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LP여행] 포 클로버스

밝고 건강하게…건전가요의 원조들

민요와 트로트 일색이던 60년대초, 포 클로버스는 록을 도입한 신중현과 더불어 다양한 장르의 풍성한 곡들로 가요의 부흥기를 연 최초의 노래 동아리였다.

0미8군 클럽을 주무대로 활약하며 가깝게 지내던 최희준, 위 키리, 유주용, 박형준. 작곡가 손석우, 김기웅과 함께 '밝고 건강한 홈가요의 보급으로 대중가요를 발전시켜보자'는 신가요 운동을 펼치기 위해 뭉쳤다.

이 때는 전쟁의 폐허에서 막 벗어나 산업화의 뜨거운 열기로 잘살아보자는 희망의 꽃봉오리가 국민들의 마음속에 몽실몽실 돋아나던 시절이었다.

포 클로버스는 보컬그룹은 아니었다. 64년쯤 세시봉에서 멋들어진 화음을 꿈꾸며 킹스턴 트리오의 '탐 둘리' 등을 함께 불러도 보았지만 '멤버들의 개성이 너무 강해 중창단으로는 그저 그랬다'고 리더격인 최희준은 회고한다.

실제로 이들은 독자적인 솔로활동으로 각자 확고한 위치를 쌓았다.

또한 명문고, 대학출신의 엘리트가수라는 학벌프리미엄은 더욱 유명세를 타게했다. 하지만 포 클로버스의 진정한 평가는 비탄조로 일관된 기존의 트로트와 차별되는 밝고 건강한 가요나 외국의 히트팝송으로 5ㆍ16쿠데타로 침울했던 당시 대중들의 마음을 희망적이고 신나게 변화시킨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경복고, 서울대법대 출신 최희준은 냇 킹 콜의 목소리를 흉내낸 허스키한 창법이, 명문 경기중고, 서라벌예대 출신인 위키리(본명 이한필)는 보비 다 린을 빼다놓은 듯한 창법으로 대중들에 어필했다.

경기고, 서울대 문리대출신 유주용은 한국의 프랭크 시나트라를 자처했을 정도였고, 서울공고, 외국어대 서반어과 출신 박형준은 페리 코모를 닮은 미성이 압권이었다.

이들은 63년 대한극장에서 열렸던 세계적인 가수 패티 페이지의 내한공연 때는 한국가수들을 대표해 찬조출연했을 정도.

2장의 발표음반은 구하기 힘든 희귀음반으로 마니아들도 음악성을 인정하고 있다.

'찐빵'이란 별명의 최희준은1957년, 대학3학년때 서울대 법대생 장기자랑대회에서 흑인가수 냇 킹 콜의 노래모창으로 입상했다. 이를 인연으로 미8군쇼 밴드마스터 파피에게 소개되어 쇼보트라는 단체에 소속되면서 가수활동을 시작했다.

58년 대학졸업반때는 고시낙방으로 진로문제를 고민하던중 친구의 소개로 작곡가 손석우를 만나 60년도에 '목동의 노래'를 히트시키며 본격적인 가수로 나섰다.

61년 ‘우리애인은 올드미스’, 63년 ‘진고개신사’, 64년 ‘맨발의 청춘’, ‘빛과 그리고 그림자’ , 65년 ‘하숙생’, ‘종점’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가수왕에까지 등극하는 전성기를 구가했다.

특히 KBS 라디오드라마 주제가였던 하숙생은 널리 불리어진 그의 대표곡. 철저한 자기관리로 스캔들이 전혀 없던 가수였던 최희준은 4대 가수분과위원장도 역임했다. 1963년엔 짚차를 구입, 가수 마이카1호라는 기록도 지니고 있다. 96년엔 15대 국회의원으로 변신하기도 했던 그는 현재 문예진흥원 상임감사로 재직하고 있다.

진주가 고향인 위키리(본명 이한필)는 인천 창영국 5학년때 콩쿨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기도 했던 타고난 재주꾼. 중고시절부터 나팔을 불며 예능에 큰 관심을 두던차에 62년, 친구인 권투선수출신 가수이자 작곡가 김기웅의 권유로 사흘간 연습하여 응모한 미8군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가수생활을 시작했다.

데뷔곡은 64년 발표한 김기웅작곡 '종이배'. 최대 히트곡은 '저녁 한때의 목장풍경'으로 66년MBC10대가수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겨주기도 했다.

요절가수 배호와도 절친했던 위키리는 60년대 후반부터는 동아방송의 DJ로 나섰고 70년대는 동양TV 쇼쇼쇼의 사회자와 KBS전국노래자랑 초대사회자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그는 현재 LA 한인방송TV의 회장으로 재직중이다.

유명 공학박사였던 부친과 독일인 모친사이에서 출생한 혼혈 미남가수 유주용. 그는 68년곡 '부모'외에는 별다른 히트곡이 없으면서도 폭넓은 인기를 유지했던 특이한 가수였다.

그는 60년대말 미니스커트 열풍을 몰고온 가수 윤복희의 첫 남편이자 60년대 인기여가수 모니카 유의 동생으로도 유명했다. 한때 가요계를 떠나 경남기업의 해외담당 상무로 변신을 하기도 했지만 회사의 부도이후 미국에서 개인사업가로 살아가고 있다.

'첫사랑 언덕'으로 유명한 박형준에게는 재미있는 숨겨진 일화가 있다. 1964년 어느날 미군장교클럽인 국제호텔블루룸 나이트클럽(현재 KAL빌딩)에서 평상시처럼 냇 킹 콜의 '고엽'을 노래하던중 방한중이던 진짜 냇 킹 콜이 클럽으로 들어오자 당황한 나머지노래를 중단하고 집으로 줄행랑을 쳐버렸다 한다.

그는 미국으로 이민, 현재 시애틀에서 살고 있다.

비탄조의 트로트만이 넘실대던 대중가요를 팝과 재즈풍의 밝은 신가요로 수준을 높이며 사회분위기를 건강하게 만든 포 클로버스는 가요의 최대 부흥기를 가능케한 선구자들이었다.

입력시간 2001/08/22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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