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 남북한 ‘물전쟁’ 남의 일 아니다

북한 임진강에 댐 20여개건설…한국은 무대응

한국이 임진강 물 이용권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높다. 북한이 지난 수년간 비무장지대(DMZ) 북방 임진강 상류에 다수의 댐을 건설하면서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임진강은 남북한을 합쳐 연장이 254.6km에 이르는 일종의 ‘다국적 강’이다. 남한 땅을 흐르는 하류지역 83.5km를 제외한 171.1km가 북한에 위치해 있다.

다국적 강은 국제법상으로 상류지역의 일방이 마음대로 관리할 수 없다. 북한이 상류지역에 국제법을 무시한 채 댐을 건설했지만 한국은 햇볕정책에 눌려 항의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높다. 무대응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측 임진강 수계 주민들이 받고 있다.

봄가뭄이 지독했던 올 초, 임진강수계 경기도 연천군민들은 갈수기에도 끄떡없던 임진강 본류가 일시적으로 말라붙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DMZ 이북에서 내려오는 강물이 며칠간 주기적으로 끊어졌다가 이어지는 현상이 벌어진 것. 이 바람에 연천군 군남면 선곡리 선곡양수장은 제한급수를 하는 등 비상이 걸렸다. 봄채소 농가가 타격을 받은것은 필연지사. 비닐터널 1,000평에 오이를 심었던 선곡리의 이성춘(44) 씨는 봄농사를 망쳤다.


연천군민들 이미 심각한 물부족 경험

임진강 본류의 흐름이 끊어진 원인은 북한에 있었다. 북한이 DMZ 북방 450m와 16.5km 지점에 각각 설치한 ‘4월5일’ 1호 댐과 2호 댐이 담수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1호 댐은 길이 400m에 높이 13m의 콘크리트 월류식(越流式)댐. 추정 저수량 2,000여만 톤에 1,500~2,000kw 규모의 발전량을 갖고 있다. 보다 북방의 2호 댐은 길이 500m, 높이11m, 최대 저수량 770만톤의 월류식 댐으로 발전능력은 4,000kw로 추산된다.

북한은 이들 댐을 소수력 발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댐에 물을 가둔 뒤 내보내면서 발전하고, 물이 빠지면 다시 담수하는 형식이다. 자연히 발전할 때는 하류로 물이 흘러오지만, 담수할때는 물흐름이 끊기게 마련이다.

수량이 크게 줄자 선곡양수장은 지하댐 건설을 비롯한 취수원 확보 계획을 수립중이다. 지하댐은 강바닥 지하에 콘크리트벽을 만들어 지하수를 담아놓는 시설이다.

문제는 4월5일 1, 2호 댐에 그치지 않는다. 민주당 이윤수 의원(건설교통위)이 국정원과 통일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임진강 본류와 지류에 20여개의 중소형 댐을 건설했다. 1999년부터 임진강 본류에 10여개를 비롯해 지류인 고미탄천, 평안천 등에 10여개를 건설했다는 것이다.

당국은 4월5일 1, 2호 댐을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서는 아직 규모나 저수량 등 구체적인 제원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부분 농업용수 공급이나 발전용으로 건설됐고, 발전량을 모두 합쳐도 100만kw에는 미치지 못할 수준인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건설교통부 등 당국은 이들 댐이 남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평가하고 있다. 대부분 물이 넘쳐 흐르는 월류식으로 건설돼 남한쪽으로 유입되는 강물의 절대량이줄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갈수기에는 강물 유입양상이 단속적으로 됨에 따라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아울러 1호 댐이 방류를 중단할 경우 임진강 하류지역이 일시적인 농업용수 부족과 연천취수장 가동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임진강물 다른곳으로 빼돌리면 ‘심각’

하지만 정작 문제는 북한이 이들댐의 물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경우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우효석 수자원환경연구부장은 북한이 도관 등을 이용해 물을 빼돌린다면 남한으로 유입되는 절대수량이 감소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 부장의 이야기. “북한이 북한강 상류에 건설한 금강산댐은 임진강과 연계돼 있다. 임진강물을 금강산댐으로 이동시키고, 금강산댐에 모인 물을 다시 동해안 안변으로 이동시켜 발전용수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계획에는 임진강물을 끌어오는 것이 처음부터 포함돼 있었다.”

북한이 계획대로 추진한다면 남한측 임진강 수계는 매년 갈수기에 만성적인 물부족을 당하게 된다.

북한에서 유입되는 임진강 본류의 물은 연간 25억4,000만톤으로 임진강 전체 수량의 3분의 2에 달한다. 북한이 임진강 물을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이른바 ‘유역변경’을 한다면 남한은 수자원 이용과 홍수조절에 대한 통제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북한이 금강산댐 물을 동해안으로 빼내기 시작한 점을 감안하면 임진강도 유역변경될 가능성이 높다. 올 봄가뭄 당시 금강산댐에서 평화의 댐으로 유입되는 수량은 초당 1톤에 불과했다. 북한측 유역면적으로 보아 초당 10톤은 한국측으로 내려와야 한다. 나머지는 결국 북한이 마음대로 빼내 썼다는 계산이 나온다.

북한의 임진강 댐건설과 유역변경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중앙대 법대 이상돈 교수(환경법)는 “다국적 강에서 유역변경은 전쟁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설명. “북한이 임진강 상류에 무단으로 댐을 건설하고 유역을 변경하는 것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자연히 흐르는 물을 위에서 막는 것은 국제법의 일반원칙에 어긋난다. 당연히 분쟁의 소지가있다. 시리아가 요르단강 상류에 댐을 건설하려 하자 이스라엘이 폭격기를 보내 폭파(3차 중동전쟁)시켰을 만큼 수자원은 민감한 문제다.”


“댐건설과 유역변경은 국제법위반”

이 교수는 북한이 댐건설 전 한국과 협의하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북한이 건설 전 한국과 상의하는 것은 필수적인 절차다. 남북한이 공동으로 임진강 상류에 대한 수량을 계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호혜적인 이용방법을 협의하는 것이 순서다.

한국은 사후적으로도 북한측의 불법행위에 항의했어야 했다. 남북한간 사후 협상도 필수적이다. 현재로선 한국측이 쓸 카드가 없다. 북한이 한국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6ㆍ15 남북정상회담당시 임진강 수자원 공동개발 문제를 중점사업으로 추진키로 했다.

하지만 올 3월 건교부 수자원 국장이 방북, 최초로 실무자 협의를 벌인 이후 전혀 진전이 없는 상태다. 임진강은 한강의 3분의 1에 달하는 유량을 갖고 있다. 물부족 국가인 한국이 엄청난 수자원을 북한의 ‘호의’에만 의존하는 기묘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임진강 수계 주민들은‘물 걱정’이 업보처럼 돼버렸다. 지난 수년간 주민들을 가위 눌렀던 홍수 걱정에다 새롭게 가뭄 걱정이 추가된 것이다. 임진강변 주민들은 이제 ‘비가 많이 와도 걱정, 비가 적게 와도 걱정’인 상황을 맞게 됐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김명원 사진부 기자

입력시간 2001/08/22 19:27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