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꺾인 대만 경제 '추락 위기'

경제성장률 26년만에 최저, 중국 경제 비상과 대조적

대만 경제의 바로메타는 종교단체에 대한 헌금액인 듯하다. 최근 대만의 불교, 도교사원은 경제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대만 언론보도에 따르면 대부분 사원들은 헌금이 과거에 비해 60~70% 줄어들면서 생계위협까지 받는 상황이다.

일부 승려들은 헌금만으로는 사원 유지가 어려워지자 장사에 손을 대고 있다. 사원을 떠나 유랑에 나선 승려도 크게 늘었다.

세계의 알부자로 통하던 대만이 1년 가까이 지속된 불황으로 허덕대고 있다. 중국대륙 경제가 2008년 올림픽 유치로 날개를 단 반면, 대만 경제는 끝을 알 수 없는 하향곡선을그리고 있다.

중국 경제와 대만 경제가 보이고 있는 상반된 경기곡선은 중국-대만관계, 즉 양안(兩岸)관계에도 적지 않은 파장이 전망된다. 대만의 입지가 더욱 축소돼 양안관계가 중국의 의도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대만 경제의 현실은 대만 언론의 표현을 빌리면 침몰 위기다. ‘3개 하락’과 ‘3개 상승’의 악성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3개하락은 경제성장률 하락, 주가 하락, 대외무역증가율 하락을 이른다. 반면 3개 상승은 실업률 상승, 국민고통지수 상승, 자살률 상승을 말한다.

수출감소, 실업률 상승등 총체적 불황

대만의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은 1.06%에 그쳐 작년 4분기에 비해 1.21% 낮아졌다. 26년만의 최저치다. 2분기 경제성장률은 0.25%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대만국책 중화경제연구원이 7월21일 수정 발표한 올해 경제성장 전망치는 2.22%. 연초 발표했던 4.57%에서 2.35%포인트 낮춘 수치다. 주가는 1년 전에 비해 반 토막 이하로 꺾어졌다.

2000년 초 1만 포인트를 넘었던 증시의 지아취엔(加權) 지수는 7월23일 4,151.93 포인트로 내려 앉았다.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심리적 저지선인 4,000포인트 선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로 예상되고 있다. 신뢰성을 상실한 투자자들은 정부의 대책에만 목을 매고 있는 상황이다.

대만 경제의 생명줄인 수출전선에도 먹구름이 덮였다. 6월 수출주문은 전년 동기에 비해 19.92% 줄어든 111억5,300만달러에 그쳤다. 1981년 이래 최악의 기록이다. 공업생산도 덩달아 감소되고 있다. 6월 공업생산은 전년 동기에 비해 11.27% 감소해 1975년 이래 최대 낙폭을 보였다.

중화경제연구원이 내놓은 올해의수출입 예측은 더욱 우울하다. 올해 수출과 수입은 작년에 비해 각각 3.56%, 7.08% 줄어 1962년 이래 최악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실업률은 상승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6월 실업률은 4.51%로 악화돼 실업자수는 42만명에 달했다. 실업에 따른 고통을 받는 인구는 총인구 2,100만명 중 110만 여명으로 추산된다.

7~9월 실업률은 5%가 넘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실업률 증가는 자살률 증가와 민간소비 증가율 감소로 나타나고 있다. 올 1분기 민간소비 증가율은2.18%로 소폭 상승하는데 그쳐 경제전망을 어둡게 한다.

이 같은 불황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투자와 수출증진을 위한 이자율 인하와 환율인상 외에는 특별한 방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대만 중앙은행은 작년 12월 이후 7차례에 걸쳐 주요이자율을 1.25% 포인트 낮췄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달러 대비 신대만폐 가치도 지난 2달간 6% 이상 평가절하했지만 수출증진 효과는 미지수다. 잇단 평가절하로 달러 대비 신대만폐 환율은 14년만에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정쟁ㆍ국론분열 겹치며 대 중국 입지도 흔들

불황의 원인은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전세계적인 불경기에 따른 외부적 요인이다. 일본의 장기침체와 더불어 미국 경제가 흔들리면서 수출로 먹고 사는 대만 경제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둘째는 세계적인 IT(정보기술) 분야 불황이다. 컴퓨터와 반도체 등 대만의 주력 상품이 IT산업 불황으로 수출 타격을 받고 있다. 세번째는 정치불안이다. 지난 1년간 대만에서는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정치불안은 지난해 반세기만에 여야정권교체를 이룬 이래 일상적인 현상이 됐다. 정치불안은 천쉐이비엔(陳水扁)총통이 원내 소수파인 민진당 출신인 것과 무관치 않다.

