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항공시대를 여는 주역들] “꿈자리 뒤숭숭하면 비행 안한다"

엄격한 자기관리와 긴장속 ‘전투조종사 24時’

한국군에서 전투조종사만큼 한 사람이 운용하는 화력이 강한 군인은 없다. 전투조종사만큼 비싼 장비를 운용하는 군인 역시 없다. 몸값에서도 전투조종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한국 공군주력 F-16 전투기의 대당 가격은 350억원 이상. 소령급 숙련 전투조종사를 양성하는데 드는 각종 비용은 최고 120억원에 달한다.

비싼 몸값에 비싼 무기를 운용하는 전투조종사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어떻게 살아갈까.

F-16 전투기를 운용하는 공군 3710부대. 열기가 이글거리는 활주로를 지나 조종사 휴게실로 들어가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맞아준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비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조종사들은 첫인상부터가 타군과 다르다. 조종복을 입고 있지 않다면 군인이라기보다는 영화에 등장하는 대기업 엘리트 사원들로 착각할 법도 하다.


엄청난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

하지만 전투조종사만큼 정신적, 육체적 피로감을 느끼는 군 직종도 많지 않다. 고가장비를 운용하는 반대급부를 톡톡히 치른다.

F-16은 성능이 뛰어난 만큼 전투조종사가 받는 육체적 부하가 크다. F-16 조종사는 고속기동시 최고 지구중력(몸무게)의 9배를 견뎌내야 한다.

한 전투조종사의 이야기. “위에서부터 9배의 몸무게가 찍어 누른다고 생각해보라. 온몸의 피가 아래로 쏠리고, 몸을 움직이기 어려울 만큼 압력을 받는다.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은 기절해버린다. 전투조종사 중에는 이 때문에 퇴행성 디스크를 앓는 경우도 있다.”

비행중인 조종사의 음성녹음기록에는 이상한 소리가 자주 잡힌다. “끙끙”거리는 신음을 불규칙하게 들을 수 있다. 고속기동에서 오는 육체적 부하를 이겨내기 위해 온몸에 힘을 주면서 내는 소리다.

조종석은 에어컨 장치가 좋아 쾌적하다. 하지만 한 차례 비행을 하고 착륙하면 용을 써댄 탓에 옷이 흠뻑 젖어 버린다. 나이 40대가 되면 하루에 1회만 비행해도 퇴근후 녹초가 된다고 한다.

비싼 전투기를 모는 만큼 비행안전을 위한 정신적 스트레스 역시 만만찮다. 비행대대 화장실 문 안쪽에는 긴급상황에서의 대응지침을 깨알같이 적어놓은 메모지가 붙어있다. 화장실 출입도 비행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지는 셈이다.

전투조종사들은 끊임없는 평가의 대상이다. 매번 비행 때마다 주어진 임무에 대한 평가를 받고, 조종숙달 정도와 전술능력에 대한 평가도 주기적으로 받는다. 평가가 낮으면 임무부여와 진급 등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

전투조종사가 수도승에 비유될 만큼 철저한 자기관리와 금욕적 생활태도를 유지하는 것은 이 같은 육체적, 정신적 부담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전투조종사들은 아들보다 딸을 낳는 비율이 높다고 한다.

3710부대 부대장은 전투비행을 ‘정형묘합(精形妙合)’이란 말로 설명했다. 정신과 육체, 조종사와 전투기, 전투기와 지원요원이 하나가 돼야 완벽한 비행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전투조종사는 장성이 된다해도 매년의 무비행시간을 채워야 한다. 공군참모총장도 예외가 아니다. 3710 부대장은 4,500시간의 비행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슈퍼 전투조종사다.

그는 전투조종사에게 금욕과 자기관리는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조종사간의 유대는 매우 끈끈하다. 부대장에 따르면 가족까지 속속들이 파악해 하나가 된다. 한 가족 개념(One Family Concept)이 그의 지휘철학이다.


수도승에 비유될 정도의 생활태도

금욕과 자기관리 대상에는 음주는 물론이고 부부생활까지 포함된다. 전투조종사들은 비행 12시간 전부터는 술을 마시지 못하게 규정돼 있다.

하지만 평소에도 술은 매우 자제한다. 소주와 양주는 거의 마시지 않는다. 비행 컨디션을 해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이든 절제한다. 하지만 흡연에는 다소 관대하다. 조종사의 40% 정도가 담배를 피운다.

전투조종사는 공군사관생도나 항공대 ROTC, 조종장교 후보생 중 신체검사에 합격한 사람을 대상으로 초등, 중등, 고등비행훈련 등 2년간 훈련을 거쳐 양성된다.

하지만 이 과정은 날갯짓을 배우는데 불과하다. 병아리 전투조종사는 실무비행훈련을 통해 어른 독수리, 즉 편대원의 반열에 끼게 된다. 전투조종사로 비행을 시작하면 모든 비행시간은 자동으로 기록된다. 이륙 후 착륙까지의 순수 체공시간이 비행시간이다.

전투조종사들은 일상의 모든 것이 비행과 연결돼 있다. 주야간 비행과 비행준비 등 일정에 따르다 보면 자연히 가족을 등한시하기 마련이다.

이정석 부대장은 “아내의 희생과 봉사로 오늘의 내가 있다”며 “가족에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남편과 아빠 중심의 생활을 하기는 편대장을 맡고 있는 장기상 소령(공사 38기ㆍ35세) 가족도 마찬가지다. 장 소령의 비행기록은 1,800시간.

장 소령의 가족은 부인 전은숙(34)씨, 큰딸 예원(6), 작은딸 희원(5)으로 네식구다. 비행일정에 맞추다 보면 부인이 집안 대소사를 챙겨야 할 경우가 많다. 부인이 가장 관심을 갖는것은 남편의 잠과 음식이다.

숙면을 취하도록 하기 위해 부인은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방에서 잔다. 전투조종사의 하루 소모열량이 일반인보다 2,000칼로리 높기 때문에 식단에 특히 신경쓴다. 남편을 위해 1년에 두번 보약과 개소주 등을 마련하는 것은 부인들의 ‘정규업무’에 속한다고 한다.


부부싸움도 비행없는 날 골라 해야

남편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부부싸움도 비행이 없는 날을 골라서 하는 부인이 있다. 조종사가 가장 민감해 하는 것은 꿈이다.

꿈자리가 뒤숭숭한 날이면 비행에서 빼줄 것을 자청한다. 부인도 꿈자리가 나쁘면 남편의 상관이나 편대원에 전화로 사정을 전한다. 조종사 부인들을 위해 공군부대는 일종의 핫라인인 ‘사랑의 전화’를 운영하고 있다.

남편의 비행시간에는 설거지까지 하지 않는 부인도 있다. 설거지하다 혹 그릇이라도 깨뜨리면 불길하다는 이유에서다.

F-16은 기본적으로 조종사 1명이타는 단좌기다. 하지만 창공을 가로지르는 F-16에는 많은 사람이 함께 타고 있다. 전투조종사의 가족들과, 지원요원, 그리고 세금을 내는 국민이 함께 날고 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김명원 사진부 기자

입력시간 2001/08/14 19:02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