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한국인 생명표…'期待餘命' 1년에 6개월씩 늘어나

‘나는 앞으로 몇 년을 더 살 수 있을까.’

일상에 쫓겨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은 자신이 얼마나 유한한 존재인지를 잊고 지낸다. 최근 통계청이 자기 존재에 무관심한 현대인들을 깨우는 통계를 발표했다. 1998년과 2000년 동안 전국 사망자의 연령과 사망원인을 조사, 살아있는 사람들의 연령별ㆍ성별 생존확률을 계산한 ‘1999년 생명표’를 펴낸 것이다.

통계청이 내놓은 ‘1999년 생명표’에 따르면 의료수준의 향상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우리나라 남녀의 평균 수명이 1년에 6개월씩 늘어나고 있다.

99년 현재 남자의 평균 수명은 71.71세(89년 66.84세), 여자 평균 수명은 79.22세(89년 75.08세)로 남녀 모두 평균 수명이 10년 전보다 5년 가까이 늘어났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면서 연령별로 앞으로 더 살 수 있는 기간을 뜻하는 ‘기대여명’도 늘어나고 있다. 99년 현재 65세인 남자는 앞으로 14.1년, 여자는 18.0년을 더 살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10년 전인 89년보다 남자는 1.9년, 여자는 1.8년 늘어난 수치이다.

또 45세 남자는 앞으로 29.5년(89년 26.5년), 여자는 35.9년(32.2년) 더 살 것으로 나타났고, 15세 남자와 여자는 각각 57.5년과 65년의 여명을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살아 온 날’과 ‘살아갈 날’이 똑같은 소위 ‘꺾인 나이’는 남자 36세, 여자 40세로 추정됐다.


철저한 자기관리로 수명 10년 연장가능

통계청은 또 규칙적 운동과 영양섭취 등 자기관리에 철저하면 평균 기대수명을 10년 가량 연장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함께 내놓았다.

통계청은 “뇌졸중, 심장마비 등순환기계 질환이 예방 또는 퇴치되면 평균 수명이 남자는 3.6년, 여자는 3.1년 연장되며, 각종 암을 예방할 경우 남자와 여자의 평균 수명이 각각 4.7년과 2.5년 증가한다”고 밝혔다.

교통사고 등이 없어질 경우에도 남자 1.2년, 여자 0.4년의 수명 연장효과가 나타났다. 통계청 인구분석과 오병태 과장은 “89년 8.25년이던 남녀의 평균 수명차이가 99년 7.51년으로 줄어든 것도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남자들의 음주빈도와 그에 따른 사고확률이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평균수명의 증가, 즉 인구 고령화가 언제나 밝은 면만을 갖고 있는 것일까. 불행히도 인구 고령화는 퇴직자 증가에 따른 연금재정 악화와 사회 전반의 생산력 저하라는 폭발력을 갖고 있다.

실제로 지난 95년부터 고령화문제를 주요 경제이슈로 파악하고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30년 전만 해도 근로자 100명당 25명의 퇴직자가 있었으나, 30년 후에는 그 숫자가 50명이 되고 국민생산 중 더 많은 부분이 연금 및 의료제도를 통해서 퇴직자에게로 넘어가 물질적 생활수준이 평균적으로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에서도 “향후 50년간의 미국 경제 운명은 인구 고령화 추세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달려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미국 경제학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계층도 2차대전 이후1945~1955년 사이에 태어난 7,600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이다. 인구분포도상에 마치 큰 구렁이에게 통째로 먹힌 돼지의 형상으로 묘사되는 이들 베이비붐 세대가 인생의 새로운 단계에 진입할 때마다 미국 경제는 큰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베이비붐의 최초 수혜 업종은 거버(Gerber) 같은 유아상품 제조회사였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들이 ‘아기 생산’에 매달리면서 거버의 1950년 매출은 2년만에 2배로 급증했다.

그러나 60년대 중반 출산율이 급락하면서 거버는 유아 사업대신 생명보험이나 탁아사업으로 다각화할 수 밖에 없었다. 베이비붐 세대는 또 미국 부동산 시장의 구조도 뒤흔들었다. 1945~1950년에 태어난 초창기 베이비붐 세대가 결혼연령에 도달, ‘내집 마련’에 나선 70년대 초반부터 미국의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후배 베이비붐 세대는 선배들이 북적대며 부풀려 놓은 부동산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어 천문학적인 액수를 내고서야 비로서 자신의 집을 장만할 수 밖에 없었다.


고령화, 새로운 정치·사회문제 될 수도

현재 미국 경제는 50대에 접어든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시기가 10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미국 경제의 견인차였으며 연금재원의 공급자였던 베이비붐 세대가 퇴장할 경우 2020년 이후부터 연금재정이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가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미국 월가에서 50억달러의 자금을 굴리는 윌리엄 스털링(William Sterling) 같은 사람들은“정치지도자들이 고령화 사회의 물결이란 도전에 대응하지 못하면 참담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물론 일부 기업들은 베이비붐 세대의 대규모 은퇴를 겨냥해 보청기나 돋보기, 요양소 등 실버산업에 대한 투자를 모색중이기도 하다.

최근 ‘백호주의(白濠主義)’를 외치며 황인종 이민을 반대했던 호주나 캐나다가 동양계 이민을 적극 유치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20년 이후 닥칠 인구고령화에 대한 대비책이기도 하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20년후에 백인 은퇴자들을 먹여살릴 생산력을 동양계 이민자에게서 찾겠다는 것이다.

통계청이 내놓은‘1999년 생명표’는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우려되는 일들이 한국에서도 벌어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 있다.

게다가 향후 인간 게놈이 해독되고 수명이 급격히 늘어날 경우 인구 고령화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도 훨씬 큰 사태를 몰고 올 것이다. 특히 평균수명을 65세로 맞춰 연금을 거뒀던 생명보험회사나 일부 금융기관들은 중대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한국여자 평균수명 세계 최고수준

‘오래 살수록 행복하다’는 .전제가 통한다면 우리나라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상대적으로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 남자의 평균수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개국 평균(73.9세) 보다 2.2세가 낮지만 여자의 평균수명은 OECD 수준(80.3세)에 근접하고 있다.

전세계에서 평균수명이 가장 긴일본(남자 77.1세ㆍ여자 84.0세)과 비교하면 한국 남자는 일본 남자보다 6.7년을 덜 사는 반면 여자의 평균 수명은 4.8년 짧을 뿐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도 남녀간이 수명차이가 많은 국가에 속한다. OECD국가의 평균 남녀수명 차이는 6.4년이지만 한국은 그 차이가 7.5세에 달한다.

OECD 20개 국가 중 한국보다 남녀간의 수명차이가 높은나라는 헝가리(8.7세), 폴란드(8.5세), 프랑스(7.6세)뿐이다.

조철환 경제부기자

입력시간 2001/08/03 12:36


조철환 경제부 chch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