤다.

청량리역의 백합나무. 이 나무는 이 역에서 우리민족 애환이 오르고 내리던 것을 보아 왔을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이 문간을 지나면서 이름도 모르는 이 나무를 쳐다보면서 때로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던 대상이었을 테지. 개발에 밀리지 않고 잘 보존 되기를 빌어 본다.

입력시간 2001/07/2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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