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LP여행] '키 브라더스'

브라스록 시대를 연 한국의 樂童들

70년대말 산울림, 80년대말 서태지가 우리에게 안겨준 음악적 충격만큼이나 60년대의 만능 엔터테이너 윤항기가 보여준 비범한 무대매너도 비슷한 놀라움과 신선함으로 동시대의 대중들에게 문화적충격으로 다가섰다.

그가 보여준 독특한 연주와 창법, 비키니차림 사진촬영 등은 지금의 가치관으로도 평범치 않은 파격이였다. 대중들을 압도할만큼 끼가 넘쳤던 타고난 쇼맨십은 비범했던 부모의 영향이 컸다. 부친은 원맨쇼의 선구자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윤부길이고 모친은 한국고전무용을 전공한 고향선(본명 성경자)으로 모두 40년대 전설적인 가극단 라미라의 단원이었다.

윤항기는 키보이스 오리지널 멤버로 명성을 날리던중 홀연 '락앤키(ROCK & KEY)'공연단을 결성해 떠났던 월남 위문공연기간에 수많은 서양의 진보적인 록음악을 접했다. 귀국후인 1970년말, 그는 인기그룹 후기 키보이스와 실력 대결을 벌이기위해 6인조 록그룹 키브라더스를 창립했다.

머리에 넥타이를 묶고 양복바지를 걷어붙인 채 열창하는 윤항기의 파격적인 무대매너와 싸이키한 록사운드를 시도했던 키브라더스의 등장은 당시로서는 일대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롤링스톤즈가 영국의 악동들이었다면 그들은 한국의 악동들로 불릴 만큼 평범함이 스며들 조금의 틈도 없었다.

키브라더스에게 영향을 준 외국그룹은 토속적인 아프리카와 라틴의 이국적 타악기 리듬을 록과 접목한 멕시코그룹 산타나와 섹소폰, 트럼펫 등 관악기들을 사용하여 재즈와 록의 요소를 융합한 최초의 그룹 블러드, 스웨트& 티어스(BLOOD,SWEAT & TEARS).

키브라더스는 한결 프로그레시브한 사운드를 한발 앞서 시도했던 그룹 HE6, 피닉스 등과 더불어 인기다툼을 벌였던 선구적 그룹의 하나로 불릴만큼 탁월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주무대는 70년대초 유명했던 퇴계로 오리엔탈호텔의 닐바나 고고클럽과 미8군이었다. 당시 닐바나는 데블스, 피닉스, 파이오니아스 등 인기정상의 4대 록그룹이 활약했던 록그룹의 본산지로 명동의 미도파살롱과 쌍벽을 이루며 젊음이 들끓던 밤무대. 윤항기조차 기억이 흐릿한 당시 멤버는 리드기타 정명용, 키보드 정기성 등이었다.

키보이스때 드럼을 연주했던 윤항기는 리드보컬로 색깔을 바꿔 전면에 나섰다. 지금도 라디오 심야프로의 단골 레퍼토리로 들려지는 불후의 명곡 '별이 빛나는 밤에'는 이때 창작했던 윤항기의 데뷔곡. 팬들의 반응은 감당하기 힘들만큼 뜨거웠다.

데뷔음반 은 날개돋힌 듯 팔려나갔다. 초판엔 음반사의 상업적전략으로 '락앤키보이스(ROCK & KEYBOYS)'로 그룹명을 표기했지만 이내 키브라더스로 개명해 재판을 찍었을 정도로 인기에 자신감을 얻었다.

이 음반은 스위스에서 발행되는 <2001 세계희귀명반 안내책자>에 당당히 등극해 외국의 마니아들이 선호하는 몇 안되는 가요음반중의 하나.

국내 마니아들에겐 신중현곡 '커피한잔', '봄비', '님은 먼곳에'를 연주해 더욱 인기가 있다.

1집에 수록된 록사운드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솔로시절 들려준 윤항기의 그것과는 음악적 차원을 달리하는 짜릿함을 안겨준다. 감미로운 플룻의 도입과 더불어 현란한 드럼연주가 인상적인 키브라더스식 '커피한잔'은 놓칠수 없는 들을거리. 자켓사진은 당시 장안 멋쟁이들의 사교장이었던 닐바나 무대를 그대로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2집 정기선편곡집 <목이메어-유니버샬, KLS23, 71년7월>은1집 레퍼토리에 번안곡 3곡을 추가한 기획음반. 아쉬운 것은 프로그레시브 그룹 프로콜 하럼의 세계적인 히트곡 'A WHITER SHADE OF PALE'을 정기선 작곡으로 표기한 사실.

그러나 '팬들은 공연때 이 곡을 부르지 않으면 난리가 났을 정도로 좋아했다'고 윤항기는 기억한다. 2집은 멤버들이 모래위에서 뛰어노는 오리지널자켓과 그룹CCR의 음반자켓에 사진을 넣은 변형자켓 2가지 버전이 출시되었다.

3집은 신세기로 전속을 옮긴후에 발표한 이현섭, 정기성작편곡집 <윤항기와 키브라더스-신세기, 가12368, 73년5월18일>. 이번에는 문제의 '목이메어'가 윤항기 작곡으로 기록된 것이 옥의 티. '도입부만 인용했을 뿐 곡 대부분은 편곡을 했다'는 윤항기의 말처럼 당시는 지금과는 달리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불분명했던 시기였다.

정상의 인기속에 윤항기는 이 음반을 끝으로 솔로데뷔를 해버렸다. 이후 수많은 멤버교체를 하게 되는 키브라더스는 서유석의 '가는 세월'을 작곡한 김광정이 리드기타를 맡으며 그룹을 이끌었다.

국내 최초로 브라스록 시대를 활짝 열어제친 키브라더스. 비록 윤항기 개인세션그룹으로만 평가절하 하기에는 그들이 들려준 팝과 국악을 퓨전한 9분40초 롱버전의 '고고춤을 춥시다'등 실험적인 비범한 시도는 그룹사운드 전성시대의 숨은 공로자로 재평가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입력시간 2001/08/03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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