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과의례] '요람에서 무덤까지' 삶과 죽음의 축제

세계통과의례 페스티벌 2001

올 가을 국립민속박물관과 경복궁은 빛나는 기억 하나를 갖는다. 9월 29일~10월 3일, 한가위 연휴와 개천절을 포함한 황금의 닷새 동안 경복궁이 ‘세계 통과의례 페스티벌 2001’이라는 축제의 장으로 변신한다.

통과의례는 살아 있는 인간과 세상의 매개자이다. 이번은 페스티벌로 즐기는 통과의례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축제 형식의 통과의례를 거쳐낸 사람에게도 삶과 죽음은 또 다른, 새로운 의미로 다가 올 것이다.

지난해 9월 30일~10월 3일 남산한옥마을에서 열렸던 제 1회 행사에는 16만명의 관객이 참여, 5만 명 정도를 예상했던 주최측을 놀라게 했었다.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컷다는 얘기다.

이 행사는 통과의례를 주제로 한세계 최초의 문화예술행사이다. 한국은 물론, 중국과 동남아의 오지에도 정교하고 화려한 문화가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다. 서구 문화에만 편식하기 십상인 우리의 문화 향유 패턴을 되돌아 보게 할 자리다.

특히 올 행사의 성공 여부에 주최측의 기대가 각별한 것은 연례화의 가능성을 확인케할 자리이기 때문.

청아한 새납(태평소) 가락을 앞세운 풍물패의 장단으로 경복궁에서 때아닌 길놀이가 시작된다. 구경꾼의 들뜬 마음 위로는, 솟대가 둥실 떠올라 있다. 출연진, 구경꾼 할 것 없이 하나로 어우러진 모습은 영락없이 서울 한복판으로 동제를 옮긴 형국이다.


통과의례를 주제로 한 문화예술행사

29일 오전 10시 박물관 입구에서의 ‘여는 마당’으로 행사는 시작한다.

풍물패 100여명, 축하 만장 100여개, 성공 기원 깃발 등이 따라 붙는다. 행렬을 따라 안으로 들어 가니, 국립민속박물관 4개 장소에서 벌어지는 ‘본마당’이 기다린다.

김현순 보살의 충청도 설위경굿, 이정연 무당의 평안도 선황굿, 정학봉 만신의 황해도 만구대탁굿 등 세계 어디 내놔도 빛나는 우리의 큰 무당이 풀 버전으로 굿판을 펼친다. 29일~10월3일 오전 11시~오후 7시 30분 국립민속박물관 내 가설 무대에서 펼쳐지는 ‘우리의 굿’ 마당이다. 9월 29일 만구대탁굿, 30~10월 2일 설위경굿, 10월 3일 선황굿.

춤패 지킴이와 소리패 아라리요는 악가무가 어우러진 전통 놀이 마당을 펼친다. 10월 1~3일 오후 8시부터 국립민속박물관 앞마당에서 한 시간 동안 펼쳐지는 초청공연이다. 또 오후3시부터 한 시간 동안은 서울시 무형 문화재 제 10호 ‘바위절 호상놀이’가 펼쳐져 생사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여지껏 통과의례는 관혼상제례를 중심으로 개인의 차원을 넘지 못 했다. 예외가 있다면 성년의 날. 전통예법인 관례(冠禮)를 현대화, 생활속에 살려 내자는 취지로 되살려진 이날은 세월과 인심따라 변신을 거듭해야 했다. 그 변천사는 통과의례를 우리가 어떻게 대접해 왔는 지 선명히 보여 주는 교훈적 사례다.

1970년 4월 20일 청와대 산하 국책문제연구협의회는 신문에 통단 광고를 게재한다. 직장에서 선발된 모범 성년을 삼부요인 명의로 표창하고, 대학생 논문을 모집한다는 요지였다. 애국애족, 민족중흥, 국토통일 등 ‘이데올로기’를 통해 현실에 참여하자는 호소도 뒤따랐다.

그러나 이날은 씀씀이가 풍족한 요즘 청소년의 소비향락 풍토와 맞물리고 말았다. 본래의 취지는 오간 데 없고, 발렌타인 데이, 졸업식, 성탄절과 함께, 백화점과 나이트 클럽이 노리는 4대 대목의 하나로서만 간신히 명맥을 잇고 있다.

맨 처음 4월 20일로 잡혀졌다, 75년 5월 6일, 85년 5월 셋째 월요일 등으로 세월 따라 날짜도 바뀌는 해프닝도 빚어졌던 얄궂은 통과의례다.


