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놔두면 용 될라" 여권 파워게임

민주 김중권 대표, 구로을 재선거 모험

민주당 김중권(金重權ㆍ61세) 대표는 10월 25일 실시되는 서울 구로 을(乙) 재선거에 출마하는 모험을 하게 될 것인가.

김 대표의 출마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는 가장 큰 이유는 구로 을 출마 및 당선 여부가 '대선주자 김중권'의 운명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만일 김 대표가 출마해 당선된다면 대선주자로서 날개를 달게 된다.

그럴 경우 김 대표는 이인제 최고위원 등과 자웅을 겨루는 유력 대선주자 반열에 오르게 된다.

요즘 김 대표 측근들이 미소를 짓는 있는 이유도 이 같은 기대 때문. 그러나 김 대표가 낙선한다면 대표 자리도 내놓아야 하고 대선주자 대열에서 빠지게 된다. 김 대표의 낙선은 여당의 완패로 해석돼 여권의 정국 운영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김 대표의 출마 여부를 놓고 여권 내부에서 단순한 견해 차를 넘어 파워 게임 양상까지 나타나는 것도 대선 문제 등과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구로을 출마 여부를 놓고 고심해오다 출마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김 대표는 공개 석상에서는 "구로을 후보가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미 당직자들에게 "당을 위해 희생할 각오가 돼 있다"고 의지를 밝혔다.

이에 박상규 총장 등 민주당 당직자들이 '김 대표 띄우기'에 들어가자 청와대와 동교동계 일부에서 제동을 걸고 있다.

박상규 총장은 8월 23일 "구로을 지역의 여론은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당에서 조사해보니 김 대표가 가장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 구로을의 장영신 전의원도 김 대표의 출마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동안 여권에서는 구로을 후보와 관련 김 대표, 김한길 문화관광부장관, 이태복 청와대 복지노동수석, 김병오 국회 사무총장의 아들인 김희제 변호사 등이 거명됐었다.

24일 청와대로 올라 간 김 대표는 구로을 재선거 후보 문제를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김 대통령은 "공천심사사위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당선 가능성이 있는 훌륭한 후보자를 공천하라"고 지침을 줬다.

그러나 청와대 보고가 끝난 뒤 당과 청와대의 기류는 달랐다. 민주당 전용학 대변인은 "당으로선 경쟁력이 높은 대표에게 출마를 강력 권유할 것이며 김 대표 또한 부담이 크더라도 선거의 중요성을 감안, 스스로 몸을 던지는 결심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하며 김 대표의 출마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청와대 비서실과 동교동계 일각에서는 "김 대표의 출마는 결정된 게 아니고 김 대표가 출마할 경우 당에 부담이 크다" "김한길 장관의 경쟁력이 더 높다" 등의 얘기가 흘러나왔다.

경북 울진 출신인 김 대표는 청와대 보고를 마치자 마자 모처럼 대구를 방문했다. 김 대표는 밝은 표정으로 "대통령이 공천심사위 결정에 따르라고 말했다"고 소개하면서 자신의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 대표는 '청와대 일부에서 다른 얘기가 나온다'는 질문에 "공천은 당이 주도해야지 누가 주도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 김 대표가 출마할 경우 대표직을 유지하느냐 여부를 놓고도 논란이 있다. 동교동계에서는 "만일 대표가 재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여권 전체에 엄청난 부담을 주게 된다"며 "김 대표가 출마한다면 대표직에서 사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김 대표측은 "출마할 경우 당연히 대표직을 갖고 나가야지 무슨 소리냐"고 항변한다.

김 대표 출마론이 제기되자 이인제ㆍ 한화갑ㆍ 김근태 최고위원, 노무현 상임고문 진영에서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들 진영은 겉으론 표현을 자제하고 있으나 김 대표의 출마론을 좋은 눈길로 바라보는 것 같지는 않다.

김 대표가 재선거에서 당선돼 대선 후보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것이 달가울 리가 없다. 또 김 대표가 출마해 낙선할 경우 여당에 엄청남 부담을 안겨 줘 내년 지방선거 및 대선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도 하고 있다.

김 대표의 측근은 김 대표의 출마 검토 배경에 대해 "여당이 10월 재ㆍ보선에서 승리해야만 내년 지방선거와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당선 가능한 후보를 내야 한다는 차원에서 김 대표도 살신성인의 자세로 출마를 검토하는 것"이라면서 당을 위한 결단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김 대표 자신의 대권 꿈이 연관돼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국민의 정부'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 대표는 지난 해 4ㆍ13 총선 때 경북 봉화ㆍ울진에 출마해 근소한 표 차이로 낙선했으나 지난해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 당선돼 정치적 재기를 모색해왔다.

김 대표는 지난해 12월 하순 대표로 기용된 뒤 금년 3월 중ㆍ하순까지는 유력한 대선주자로 거론될 정도로 위상이 강화됐다. 금년초 안기부 자금 수사에 따른 야당의 지지 하락과 여당의 기반 강화에 따라 "김 대표가 당을 잘 관리해 여당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나 3월 중순 의료보험 재정파탄 이후 여권의 악재가 계속 이어진데다 3월 하순 개각 과정에서 김 대표가 소외되면서 김대표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대선주자 김중권'의 주가도 계속 하향 곡선을 그려왔다.

이런 상황에서 '영남 후보론'에 기대를 걸어온 김 대표에게 구로을 재선거는 절호의 찬스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상당한 위험이 따르는 것이다.

그 동안 5ㆍ6공에 관여했다는 이미지, 낮은 인지도가 장애물이었던 김 대표는 '소극적 우회' 보다는 '정면 돌파 전략'을 택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구로을 재선거에 나서지 않는 우회 전략을 펼 경우 김 대표는 유력한 대선주자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경우 다만 김 대표는 영남권의 대표주자로서 대선 후보와 연대해 자신의 위상을 보장 받을 수는 있다.

김 대표 진영에선 김 대표가 구로을에 출마할 경우 재선거에 대한 전국적 관심을 불러일으켜 인지도가 급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재선거에서 당선될 경우 그 여세를 몰아 '영남 후보론'도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당 관계자들은 "김 대표가 재선거에서 당선된다면 영남 주자의 대표성이 노무현 상임고문에서 김 대표로 바뀌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고 있다.

김 대표가 출마했을 경우 "당선 가능성은 반반"이라는 분석이 많다. 여당의 지지도가 과거보다 좋지 않은데다 한나라당도 김 대표에 필적할 대항마를 후보로 낼 것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당초 이승철 구로 을 지구당 위원장의 공천을 당연시 해왔으나 김 대표 출마설에 따라 중량감 있는 후보를 내세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민주당은 8월말 공천심사위를 구성해 구로을 후보 선정 작업에 착수, 지역 여론 추이 등을 지켜본 뒤 9월초에 후보를 결정할 방침이다. 김 대표의 구로을 출마 의지가 과연 관철될지 주목된다.

정치부 김광덕기자

입력시간 2001/08/29 17:58


정치부 김광덕 kd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