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대란] "풍년들면 뭐해…쌀을 못 파는데"

한숨만 가득한 풍년들녘, 11월 농촌 대혼란설

“후우…, 후우….”

8월 23일 오전 11시30분께 전남 나주시 동강면 진천리 나주평야 들녘. 이마을 농민 박원기(60)씨는 자신의 논에 농약을 치다 말고 둑방에 앉아 벌써 두 시간째 땅이 꺼질 듯 연신 한숨만 내쉬고 있다.

뙤약볕에 앉아있는 아버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막내 아들(26)이 “그만 집으로 가자”며 땀에 절은 옷소매를 잡아 끌어보지만 박씨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벼 익어가는 조짐을 보니 올해는 작년보다 더 대풍이네요. 정말 걱정입니다. 쌀은 팔 곳도 없고 쌀값은 자꾸 떨어지는데 풍년만 들면 뭐합니까. 몇 달 뒤 사정사정해가며 쌀을 갖다 팔 일을 생각하면 자다가도 잠이 깰 정도예요.”


“농사꾼이 풍년을 걱정하니 말이 됩니까”

호남 최대 곡창지대인 나주평야가 농민들의 한숨소리로 넘쳐 나고 있다. 계속된 쌀 풍년에 줄어드는 쌀 소비량, 꽉 막힌 판로, 곤두박질치는 쌀값, 쌓여가는 농가부채…. 희망이라고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는 암담한 농촌의 현실에 ‘부농(富農)의 꿈’이 무너지고 있다.

30여년동안 쌀 농사를 지어온 ‘농업 노동자’ 박씨는 지난해 정부수매를 하고 남은 쌀을 내다 팔기 위해 최근까지 쌀 수집상 등을 찾아 헤맸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그가 지난해 자신의 논 1만여평에서 수확한 벼는 모두 600가마(40㎏들이). 이중 정부수매로 처분한 벼는100여 가마 불과했다. 이 때부터 그는 속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쌀 값은 갈수록 떨어지죠, 쌀을 사겠다는 사람을 없죠, 정말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쌀 좀 사달라고 여기저기 정신없이 뛰어다녔는데 쌀 농사 수십년동안 이번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는 다리품을 판 덕분에 7월 중순에야 겨우 ‘애물단지’ 쌀을 모두 팔았다. 하지만 그의 손에 떨어진 돈은 달랑 200만원. 비료대와 농약대 등 이것 저것 빼고 남은 돈이다. 1년동안 뼈 빠지게 흙을 만진 대가치고는 기절초풍할 액수다. 그래도 그는 남들처럼 인건비가 들지 않아 몇 푼이라도 건진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박씨의 경우처럼 쌀 판로 확보는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떠올라 있다. 특히 올해는 대풍년에 쌀값도 지난해보다 4%가량 하락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농민들이 술렁이고 있다.

오후 4시40분께 나주시 왕곡면 마을회관 앞마당. “평생을 흙 밖에 모르던 농사꾼들이 풍년을 걱정할 정도면 이 나라 농촌은 이제 다된것 아닙니까?”

일손을 놓은 마을 주민 30여명이 정자나무 밑에 모여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정부의 농정부재에 대해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3,000여평의 벼 농사를 짓는다는 60대 후반의 한 촌부는 “매년 생산비에도 못 미치는 쌀 판매소득으로 인해 빚이 빚을 낳아 이젠 버티기에도 한계에 부닥쳤다”며 “올해도 풍년이 들면 이젠 알거지가 돼 거리로 나앉아야 할 판”이라고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

농부는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라는 생각으로 자부심을 갖고 쌀 농사에 한 평생을 바쳐왔다는 김귀중(55)씨도 “쌀값 폭락을 막을 묘책이 없는 상황에서 풍년까지 들어 주민들이 일손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며 “이렇듯 쌀 농사기반이 붕괴될 위기에 처했는데도 정부나 정치인들이 하는 짓을 보면 울화가 치민다”고 성토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이미 “정부의 적절한 대책지원이 없을 경우 면사무소를 포함 모든 관공서 앞에서 벼 야적시위는 물론 벼 태우기 시위를 벌이겠다”며 선전포고를 해놓은 상태다.

쌀 농사의 기반이 붕괴 위기에 빠지고 농가 경제가 큰 타격을 받으면서 생계를 위해 ‘부업전선’에 뛰어든 농민들도 늘고 있다. 농사를 천직으로 믿었던 농민들이 자급경제가 무너지면서 ‘제2의 직업’을 가지게 된 것.


생산비도 못건지는 헛농사, 막노동판 전전

동강면 장동리 정찬홍(32)씨가 대표적인 케이스. 인천에서 전기기사로 일하던 정씨는 1998년 초 IMF로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면서 실직하자 아내(30)와 두 아들을 데리고 귀향, 부모님과 함께 1만여평의 벼농사를 지으며 부농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그는 지난달부터 자신의 전공을 살려 전기기사 일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 일당 4만~5만원짜리 막노동판에 뛰어들었다. 매년 생산비도 못 건지며 헛농사로는 부모와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농사를 지을수록 이상하게 빚만 더 늘어나고 빚을 내서 빚을 갚는 악순환이 계속돼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며 “최근에는 대출금 상환을 앞둔 농민들이 자금마련을 위해 벼농사는 뒤로 한 채 막노동판을 전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도 간신히 쌀 농사 ‘본전치기’라도 한 정씨의 사정은 나은 편이다. 노안면 안산리 김종해(51)씨는 쌀 농사로 빚더미에 올라 앉은 ‘피해자’였다.

3년전부터 이웃 주민 논 3,000여평을 소작형태로 대리경작을 시작한 그는 해마다 1,000여만원의 수익을 올렸지만 인건비와 약대, 비료대 등을 빼고 쌀값 하락을 감안하면 그의 손에 떨어지는 돈은 거의 없었다.

김씨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농협대출을 받아 담배와 마늘 등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 외도를 했지만 번번이 실패, 현재 8,000여만원의 빚더미에 올라앉은 상태다.

그는 “정부만 믿고 돈을 빌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농사를 지었는데 쌀값은 갈수록 떨어져 빚더미에 올라앉게 됐다”며 “도대체 무엇을 해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하소연했다.

농민들의 걱정은 11, 12월 ‘농촌 대혼란’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농협 대출상환 기일이 닥치면서 빚을 갚을 방법이 없거나 운영비가 없어 궁지에 몰린 농민이 야반도주하거나 경작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할 것이라는 것.

특히 농민들은 그 동안 쌀 수매자금으로 빚을 갚아왔으나 올해는 쌀값폭락과 정부의 양곡 재고 동결 등 악재가 겹치면서 이 마저 여의치 않아 상황은 더욱 악화할 전망이다. 이런 와중에 부채 농가의 경우 대부분이 연대보증이나 맞보증에 묶여 있어 한 농가가 파산하면 연쇄파산으로 이어지게 돼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나주들녘에서 만난 정옥희(43ㆍ여)씨는 “무너진 농심(農心)은 누가 위로해 줍니까. 정말 죽을 맛입니다. 한줌 햇볕 같은 웃음을 웃을 수 있는 날이 언제나 올까요?”고 물었다.

2001년 8월의 끝자락에 선 농민들의 마음은 누렇게 익어가는 벼 이삭보다 빠르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안경호 사회부기자

입력시간 2001/08/29 17:49


안경호 사회부 kh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