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미국적 가치와 풍요에 대한 냉소

■닥터 T

설리반 트레비스(리차드 기어)는 휴스턴의 유명한 산부인과 의사. "여성들은 나름대로 다 특이하고 아름답다" 는 지론을 갖고있는 그는 폐경기를 맞아 불안해하는 환자에게 "폐경기는 사춘기와 같다. 감정적 변화일뿐이다. 겁내지 않으면 새로운 느낌, 더 여자답고 섹시한 느낌으로 살 수 있다" 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거기다 닥터 T는 미남에 섹시한 매력을 풍겨 보석과 모피를 휘감은 도도한 상류층 아줌마들이 예약을 하고도 종일 기다려야 할 정도다.

닥터 T의 행복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골프 친구들로부터 "절대놓쳐서는 안될 아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아름다운, 피멘토 샌드위치를 잘 만드는 부인을 두고 있다. 결혼할 나이에 이른 두 딸도 누구나 탐낼 정도로 아름답고 반듯하게 성장했고, 여비서, 골프 코치, 처제도 그를 흠모하고 있다.

이처럼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닥터 T가 여자들로 인해 겪는 수난을 그린 코미디물이 로버트 알트만의 2000년 작 <닥터 T/ Dr. T & the Women> (18세, 트럼프)이다.

알트만은 미국적 가치에 냉소를 던지는 반골 기질로 유명한 할아버지 감독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 야전 병원 의사들이 군 문화에 저항하는 독설과 행동을 보이는 블랙 코미디 <야전병원 매쉬>(1970년)로 깐느영화제 대상을 수상하며, 작가로 등극했다.

<뮤지컬 내쉬빌>(1975년), 유럽 예술 영화 영향을 드러낸 <세 여인>(1977년작), 베니스영화제 수상작 <스트리머스> (1983년)와 같은 초기 대표작이 국내에 소개되지 않아 아쉽지만, 후기작은 많이 출시되어 있다.

느와르풍 범죄물 <진저브래드맨>(1988년)과 <캔사스시티>(1996년), 숱한 등장 인물의 사연을 거대한 타피스트리로 완성해가는 솜씨가 일품인 <숏컷>(1993년)과 <패션 쇼>(1996년), 할리우드 영화계를 풍자한 <플레이어>(1992년), 고호와 동생 테오의 관계를 다룬 <빈센트>(1990년), 정신과를 드나드는 괴퍅한 인물들을 묘사한 <위험한 사랑>(1987년), 샘 세퍼드가 각본을 쓴 <사랑의 열정>(1985년),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뽀빠이>(1980년), 폴 뉴먼 주연의 S.F물 <퀸테트 살인 게임>(1979년)을 비디오로 볼수 있다.

이처럼 화려하고, 왕성한 영화 목록을 자랑하는 독립 영화계의 장수 감독인 만큼 <닥터 T> 도 미남에 호남인 의사의 여성 편력기 수준에 머물지 않는다. 닥터 T는 자신의 직업인 의사와는무관하게 여성들로 인해 재앙을 겪게되는데, 상류층 여성들의 강박 관념 탓이다.

닥터 T를 둘러싼 여성들은 지나치게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그것이 여성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며, 이는 알트먼 감독이 일관되게 지적하며 냉소를 던지고 있는 미국적가치, 물질적 풍요에 대한 일침이라고 확대 해석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닥터 T의 아내 케이트(파라 파세트)의 정신 질환이다. 고급쇼핑몰에서 옷을 훌훌 벗어던지는 기행으로 입원한 케이트의 병명은 헤스티어 컴플렉스.

"그리스 여신 헤스티어는 가정 생활의 보호자였으나, 사랑을 경멸하고 거부하여 어린아이처럼되어 독신으로 생을 마감했다. 이 여신의 이름을 딴 헤스티어 컴플렉스는 물질적 안정, 나무랄 데 없는 가정, 나만을 사랑해주는 남편을 둔 상류층 여성들이 주로 걸린다. 삶이 너무완벽하여 자아 발전의 동기가 없어 어린아이처럼 퇴행한다"는 것이 극중 설명이다.

중년 남자들 어깨에 짐이 하나 더 지워지게 되었다. 자신의 삶을 점검하는것 못지 않게 아내를 혹시 너무 완벽한 행복 속에 가두고 있는 것이 아닌지, 수시로 체크해야하니까.

입력시간 2001/08/03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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