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의 전쟁' 이끄는 야당의 싸움닭

한나라당 김만제 정책위원장·이재오 총무, 연일 '독한소리'

여야가 첨예하게 부딪칠 때는 으레 뉴스메이커가 나타난다. 대치 전선의 맨 앞에 서서 상대를 향해 공세를 퍼붓는 전사(戰士)가 나오기 마련이다. 이미 알려진 대여 또는 대야 공격수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싸움꾼도 있다.

언론사 세무조사가 직접 원인이 된 현재의 대치 정국도 예외가 아니다. “정당한 법 집행이요, 조세정의를 실현하는 것”, “정권 재창출을 위한 비판 언론 죽이기”등 최근 들어 여야는 거의 하루도 쉬지않고 공방을 벌였는데, 이런 와중에 한나라당에서는 두 명의 전사가 나타났다. 예상된 전사는 이재오 총무요, 뜻밖의 전사는 김만제 정책위의장이었다.

김 의장이 대여 공격수가 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당 안팎에서 거의 없었다. 실제 그는 겉모습처럼 ‘신사’축에 속한다. 그런 그의 입에서 여권을 향한 독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난 달 하순 인천서 열린 한나라당 시국강연회. 한나라당은 당초 경제 분야 강연은 외부 전문가에 맡기기로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않아 그가 역할을 떠맡았다. 그의 표현대로 ‘핀치히터’였던 셈인데 ‘홈런’을 터뜨렸다.


김의장, DJㆍ가신ㆍ정부정책에 직격탄

그는 연단에 오르자마자 곧바로 김대중 대통령을 향해 포문을 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참모들 말은 안 듣고 혼자서 다 하는 나홀로 대통령이다”고 비판했다.

“다른 나라에서 실패한 낡은 사회주의적 정책을 펴는 바람에 나라 빚이 이렇게 많아졌다”며 은근히 색깔 공세를 펴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전문 분야인 경제 정책과 관련,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3년반 동안 실시한 경제 정책을 보면 마치 정육점 주인이 심장수술을 한 것 같다”고 쏘아 붙였다.

여권이 발끈하며 대대적인 역공에 나섰지만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인천 대회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열린 광주 시국강연회에서도 또 다시 거친 말을 토해냈다. “김대중 대통령의 가신이라는 사람들은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했으니) 목포 앞바다에 빠질 각오를 해야 한다”고 내지른 것.

도대체 그가 왜 대여 공격에 팔을 걷고 나섰을까. 당 안팎에서는 그의 잇따른 독설을 ‘계산된 발언’으로 보기도 한다. 내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실제 대구시장 후보 리스트에는 그의 이름이 끊임없이 오르내리고 있다. 만일 그가 대구시장에 뜻을 두고 있다면,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데에는 이 보다 더 나은 것이 없기도 하다.

그러나 이 같은 관측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금까지 그는 마음속에 뭔가를 숨겨놓고, 거기에 맞게 행동하는 모습을 한번도 보여주지않았다. 그는 이 총재를 잘 따라 다니지 않는다. 틈만 나면 이 총재가 가는 곳에 함께 가려는 여타 정치인과는 다르다.

‘총재 수행’이라는 프리미엄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왜 그러냐”는 질문에 그는 “언론에서 맨날 대안을 내놓아라 하는데, 총재만 따라다니다가 언제 정책 개발을 하느냐”고 말했다.

이런 까닭에 그가 ‘뜨기’ 위해서 일부러 ‘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그는 대구시장 출마설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뜻이 없다”고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투사로서의 현재 모습은 특유의 순진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가 아직까지는 정치인 특유의 화법을 구사하는 데 서툴고, 당연히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이 여과되지 않은 채 거친 말로 툭툭 튀어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다 그는 좋게 말하면 ‘소신’이요, 나쁘게 말하면‘고집’이 있는 편인데 이 같은 성격도 다소 작용한 듯 하다.

돌이켜보면 그는 지난 5월에 살짝 싹수를 보이기는 했다. 정책위의장이 되자마자 마구 뉴스를 쏟아냈다. 현 정부의 재벌정책을 재벌해체 정책이라며 맹렬하게 비판한 것. 취임 일성이 “재벌의 출자 총액 제한과 부채비율 제한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결합재무제표 작성, 소액주주 집단소송제 도입 등 기업 지배 구조의 투명성과 관련해서는 정부보다 더 엄격한 조치를 주문하기 했지만, 어찌됐든 이 같은 주장은 친재벌로 찍힐(?) 가능성이 컸다.

정치인으로서는 무모하기 짝이 없는 발언인 셈. 이를 모를리 없는 이회창 총재가 “신중하게 접근하는 게낫겠다”는 의견을 냈지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 길 밖에 없다”는 게 소신이있었던 까닭이다.

예고된‘대여 전사’ 이재오 총무

이재오 총무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한나라당의 전사로 이름이 높았다. 오죽하면 지난 5월 경선을 통해 그가 한나라당 원내총무가 되자“여의도에 전운이 감돈다”는 말이 나왔을까.

언론사 세무조사 정국에서 비교적 잠자코 지키고 있던 그는 지난달 24일 일을 냈다. 오전 당 3역회의에서 “변협이 이례적으로 대통령이 탄핵감이라고 했는데 이는 법 파괴에 대해 경종을 울린 것이다. 정기국회까지 여러 정치 현안들을 해결하지 않거나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으면 탄핵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 것.

이 발언은 권철현 대변인에 의해 곧바로 “이 총무의 개인적인의견”으로 의미가 축소됐는데 사건은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터졌다. 다음날 총재단회의서 그는 보고 형식을 빌어 “총무단이 공식 논의해 정리한 내용”이라며 전날의 탄핵 발언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그가 여권에 퍼부은 폭격은 그리 효과가 크지 않았다. “집권을 위해 헌정 파괴를 하려한다”며 여권이 이 총재를 겨냥해 대대적인 역공에 나선데다, 당내에서도 “너무 나갔다”는 비판이 흘러나왔다

그는 총무에 당선된 뒤 “이 총재와는 눈빛만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번 탄핵 발언의 경우, 눈빛을 잘못 읽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보고를 들은 이 총재가 “상황을 지켜보며 신중히 판단하자”고 사실상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후에도 “정국을 과도하게 우리쪽으로 이끌려다 보면 여론을 잃게 된다.

앞으로는 공식회의 전에 당의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시를 한 것. 그래도 그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전사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려한 것인지 모른다.

최성욱 정치부기자

입력시간 2001/07/31 14:27


최성욱 정치부 feel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