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을 말할 정치세력은 없다"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 인터뷰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은 7월25일 ‘김대중 대통령은 재산을 국가에 헌납해야 한다’는 글을 자신의 홈페이지(www.welldome.or.kr)에 올렸다.

아태재단후원금이 문제가 된 상황에서 그가 이 글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장 원장이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의 대표적 진보주의자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같은 의문은 더 강해진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여의도백화점 13층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장 원장은 여전히 다변에 활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반독재 투쟁속에서 5차례의 수감과 구속을 거친 56세의 이 ‘운동가’는 “김대중 대통령을 매우 좋아하고 가까운 사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김 대통령에게 면담신청만 하면 자리 하나는 줄 것”이라며 농담 반(?)의 웃음을 지었다.

한국 사회는 최근 모든 담론이 보수와혁신, 개혁과 반개혁의 이분법으로 치닫고 있다. 이분법의 경계선은 현 정부의 정책에 찬성하면 개혁, 또는 혁신이고 반대하면 보수고 반개혁이라는 정치적 뉘앙스를 강하게 띠고 있다. 진보의 본류라 불려 손색이 없는 장기표 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사회가 보혁갈등, 또는 개혁과반개혁의 대결구도로 흐르는 인상이다.

“정치권이 그렇게 몰고 가고 있다. 현재 사회적 이분화는 DJ진영이 스스로를 개혁이자 진보세력으로 규정해 정치적 힘을 얻으려 한데서 시작됐다.

반면 반 DJ세력은 DJ를 급진, 또는 친북한으로 몰아 입지를 강화하고 세결집을 꾀하면서 현재의 구도가 굳어지고 있다. DJ 진영은 일부 시민단체 등을 정책실현을 위한 우군으로 활용하고 있다. 낙천ㆍ낙선 운동에 대한 지지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방법은 앞으로 중대한 비판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보수와 혁신, 개혁과 반개혁을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중요한 것은 보수냐 혁신이냐가 아니라 그들의 주장이 맞느냐 틀리느냐에 있다. 보수와 진보는 결국 사회현실에 뿌리박고 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시작한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시기에 사회주의는 진보가 아닌 보수였다. 현재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의기준을 바꿔야 한다. 정보화 시대에 산업화 시대의 잣대를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운동권이야 말로 보수적이고 답답한 사람들이다.

DJ가 개혁의 상징처럼 된 것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지역감정과 대북정책을 둘러싼 DJ 대 반DJ의 구도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DJ에 대한 반대를 보수나 반개혁으로 봐서도 안된다. 최근 변협이 현 정권의 개혁에 대해 절차적 민주성을 갖지 못하고 있다며 비판한 것은 맞다.

최근 DJ가 ‘주5일 근무제’를 밀어 붙이는 것은 변협 선언 등으로 궁지에 몰리자 진보색깔을 강화해 세력확대를 꾀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판단된다.”
-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하나.그렇다면 어떤 노선의 진보인가.

“외부에서는 나를 두가지 시각으로 본다. 우선 일반국민은 나를 과격하다고 본다. 재야 출신이니까 당연히 마르크스주의자고 친북한적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지만 실제로 나는 매우 반북한적이다.

반면에 운동권은 나를 우경화한 변절자로 본다. 내가 시장경제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뭐라든 나는 시장경제야 말로 인간해방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스스로를 ‘신(新)진보인’이자 ‘민주시장주의자’로 규정한다. 시장경제를 하되 독점규제와 환경, 보건, 안전, 금융등에만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현 정권의 정책은 관치경제와 관치금융에 빠져 시장경제라고 하기 어렵다.”
- 당신의 진보주의와 과거 민주국민당활동은 어떻게 연관지을 수 있나. DJ와 협력하지 못하는 이유는 뭔가.(장 원장은 지난해 민주국민당 최고위원과 중앙선거대책위원장을 지냈으나 최근 결별했다)

“민국당 가입은 나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몸부림에서 나왔다. 비록 민국당 주류가 구시대 정치인이긴 하지만 정계경험이 풍부한 인물도 많았다. 민국당에서 주도권을 잡아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개인적 능력부족과 함께 기존 양당체제의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국당 활동이 진보노선을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DJ와 협력하지 않는 것은 노선과 이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 정권은 집권 초부터 원칙없는 정책과 인사로 비판을 사왔다. 현재 우리 사회는 원칙없이 오로지 돈만 쫓는‘돈 판’이 돼가고 있다. ”
- 일부에서는 현 집권세력이 자본주의의 기본질서를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전두환씨가 재벌을 죽였다고 해서 사회주의자라고 할 수는 없듯이 DJ도 전혀 사회주의자가 아니다. 색깔론은 DJ를 공격하려는 모함에 불과하다. (현 집권세력이 개혁의 자격을 갖추고 있느냐는 질문에) 현 집권세력은 개혁할 마인드가 전혀 안돼 있을 뿐 아니라 개혁세력의 자격도 갖추고 있지 못하다.

DJ의 개혁은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개혁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이 집권한다 해도 나아질 것이 전혀 없다.”
- 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싼 사회적 대결구도와 맞물려 정치권의 담론이 갈수록 천박해지고 있다.

“언론도 개혁할 부분이 당연히 있다. 언론 황제 등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언론사 세무조사는 정권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기 위한 의도에서 나왔다. 실질적으로 봐서도 정부가 주장하는 언론개혁은 굳이 따지자면 ‘언론의 경제개혁’에 불과하다.

언론개혁의 본질은 건드리지 않고 국세청을 통해서만 칼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말이 천박해지는 것은 합리적 판단과 이성은 실종되고 편가르기만 남은 탓이다. 여야 모두 아전인수격으로 편가르기를 통해 정권재창출과 정권탈환 욕심만 차리고 있다.”
- 현 정권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보나.

“지나치게 매달린다는 일부의 비판에 동의한다. 그러나 남한이 매달릴수록 남북한 긴장이 조성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북한은 체제유지를 위해 남북대화를 기피하고 있다. 북한은 이 같은 대화기피의 핑계를 남한 내부에서 찾아내려 한다. 북한상선의 영해침범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는 것에는 개인적으로 찬성한다. 하지만 퍼주는 게 좋더라도 엎드려서 퍼주는 것은 안된다. 대북정책이 정략적 목적으로 이용되어서도 안된다.”
- 신창 창당 의사를 밝혔는데, 어떤개혁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8월부터 창당작업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우리는 현재 삶의 총체적 양식이 변하는 문명의 전환기에 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는 서유럽 등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일어났다. 새로운 사회에서는 사회운영의 방식과 제도가 전면적으로 변해야 하고, 국가정책의 방향도 바뀌어야 한다.

일본이 막대한 무역흑자에도 불구하고 불황에 빠져 있는 것은 사회운영의 철학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정치권이 제도를 바꿀 생각을 않고 있다. 나는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제도의 국제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7/31 14:31


배연해 주간한국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