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또 한번의 변신이 없는 한 김대중(DJ) 대통령과 자민련 김종필(JP) 명예총재의 햇볕정책에 대한 공조는 9월 3일에 끝이 난다.

흔히들 말하는 대외정책을 다루는데 현실주의적이냐, 이상주의적이냐에 따라 마키아벨리(8월21일 ‘어제와 오늘’ 보도)적이냐, 윌슨(1차 대전때 미국 대통령 국제연맹과민족자결주의 제창)적이냐를 따진다.

과연 1925년생인 DJ의 햇볕정책은 윌슨적인 이상주의의 산물이며 유산일까. 우리의 야당은 미국의 상원이 윌슨의 파리 베르사이유에서 주창한 ‘승자 없는 1차 세계대전’, ‘식민지 국가의 폐지와 자결권 존중’, ‘국제연맹의 창설’이란 이상주의를 비준하지 않은 것 처럼 임동원 통일부장관을 불신임 할 것인가.

과연 26년 생인 JP는 한국전쟁 때 국군장교로 참전한 ‘생잔자(生殘者)’로서 인민군들이 목포에서 철수하며 처형시키려던 ‘우익분자’ DJ라는 ‘생환자(生環者)’를 이번에는 마리아벨리적으로 불신할까.

또 JP는 61년 5월16일 쿠데타로 강원 인제 민의원 재선거에서 당선된 김대중민주당 후보의 의원선서를 못하게 한 것처럼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둔 그를 ‘실패한 대통령’으로 끌어 내릴 것인가.

과연 DJ는 한국에서 윌슨인가. 과연 JP는 마키아벨리인가. 이에 대한 대답이 될는지 모르겠다.

국제문제에 정통한 많은 칼럼니스트들은 헨리 키신저가 지난 3월에 낸 ‘미국의 외교정책 아직도 필요한가- 21세기의 외교를 위해’를 부시 대통령에게 헌정한 ‘새군주론’이라고 말하고 있다.

1969~76년 미국의 외교를 담당한 키신저를 ‘현실주의의 대가’, ‘19세기의 마키아벨리인 오스트리아 황국의 메테르니히의 재생’이라고 한다. 키신저는 미국 현실주의 외교의 실천자요, 실행자다. 23년 독일에서 태어나 37년 미국으로 이민왔다. 44년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이 가까울 때 통역병으로 참전했다.

키신저는 21세기에서 러시아가 나갈 방향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방대한 영토를 추구하는, 제국주의적인 전래의 팽창주의보다 싱가포르, 일본, 오스트리아가 어떻게 좁은 국토에서 경제성장하며국가를 발전 시키는가를 살피라.”

그는 북한에 대해서도 “한국을 고립시키고 미국과의 대화는 성립되지 않는다. 미국은 북한을 고무시킬 이유가 없다. 한국은 북한에 전략물자와 기술을 제공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제를 비판말고 주변 4강과 협력, 현상을 유지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에 밝은 키신저가 항상 우려 하는 것처럼 미국에는 중도좌파인 ‘자유주의’를 내세우는 이상주의자가 건국 때부터 있었다. 많은 국제 칼럼니스트의 놀라움 속에 1961~68년 케네디 존슨시절 ‘컴퓨터’국방장관이던 로버트 맥나마라가 지난 6월 ‘윌슨의 망령(Ghost)- 21세기에서의 분쟁, 살육, 격변을 줄이기 위해’라는 책을 냈다.

평자들은 너무나 인간적인, 세속적인 사고로 20세기가 겪어온 전쟁의 참상을 반성하는 맥나마라의 태도에 대해 맥나마라가 망령(忘靈:정신이 나감)이 든게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 그는 윌슨적 이상주의자이며 결코 거짓말쟁이가 아니라는 점을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다.

맥나라마는 16년생으로 윌슨 대통령에 의해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될 당시 2살이었다. 37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주립대학(U.C.버클리) 경영학과에 다닐 때 그는 상선 ‘후버’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방문한 상하이가 영국 프랑스 중국 등 세 개의 나라로 분할되어 있는 사실을 목도했다.

외국인 조계(租界)마다‘개와 중국인은 출입금지’란 팻말이 붙어 있었으니 중국의 한쪽만을 보았기 때문이다.

2차대전 때는 괌에 있는 육군항공대에 근무했다. 당시 괌은 도쿄 폭격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투하의 출격기지였다. 통계에 밝은 그는 엄청난 양의 폭격에 희생되는 사람은 군인이 아니라 시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맥나마라는 81년 세계은행 총재에서 물러난 이후 줄곧 베트남전쟁과 관련된 미국 대외정책의 실패를 지적하는 반성의 글을 쓰고 세미나, 포럼 등을 개최했다.

95년 ‘베트남전의 비극과 교훈’이란 회고록을 냈고, 쿠바 미사일 사태, 베트남전쟁의 상대방인 러시아와 베트남의 관계자들과도 의견을 나눴다. 그 결론이 이번에 나온 ‘윌슨의 망령’으로 집약된 것이다.

‘망령’의 비극적인 첫연기는 65년 11월 2일 시작됐다. 장관실에서 내려다 보이는 광장에서 노만 모리슨 이라는 발리모어의 한 퀘이커교도가 미국의 전쟁이 되어버린 월남전을 반대하며 분신한 것이다.

그와 카네기 재단이 함께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20세기에 전쟁으로 숨진 사람은 모두 1억6,000여만명이고, 이 가운데 65%가 민간인들이었다.

그래서 나온 그의 결론은 윌슨의 말대로 미국은 여러 강국과 다각적으로 서로 공감하며, 도덕적인 책임감을 갖고 전쟁을 막고 유엔을 통해 평화를 실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윌슨의 이상은 실천이지 결코 망령이 아니란 것이다.

정치 9단이란 우리의 DJ, JP가 이런 윌슨적 이상에 가까워 질 때에 ‘공조’도‘햇볕정책’도 다시 피어 날 것이다. 무엇보다 이제는 고목인 그들에게서 새싹이 날지도 모른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1/09/04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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