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역사의 심판

김대중 대통령의 ‘옥중서신’을 보면 차입을 부탁한 책 가운데 역사책이 무척 많다. 어떤 중대 결심을 말할 때 그는 꼭 이 말을 쓴다. “역사와 국민 앞에 모든 것을 걸고 이를 다짐한다”는 문구다.

이번 8ㆍ15 경축사에서도 언론사 세무조사 부문에 대해 “그동안 진행되어온 세무조사와 공정거래조사는 법과 원칙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어떠한 정치적 의도도 없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역사’를 강조했다.

그러나 사주가 구속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8월18일 ‘역사를건 공정’이라는 김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언론은 장악 될 수 없다’, ‘신문사발행인 구속되다’라는 제하의 사설을 통해 반박했다.

동아는 이번 언론사주 구속은 ‘정권의 권력 행사’라고 했고 조선은 ‘언론논조 손보기’라고 규정했다. 두 신문은 역사의 심판이나 국민의 질타 보다 재판의 공정성을 기대했다.

세계의 지도자 정치가 정략가 외교가들은 무척 ‘역사’를 들먹이기를 좋아 한다. 김 대통령 못지않게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역사’를 그의 외교와 학문의 기본으로 삼고 78년의 인생을 살았다.

그는 1만여 쪽에 달하는 회고록 3부작(‘백악관 시절’, ‘격동의 시절’ ‘새질서의 시절’)을 쓴 데 이어 지난 7월 ‘미국은 외교정책이 아직도 필요한가- 21세기의 외교를 위해’ 라는 제목의 새 책을 또 냈다.

뉴욕 타임스 국제문제 담당 칼럼니스트인 토마스 프리드먼(‘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의 저자)은 키신저 신작을 길게 비평했다.

프리드먼은 키신저가 부시 새 대통령에게 공화당의 원로 외교 정책가로서 바친 새‘군주론’이라고 분석했다.

프리드먼은 1593년 마키아벨리가‘군주론’을 쓸 당시 이탈리아는 도시국가로 갈라서 있어 군주론은 공(公)국의 군주를 위한 것이었지만 키신저의 이 책은 세계를 상대하는 미국의 대통령을 위한 ‘대통령론’이라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책은 ‘군주’나‘대통령’이 어떻게 나라와 백성을 다스릴 것이냐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인간을 통솔하는 방법에, 키신저는 역사에 기초해 세계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냐에 초점을 두고 있다.

프리드먼에 의하면 키신저의 책은 마키아벨리의 책처럼 권모술수로 채워져 있지 않다.

키신저는 부시 대통령이 미국의 유권자가 3분의 1 정도만 참가한 투표를 통해 선출되는 등 최근의 대통령 선거는 미국인의 민심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만큼 선거 과정 등에서 분출된 과다한 패권주의나 과대한 고립주의가 전체 미국 시민의 의견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충고하고 있다.

키신저는 세계 각국은 각각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이를 대국의 이데올로기로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역사의 진행과정을 살피고 과장된 이상주의나 현실주의를 버리라고 충고하고 있다.

그러나 신간을 통해 밝힌 키신저의 역사인식은 실제 그가 외교일선에서 펼쳤던 내용과 상응하지 않다는 비판서가 지난 8월초에 나왔다.

캘리포니아 대학 워싱턴 센터 소장인 래리 벌먼이 쓴 ‘평화없고, 명예도 없고- 닉슨, 키신저의 월남 배반’이다. 이 책은 월남전 종식을 둘러싸고 닉슨과 키신저가 미국의회, 미국시민, 월남의 티우 대통령을 얼마나 배신했는지를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다.

벌먼이 책을 낸 것은 키신저가 회고록과 그 밖의 여러 책에서 73년 1월 체결된 월남전 평화협상은 ‘평화와 명예’를 준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같은 주장이 실상과 거리가 멀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월남, 월맹, 중국측 자료를 살펴본 끝에 그 같은 주장이 비밀을 감춘 닉슨과 키신저의 ‘편견’과 ‘자기중심적 오만’에 찬 비밀외교의 결과라는 것을 밝혀 낼 수 있었다.

벌먼 교수의 추적에 의해 키신저와 닉슨은 티우 대통령에게 민주당 출신 존슨 대통령이 1968년 5월 재선 출마를 포기할 것이라고 알린 뒤 1968년 5월에 파리에서 시작된 월맹과의 평화회담에 티우 측이 참가하지 않도록 티우측과 밀약을 맺었다.

그 후 닉슨은 대통령이 된후에 63년 5월부터 티우 몰래 키신저를 파리에 잠행시켜 월맹의 협상대표 리 둑 토우와 협상토록 했다. 그 사이 미국은 캄보디아를 폭격했으며 1972년 1월에 재선선거전을 앞두고 국민에게 파리평화협상을 시작하겠다고 발표할 때에야 티우에게 월맹과 파리에서 비밀협상을 한 사실을 알렸다.

키신저의 마음 저변에는 월남의 몰락에 대한 생각이 별로 없었다.

닉슨은 미국이 건국이래 어느 전쟁에도 지지 않았다는 명예를 월남을 지원함로써 비록 티우나 미국 의회를 속이더라도 이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파리협상은 4년여 걸려 73년 1월 체결되고 1975년 4월29일 수도 사이공은 월맹에게 함락됐다.

그때 백악관 장관회의에서 국무장관이던 키신저는 “우리는 그래도 4만2,000~4만5,000명의 월남민과 함께 철수하는 명예를 얻었다”고 했다.

포드 대통령은 “역사는 우리가 무엇을 했고 무엇을 남겼는지를 심판 할 것이다. 그 심판을 조용히 기다리자”고 말을 마쳤다.

미 국무부 바우처 대변인은 지난 8월10일 사후 5년까지 공개하지 않겠다던 키신저전 국무장관의 장관 재임시 나눈 각국 원수들과의 대화 녹취록 1만 쪽을 올해 말까지 공개하겠다고 했다.

한국 언론사주 문제도 월남전을 둘러싼 비밀 외교에 심판이 내려지고 있듯이 언젠가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1/08/21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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