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와 첫 협연하는 다 장르 기타리스트 이병우

통념의 틀을 깨는 음악적 이단아

“오케스트라와 기타의 협연으로 이곡의 전악장이 연주되기는 이번이 국내 처음이죠.” 로드리고의 ‘아랑페즈협주곡’ 연주를 앞둔 기타리스트 이병우(37)씨가 미소 띠며 말한다.

너무나 친숙한 선율이다. 그러나 최고난도의 연주를 요구한다. 기타의 모든 테크닉이 한 곡에 망라됐다는 사실은 엄정함을 최상의 가치로 두는 클래식 연주자쪽에서 보자면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그래서 기껏해야 국내서는 문제의 하이라이트부분을 적당히 편곡해서 연주하는 식이었다. ‘아랑 페즈(Aran Juez)’가 오케스트라와 독주자 협연이라는 원래 형태로 전곡 연주되는 것은 국내에서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콘서트에서 그는 자신의 본령, 클래식으로 돌아간다. 가요와 재즈 등 인근장르를 마음대로 넘나드는 모습에 익숙해 온 사람들에게 악보대로 얌전히 연주하는 클래식 뮤지션 이병우란 낯설다.

그는 그러나 사람들의 기대치를 배반하지 않는다. “학교 다닐 때는 악보대로만 했지만, 이번에는 새롭게 연주하고 싶어요.”

카덴자 부분의 연주를 피아노식으로 바꿔, 더욱 현란하게 살려 낸다. 워낙 잘알려진 난곡을 연주한다는 부담감을 아예 한술 더 떠 맞받아치는, 그 다운 대응 방식이다. 27살때 처음으로 완주한 이래, 콘서트에서, 연습실에서 해 왔던 무수한 연주를 이번에 또 베껴 먹을(copy) 수 없다는 자존심 때문이다.


안주를 거부하는 '재즈뮤지션'

그는 왜 통념화된 상식화된 음악을 거부 하는가? “이미 완결돼 있는대로만 잘 해야 인정받는 우리 사회 분위기를 바꿔 보자는 거죠.” 오직 하나의 정답을 놓고 거기에 끼워 맞추는 음악 콩쿨식의 연주는 할 수 없다는 각오다.

새롭게 해석된 것만이, 그에게는 의미가 있다. “옳고그름의 문제는 나중이죠.” 그는 자신을 가리켜 클래식 뮤지션이 아니라 아예 “재즈뮤지션”이라고 까지 단언한다. 최고의 클래식 교육을 이수해 놓고도, 그 속에 안주하지 않는 그의 말답다.

그의 음악적 출발점은 11살(월곡초등4)때 어머니가 선물한 기타였다. 기타에 몰두한 그는 중학 시절 지미 페이지, 제프 벡 등 록 기타의 제왕들을 따라(copy)하게 됐다. 고교 시절에는 퓨전 재즈의 달인 래리 칼튼을 넘보는 수준이었다.

서울 예전에서 음악적 수련을 1년 동안 쌓은 그에게 학교는 더 이상 큰 의미를 띠지 못 했다. “내가 그렇게까지 기타에 빠질 줄 어머니도 모르셨죠.” 그는 부모를 설득, 클래식 기타의 본고장으로 달려갔다.

1990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 음대에 입학한 그는 물 만난 물고기였다. 학교는 물론, 훌륭한 선생들의 마스터클래스를 찾아 간 자기 업그레이드의 시간이었다.

특히 1992년 리히텐슈타인의 마스터 클래스에서 만났던 스코틀랜드 클래식 기타리스트 데이비드 러셀은 새로운 테크닉의 경이뿐 아니라, 제자에게 모든 것을 주는 온화한 인간성으로 그를 감복시켰다.

이전에는 못 보던 교사상이었다. 피바디 음악원 시절 4년 동안 개인 레슨 교사였던 줄리언 그레이는 선생이 아니라 친구 같은 존재였다.

한국적 관점으로 보자면 중고교 시절의 그는 문제아에 가깝다. 중2 시절 호기심에 담배를 피웠다. 고교 시절은 선배나 교사한테 맞은 기억밖에 없다.

명령과 규율에 무조건 복종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멍하게 살던 시절이었죠.” 오직 하나의 목표를 향해 무한 경쟁으로 내몰리는 한국의 청소년에게 건네는 그의 말은 명쾌하다. “딴사람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라.”

2000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그를 ‘월요예술 무대’ 등 크로스오버적 음악 프로가 반겼다. 조용한 성격이라 TV 출연은 쑥스러워 한다는 그이지만, 출연을 위해 연습을 하다보면 스스로 연습도 되고 국내 문화의 현주소도 피부로 와 닿아 좋다고 한다.

그는 말을 아끼는 편이다. 허락도 구하지 않고 자신의 곡을 갖다 쓴 가수의 반주를 거절하는 정도가 그의 음악외적 발언이다.

사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병우의 음악과 낯을 익혀 왔다. 베이시스트 조동익과의 협연 앨범 ‘어떤날’로 한국의 타성적 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던 그는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혼자 갖는 차 시간을 위하여’, ‘생각 없는 생각’, ‘그해 겨울’ 등 틈틈이 발표한 작품을 통해 호기심만 부쩍 키워 오던 터였다.

클래식도, 재즈도, 뉴 에이지도, 포크도 아니면서 동시에 그 모두였던 그의 음악. 특히 ‘어떤날’ 1집의 LP는 마니아들 사이에선 보물로 취급받고 있을 정도다.


'현재의 유행과 정반대의 음악 만들겠다"

장르와 장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그처럼 제3, 제4의 장르를 만들어 가는 그는 자신의 음악이 점점 더 크로스오버적으로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나는 현재의 유행과 정반대의 음악을 만들겠다”는 그의 말은 한국인의 문화소비 관행에 대한 은근한 비판이기도 하다. “힙합이다, 테크노다, 단 한가지 유행에 매몰돼 버리니 나라가 좁다는 소릴 듣죠.”

자기 복제가 아닌, 자유와 생성의 논리만이 그를 유혹하고 충동한다. 일급 클래식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재즈 뮤지션 이병우.

강남구 포이동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 그의 작업 스튜디오가 국내 음악 스펙트럼을 확장시켜 주고 있다. 키보드, 피아노, 녹음실이 마련된 널찍한 스튜디오에서 눈에 띠는 것은 다양한 기타.

보통 클래식 기타 3종류를 비롯, 전자 기타 5종, 통기타 1종, 베이스기타 1종, 클래식 전기 기타 1종 등 각양 각색의 기타 11종은 오늘도 독특한 풍경과 소리를 연출해 낸다.

이번 콘서트는 18일 오후 3시 포스코 로비에서 금난새씨가 지휘하는 유라시안 오케스트라의 반주로 펼쳐진다. ‘아랑페즈 협주곡’이 어떤 새모습으로 다가올까? 피아노화한 기타란 어떤 소리일까? 방송에서, 콘서트에서 장르를 초월하는 그의 음악적 행보를 확인해 온 사람들의 호기심이 더해간다.

장병욱주간한국부 기자

김명원기자

입력시간 2001/08/07 19:36


장병욱주간한국부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