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시사실- ‘더 홀’

사춘기 소녀의 광적인 집착, 지하의 폐소, 극장 어둠 속를 가르는 날카로운 효과음. 10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공포 영화라는 점에서 ‘더 홀(Hole)’ 역시 이맘 때를 겨냥해 나온 공포 영화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러나 ‘13일의 금요일’ 이나 ‘스크림’ 처럼 칼과 피가 난무하는 여름 방학용 난도질(slasher) 영화가 아니다. 사춘기 소녀의 광기라는 점에서는 ‘캐리’를, 폐소 공포증으로 관객의 의식을 몰고 가는 노련한 테크닉에서는 히치콕 감독의 테크닉을 언뜻 연상시킨다.

구멍을 통해 지하 벙커로 들어 간 4명의 10대 남녀가 18일 동안 갇혀 있다 다시 빛을 보게 된다. 바깥 세상은 뒤늦게 실종 사실을 안다.

결국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구조 작업이 벌어지지만, 그들 중 한명만 살아 그 구멍을 통해 빠져 나오는 이야기다.

도입은 철저히 미스터리 어법을 따른다. 유일하게 구출된 소녀 리즈가 지하에서병원으로 옮겨져 질(膣) 검진을 받는 순간, 자지러질 듯 비명이 터져 나온다. 언뜻 혈흔마저 스친다. 제목의 표현에 따른다면, 이것은 상처받은구멍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땅속 구멍 아래의 세상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나?

이 영화는 사춘기의 히스테리와 스트레스에 관한 보고서로도 볼 수 있다. ‘예쁘고 날씬해야 된다’는 통념을 주입받고 크는 소녀들의 각종 일탈은 나름의 스트레스 풀기인 것이다.

영화에서 그들의 반항은 소녀끼리 모여 술 마시거나 담배 피우는 장면, 언제 빠져 나갈 지 모르는 벙커에 갇혔으면서도 섹스에 매달리는 절망적 모습 등으로 구체화한다. 아닌게 아니라 넷이 실종되자, 언론은 이들이 어디선가 섹스 파티를 벌이고 있을 거라고 대놓고 추측한다.

사실 지하 벙커에 갇힌 10대에게 남겨진 일은 영화에서 처럼 섹스뿐일지도 모른다. 서로의 몸을 격렬히 애무하는 장면, 키스가 달콤하지 않았다며 불평하는 장면, 섹스가 행해지는 옆 구석진 데서는 한 여학생이 계속 구토하고 있다. 자본과 정보의 홍수속에서 쾌락에만 매달리는 서구 10대를 이 영화는 극으로 밀어 부친다.

이들은 기숙 시설이 갖춰진 영국의 귀족적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다. 집에 하녀를 두고 있는, 그럴듯한 집안이다. 그 중 미국 출생인 한명은 ‘미친놈’ 투성이인 미국이 싫어 영국까지 왔다.

그러나 영국이라고 별 다를 것 없다. 테크노 뮤직, 레이브 파티, 섹스….

영국의 자취가 선명하다. 미국 영화에 길들진 사람들에게는 조금은 딱딱하고 조금은 멋을 부리는 듯한 영국식 발음이 신선하게 다가 온다.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에서 잔뼈가 굵어, TV와 영화를 두루 누비는 감독 닉 햄부터가 영국인이다. 캐스팅 작업은 영국(UK)을 중심으로 뉴욕(NY)과 로스 엔젤레스(LA) 등 모두 3곳에서 진행됐다.

음악과 효과음향의 탁월함을 빼트릴 수 없다. 팝 그룹 출신의 클린트 멘셀이 음을 다루는 솜씨는 고전에서 첨단까지를 망라한다.

11대의 바이올린, 3대의 비올라, 3대의 첼로, 베이스, 하프로 편성된 클래식 체임버 오케스트라의신비스런 선율, 테크노 비트, 각종 전자음향 등을 아우르는 멘셀의 음악적 역량이 돋보인다. 소리의 질감과 움직임을 그대로 재현하는 첨단 음향 시스팀 THX의 공로를 빠뜨릴 수 없다.

공포를 매개로 관객을 조여 가는 극적 박진감이 영화 최대의 매력이다. 심리 검사와 수사 장면을 간간이 흘려 보냄으로써, 객석은 ‘도대체 그 안에서 무슨 일이?’라는 질문에 빠져 들어간다.

‘어메리칸 뷰티’를 통해 낯을 익혔던 도라 버치가 유일한 생존자 리즈로분해 묘한 성적 매력을 풍긴다.

수사 감식, 심리 분석 등의 장치를 통해 진실을 조금씩 드러내 가는 미스터리적전개가 지적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묘한 공포 영화다. 8월 18일 개봉(02)3443-5542.