현재 대만 정당구도는 집권 민진당과 야당인 국민당, 친민당, 신당 등 4당 체제다. 이들 4당은 통일문제, 즉 중국과의 관계를 둘러싸고 극명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민진당이 대만독립 노선을 추구한다면, 나머지 3개 당은 방법은 다르지만 중국과의 궁극적인 통일을 내세우고 있다.

문제는 원내 세력이다. 제1야당인 국민당은 독자적으로 원내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고 있다. 친민당과 신당도 국민당에 뿌리를 두고 있어 통일문제에 관한 야 3당의 공조는 든든하다.

여기다 올 12월 입법원(국회) 선거와 차기 총통선거를 겨냥한 기세싸움이 계속되면서 입법원의 기능은 지난 1년간 거의 마비상태에 빠졌다.

국민당은 지난해 말 통일정책과 경제실정을 이유로 천쉐이비엔 총통에 대한 탄핵까지 시도한 바 있다.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이 신당창당을 추진하는 것은이 같은 상황과 무관치 않다. 리덩후이 전 총통은 국민당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점진적인 대만독립을 추진해 온 점에서 천쉐이비엔 총통과 노선상 친화성이있다. 리 전 총통의 신당은 앞으로 대륙정책에서 민진당과 협력함으로써 독립파 진영의 세력확대를 꾀할 가능성이 크다.

정치마비의 책임을 정쟁에만 돌릴수 없다는 것이 대만 소식통들의 이야기다. 집권 민진당의 능력과 당내 분란을 두고 하는 이야기다. 반세기가 넘는 국민당 집권 시절 소수 주변세력에 불과했던 민진당은 정권을 잡긴 했지만 국정수행 능력에서는 심각한 문제를 노출했다.

인재부족과 당론분열 때문이다. 천쉐이비엔 총통은 당초 집권과동시에 인재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전민정권(全民政權)을 표방하며 국민당과 공조를 시도했다.

하지만 민진당 내 강경세력의 반발로 공조는 본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깨지고 말았다.

민진당 당론 분열은 총통과 부총통의 말이 사사건건 엇갈릴 정도로 심각하다. 천쉐이비엔 총통은 국민 다수여론을 감안해 명시적인 대만독립을 내세우지 않는 반면, 뤼시우리엔(呂秀蓮) 부총통은 대만독립의 설교자를 자처하고 있다.

한 예로 뤼시우리엔 부총통은 7월23일 재계지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중국을 ‘사기꾼이 창궐하는 인민공화국’이라고 험담하며 대륙투자 반대론을 펼쳤다. 그는 “대만의 불경기는 중국공산당이 대만을 대상으로 계획적인 경제전쟁을 펼친 결과”라고 주장했다.

집권 민진당의 통치력 부재는 당내성향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많다. 야당시절의 반독재 투쟁과 이상주의적 관성에서 탈피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대만 인사는 국내 건설경기 쇠퇴가 불황의 주요 원인이라며 그 책임을 민진당에 돌렸다. 국민당 시절 계획돼 건설중이던 제4호 원자력발전소를 민진당이 환경보호를 이유로 중단시키는 상식이하의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대륙투자 둘러싸고 정치권 논쟁

올림픽 유치로 중국경제가 날개를 달면서 대만의 경제위기는 더욱 두드러진다. 중국의 올림픽 유치를 전후해 대만기업의 대륙투자를 둘러싼 논쟁이 대만 내에서 불거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민진당을 비롯한 일부 정치권은 과도한 대륙투자가 대만의 산업공동화와 실업률 증가를 초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재계와 다수 경제학자들은 대륙투자에 대한 대만정부의 규제가 불황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만은 국민당 집권기인 1996년부터 점진적인 대륙투자정책을 펼치고 있다. 투자가 지나칠 경우 대륙에 경제적으로 종속되고, 대만의 자본과 기술이 유출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에따라 당국은 건당 5,000만달러 이상 투자 및 인프라 건설, 첨단기술분야 기업 투자를 금지했다.