관객이 주인공이 되는 체험교육의 장

이번 행사는 보여주는 차원을 넘어선, 체험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관객은 보고 즐길 뿐만 아니라, 행사의 주인공으로 직접 출연할 수도 있다.

상혼 또는 무지 때문에 오도돼 온 통과의례의 의미를 바로 잡고, 본래의 의미를 이 시대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멀리갈 것도 없이, 굿판에서 연희자와 구경꾼이 하나돼 어울리는 양식을 떠올리면 된다. 혼례, 굿, 풍물 등 모두 세 마당이 준비돼 있다.

실제로 혼인을 앞둔 남녀, 사는데 쫓기다 보니 결혼식을 뛰어 넘긴 부부, 혼인의 초심으로 돌아가고 싶은 부부를 위한 회혼례 등 세 부류의 쌍을 위한 행사다. 전통 궁중 혼례나 민속 혼례 방식 등 한식, 몽고나 우즈베키스탄 방식 등 혼인 당사자들이 원하는 데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예식장비 등 절차 비용은 모두 주최측이 부담한다. 각 혼례방식 당 1일 2회씩 치러진다. 단, 예단과 혼수는 본인 부담이다. 이 혼례식은 외국인도 가능하다.

한편 굿의 경우는 굿판과 제수 비용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또 첫날과 마지막날 풍물로 흥을 돋울 풍물패도 접수한다. 서편, 동편 각각 50명씩으로 구상중인 풍물패에게는 기념품과 식사가 제공된다.

혼례, 굿, 풍물의 희망자는 모두9월 13일까지 연락해 줄 것을 주최측은 바라고 있다. 전화(02-737-2466)나 이메일()fh로 접수한다. 구경꾼과 연희자가 확연히 구분되는 여늬 민속 경연 대회와의 차별성이 명확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일반들에게도 참여의 기회는 열려있다. 어른, 아이할 것 없이 노소동락하는 자리다. 문화관광부의 무대 예술지원작 ‘해랑과 달지’, 교육 극단 사다리의 폐품 활용 아동극 ‘줄과 막대는 요술쟁이’뿐만 아니다.

우리의 풍속을 담은 필름과 영상물, 중앙 아시아 유목민의 생활사 기록 필름 등 진귀한 영상도 접할 수 있다. 몸으로 느끼는 민속과 통과의례는 이번 행사의 묘미.

수백명이 잡아 당겨도 끄덕 없는 튼실한 동아줄을 놓고 벌어지는 ‘영산 줄다리기’는 어른의 마음까지도 부풀게 한다.

씨름, 줄다리기, 길쌈짜기, 한가위떡 만들기, 거북놀이 등 잊혀진 민속 놀이 마당도 준비돼 있다.

제기차기, 실뜨기, 죽마달리기, 씨름, 지게지기, 새끼꼬기, 망차기, 칠교놀이, 참고누, 놀이 태껸, 해외 성년의례 놀이, 통과의례 문답 등은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 버전 통과의례.

어린이 체험 코스 ‘도전 열두고개’다. 놀이연구가 편해 문씨는 통과의례의 의미를 옛이야기에 녹여 들려준다. 북한의 민속놀이, 씨름의 모든 것, 공기의 모든 것도 구수한 입담에 녹아 온다.


탄생·죽음·환생 '생의 길' 마당이 절정

체험의 절정은 죽음 느끼기. 탄생의 길부터 죽음의 길, 환생의 길 등 세 코스로 나눠진 ‘생의 길’ 마당이다. 관에 들어가 누워 볼 수도 있다. 유언장 쓰기 마당에 이르러서는 누구나 숙연해 질 것이다.

폐막 행사 또한 볼거리. 국립민속박물관입구에서 그동안의 모든 출연진과 관람객이 한데 어우러져 행진을 하는 장관이 먼저 펼쳐진다. 2001 행사의 준비에서 마지막날까지를 기록한 영상스케치를 쭉 둘러 본 사람들이 펼치는 강강술래로 대미.

자원봉사 시스팀이 자랑거리다. 영산줄다리기ㆍ혼례식ㆍ생의길(죽음체험)과 굿판 등의 진행보조자, 통역자(영어ㆍ일어ㆍ몽골어ㆍ중국어ㆍ우즈벡어ㆍ러시아어), 홍보(인터넷ㆍ전단), 행사당일 안내 요원 등 4개 분야이다. 역시 9월 13일까지 모집한다.

그렇다면 산 자에게 통과의례란 무엇인가? 김춘수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내가 생의 통과의례를 거치기 전에는/ 나는 다만 하나의 생물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통과의례를 거치면서/세상은 내게/ 하나의 의미로 다가 왔다.’

장병욱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08/28 18:54


장병욱 주간한국부 aj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