[전시회]



ㆍ 임정기 '생명-사랑가' 연작전

한지(韓紙) 작업으로 일상의 서정성을 독특하게 표현하는 작가 임정기씨의 근작이 소개된다. 잿빛, 황토빛, 흑백을 주조로 한국인의 삶을 투영한 ‘생명-사랑가’ 연작이다.

동산 순이도, 감나무에 둥지 튼 까치도, 이중섭의 아이들도 여기 다 모여 있다. 두텁고 요철 있는 특수 재질의 한지를 바탕으로 해, 스며듬ㆍ번짐ㆍ겹침ㆍ우려냄 등 전통적 기법을 동원한다. 무채색 안료와 수묵을 절충, 주제를 돋보이게하는 방식으로 제작된 그림들이다.

임씨는 시리즈전 ‘한국화 채묵의 접점’을 시작으로 이 시대 한국화의 길을 모색해 오다, 1991년 중국 대중시립미술회관, 소련 키에프 시립미술회관 등지에서‘동방의 빛’전(展)을 기점으로 해외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8년 ‘전환기의 한국화:자성과 자각’, ‘한국화 동질성 회복’ 등을 비롯, 우리시대 한국화의 살길을 화두로 꾸준히 작업해 오고 있다. 8월 1~9일 서울시립미술관 본관(02)736-2024


[콘서트]



ㆍ '동물원' '여행스케치'가 전하는 가을의 전설

그룹 동물원과 여행스케치가 무더운 여름에 지친 사람들을 맑은 서정의 세계로 안내한다. 각각 데뷔 14, 13년을 맞아 이번에 처음 만나는 두 그룹이다. 3시간 동안 펼쳐질 무대의 제목은 ‘가을의 전설’. 제 2의 IMF라는 극심한 경기 침체, 가뭄에다 수해까지 겹친 이번 여름의 힘겨운 이웃을 위로하는 자리다.

‘거리에서’ㆍ‘변해가네’ㆍ‘시청앞 지하철역에서’ㆍ‘널 사랑하겠어’ 등 동물원의 히트곡에, ‘별이 진다네’ㆍ‘웬지 느낌이 좋아’ ㆍ‘그 녀석들과의 여행’ 등 여행스케치의 맑은 선율이 함께 한다. 한여름 속 맑은 초가을 서정을 느낄 자리다.

매회 공연마다 관객을 선정, T 셔츠와 친필 사인 음반을 선물한다. 8월31~9월 2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 전당 야외극장(02)526-6929


[연극]



ㆍ 키스 미 케이트

신시뮤지컬 컴퍼니의 ‘키스 미 케이트’가다시 막을 올린다. 지난 7월 5~19일 23회 공연 동안 매일 만원으로 모두 4만여 관객을 동원했던 작품이다.

한국 연극의 원로 임영웅(66)씨의 연출력에 전수경ㆍ남경주ㆍ최정원 등 국내 뮤지컬 스타가 출연, 모처럼 1급 무대의 기쁨을 선사했던 무대다.

주원성ㆍ김명국, 이인철ㆍ김길호의 코믹 버디 연기 또한 그에 못지 않는 즐거움을 안겨 줬다. 9월 15~10월 3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화ㆍ토ㆍ일 오후 3시30분 7시 30분, 수ㆍ목ㆍ금 오후 7시 30분(02)580-1300


[아동극]



ㆍ 제13회 춘천 인형극제

춘천인형극장은 8월 9~15일 ‘제 13회 춘천 인형극제’를 펼친다. 국내의 40개 인형극 전문 극단과 20개 아마추어 극단, 해외 4개국 6개 극단이 한 무대에 선다.

강승균 예술감독이 쓰고 연출하는 대형 인형극 ‘봄내와 코코바우’의 전야제 공연에 이어, ‘알록이의 모험’ 등 본 공연이 기다린다.

‘봄내…’는 작은 인형만 나오던 종래 인형극의 고정 관념을 탈피, 10개의 대형 인형 연기로 깊은 인상을 심어줄 무대다. 무대 공연과 함께 시가 퍼레이드, 명동 거리 인형 전시, 인형극전문 워크샵 등도 펼쳐진다(033)242-8450.


[클래식]



ㆍ 제3회 콰이어링 2001

합창 음악제 ‘콰이어링 2001’이 제 3회를 맞았다. 이번 대회는 13일 여성합창페스티발,15일 남성합창페스티발의 순으로 펼쳐진다.

13일-켄티클 여성합창단(지휘 용기)ㆍ에반젤 코러스(지휘 창배)ㆍ샬롬 싱어즈(지휘 최광덕)ㆍ우먼 어즈(지휘오세종), 15일-숭실 OB 남성합창단(지휘 이호중)ㆍ한국기독남성창단(지휘 이원웅)ㆍ큰빛 남성코랄(지휘 권승수)ㆍ코리아 남성합창단(지휘 유병무).총출연 인원은 750여명.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02)2268-2757.

장병욱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08/07 15:13


장병욱 주간한국부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