이에 대해 대만 기업들은 홍콩과 마카오 등에 설립한 자회사를 통한 편법을 동원해 대륙투자를 해왔다. 정권교체 후에는 민진당의 정국 장악력이 떨어지면서 내놓고 직접투자를 하는 기업들도 있다.

대만기업의 대륙투자는 국내경제에 대한 영향을 둘러싼 논쟁과 관계없이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대만에서는 대륙투자와 관련 ‘3가지 5’라는 말이 회자하고 있다.

대륙에 투자한 대만기업이 5만개에 달하고, 이를 위해 대만인 50만명이 대륙에 체류하고 있으며, 대륙에 투자한 누적금액이 500억달러에 달한다는 것이다. 대륙투자누적액은 실제로 700억달러를 넘는다는 비공식 추산도 있다.

대만기업들은 불황탈출을 위한 유일한 길은 마지막 거대시장인 중국과의 협력이라며 정부의 규제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중국과의 협상을 통해 직접교류를 위한 3통(통상, 통항, 통우)을 실현하고, 나아가 중국과의 경제적 분업을 위한 제도적 틀을 정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경제로 정치를 포위한다(以商包政)’는 정책은 성공을 거두고 있는 셈이다. 경제로 정치를 포위한다는 것은 중국에 투자한 대만기업인을 통해 대만당국이 중국정부와의 정치협상에 나서도록 압력을 가한다는 의미다.

대만기업들은 최근 당국이 투자규제를 풀지 않으면 본사를 아예 대륙으로 옮길 의사까지 내비치고 있다.

일국양제 지지 등 여론도 미묘한 변화

대륙투자 정책은 양안관계 및 통일정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중국내 대만기업의 지위를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대만당국이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를 먼저 수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국양제는 대만이 중국의 일부분임을 인정하면, 중국은 대만의 완전한 정치경제적 자치를 보장한다는 중국측 통일방안이다. 대만이 느슨한 형태로 중국에 흡수되는 형태다.

중국은 뜨고 대만은 가라앉는 상황에서 일국양제에 대한 대만인의 태도도 현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독립도 통일도 아닌 현상유지를 바라는 여론이 여전히 압도적이긴 하지만, 홍콩식 일국양제를 지지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올림픽 유치를 전후해 대만 언론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국양제를 지지하는 대만인은 과거10% 수준에서 30% 이상으로 늘었다. 양안관계와 통일문제에서 대만정부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증좌다. 대만당국은 중국 올림픽 유치 후대륙에 대한 주민과 기업의 열광이 커지자 이를 잠재우는데 고심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대만 경제의 추락과 통일에 대한 대만인의 여론변화를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다. 20여년에 걸친 개혁ㆍ개방정책이 대만기업을 우군으로 만들어 결국 통일의 주도권을 잡게 됐다는 회심의 미소다. 대만의 굴복은 중국에게 통일과업 완성과 함께 명실상부한 대중화 경제권을 이루는 의미를 갖는다.

궁지에 몰린 천쉐이비엔 총통은 7월23일 위기극복을 위한 경제발전자문위원회를 개최했다. 그는 경제위기가 “전세계적 불황과 함께 대만 정치경제의 구조적 결함”에 있다며 경제발전자문위의 최종 권고사항을 무조건 수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달간 열릴 자문위 회의는 대륙투자 제한, 3통, 실업, 외국인 노동, 정부효율 증대, 산업경쟁력 강화,금융개혁을 비롯한 모든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자문위가 뾰족한 대책을 내놓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내놓는다 하더라도 정치권이 이를 수용해 추진할 수 있을지는 더욱 의문이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7/31 15:06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