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영화세상] ‘老’ 제작자의 ‘젊은’ 생각

황기성사단의 황기성(62) 대표. 태흥영화사 이태원(63) 사장과 함께 아직도 꾸준히 작품을 만드는 유이(唯二)한 60대 제작자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영화에 대한 열정이 아직도 넘친다는 것이다. “영화는 젊은 사람이 하는 것”이란 통념에 반발한다.

그러면서 색깔이 다르다. ‘친구’같은 흥행 대박 작품을 마다할 제작자가 어디 있을까 마는 이태원 사장은 “내 나이에 만들 수 있는 것을 만든다”고 고집한다.

그 나이에 맞는 것이라니. 다름아닌 가장 한국적인 정서와 소재를 말한다. 임권택 감독을 만나고, ‘서편제’를 만들고, ‘춘향뎐’으로 한국영화로는 처음 칸영화제 본선에 나가면서 그의 우리 색깔 진한 영화에 대한 열정은 더욱 뜨거워졌다.

임권택 감독과 이번에는 장승업의 그림 이야기인 ‘취화선’으로 2002년 칸영화제 수상에 다시 도전하겠다고 한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그가 만드는 영화는 예술성에 비중을 둔다.

반면 황기성 대표는 늘 새로운 감각의 상업영화에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신인감독을 찾고, 새로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1985년 황기성사단이란 자기 영화사를 만들고 나서 그의 손을 거쳐 데뷔한 감독만 10명이 넘는다.

맨 먼저 드라마 ‘생인손’을 보고 박철수를 불러 ‘어미’를 맡겼고, ‘성공시대’의 장선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강우석, 1995년 위기에 빠진 황기성사단을 구한 ‘닥터봉’의 이광훈, ‘고스트 맘마’의 한지승, ‘피아노맨’의 유상욱….

“황기성사단은 감독사관학교”란 말도 그래서 나왔다. “다루기 쉽고, 싸니까”라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그는 영화가 환경의 산물이고, 때문에 늘 새로운 아이디어와 대중의 정서를 가장 잘 포착할 수 있는 젊은 감각을 원한다.

그래서 오직 흥행만, 극단적으로 돈만 생각하는 제작자란 말도 듣는다.

실제 ‘닥터 봉’ 이후 나온 작품들, 이를테면 ‘고스트 맘마’ ‘찜’ ‘신장개업’이 이를 증명해 준다. 그렇다고 모두 성공한 것도 아니다.

“아직도 덜 상업적이어서 문제다. 관객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모든 영화는 상업적이다. 흥행에 관심 갖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이상하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어 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형식, 가치, 의미가 들어가야 한다. 영화가 상업적(흥행)으로 성공하면 이런 것들까지욕심 낼 여유도 생긴다.”

‘재미’에 ‘의미’까지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재미’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말속에는 그가 미술을 전공하고도 대중예술인 영화를 선택한 이유가 들어있다.

많은 사람과 즐겁게 이야기하고 싶은 욕심. “그림을 왜 계속하지 않았느냐고? 순수예술은 대단한 천재가 아니면 대단한 둔재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느 쪽도 아니다.”

그가 요즘 스릴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황기성 사단 15주년 기념작이자 21번째영화로 선택한 것도 김성홍 감독의 ‘세이 예스’(17일 개봉)였다.

스릴러야말로 문화와 인종의 벽을 허무는 가장 보편적이며 감정이입이 빠른 장르이어서 해외시장에서 상품으로서 가치도 높다는 것이다. 소재도 무궁무진하다. 더구나 한국영화의 취약장르이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그로서는 또 다른 방향에서 상업성을 발견한 셈이다.

처음부터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다. 그러나 자신이 생각하는 재미있는 영화의 미래는 이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맞든 틀리든, 적어도 관객이 내는 돈 만큼의 재미는 주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그의 열정이 부럽다. 속으로는 돈만 생각하며 겉으로는 예술을 내세우지 않아서 오히려 좋다.

입력시간 2001/08/23 13:56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