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 (73)] 자살도 유전이다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 자살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 사람은 인생에 대한 애착이 상대적으로 약한 것일지도 모른다. 인생에 대한 도전에서 좌절할 때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살을 꿈꾼다.

그런데, 자살도 유전이라는 사실이 차츰 증명되고 있어, 자살의 원인이 굳이 사회적인 요인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올해 초, 마가욱스 헤밍웨이가 최근에 자살했는데, 적지 않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 이유는 그녀가 세계 최고의 모델일 뿐 아니라 자살한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손녀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헤밍웨이 가족에게는 자살이 특별한 것이 아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형제, 누이, 아버지 모두 자살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계(家系)의 역사는 자살에 유전적 요인이 있다는 추론을 가능하게 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마가욱스 헤밍웨이의 말이다.

'우리 헤밍웨이 가문은 알코올중독과 자살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 같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질병이나 행동에 유전적 요소가 있다는 증거는 임상적으로 그리고 분자유전학연구에서도 입증되는 사실이다.

특히 자살의 시도나 실제 자살한 사람은 그 부모들도 거의 절반가까이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분자생물학적 연구에 따르면,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자살행동과 연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와 영국의 정신치료병원에서 환자들을 연구한 결과, TPH라는 효소는 뇌에서 이 세로토닌을 합성하는데, 이 효소의 유전자가 변형되면 자살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유전자는 11번 염색체에 있다. 이 유전자는 감정과 불안 수위를 조절하는 화학물질인 세로토닌(serotonin)을 생산하는데 관여하기 때문에 뇌의 자연적 정신작용을 교란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자살행동을 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은 일반적인 사실이다. 바로 이러한 정신적 작용에 이 유전자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슬로베니아, 핀란드와 헝가리의 자살율이 가장 높고 크로아티아, 이탈이아와 스페인이 가장 낮으며 영국은 대략 중간쯤에 위치한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국가간 경향이 각 나라의 유전자 유형과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연구 중이다.

만약 이 자살유전자의 작용을 차단해서 자살율을 줄이는 방법이 개발된다면 더 없이 좋을 일이다.

사실, 자살은 어느 한 가지보다 다양한 영향에 의한 결과다. 결혼실패와 실직 등 사회적 요소와 우울증, 알코올중독 등 심리학적인 요소, 그리고 충동심리, 물리적인 쇠약 등 개인적인 요소와 뇌의 세로토닌 량이 낮은 등 생물학적인 요인 등 다양한 요소들이 자살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유전자 단독으로 자살을 유도한다고 단정할 수는 아직 없다. 그렇더라도, 다른 자살 요소이 이 유전적 요소와 합쳐진다면 자살행동을 유발할 가능성이 현격히 높아진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어떤 경우든 자살은 최선의 선택이 아니다. 그런데 유전자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 자살의 선택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선택 또는 운명일 수도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므로, 느낌이 썩 좋지 않다.

헤밍웨이 집안의 자살편력에서 보듯이 자살은 환경적 요인보다는 유전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하는 듯 하다. 정말로 그렇다면, 자살은 유전적인 수단으로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물론 개중에는 순수하게 사회적 또는 개인적인 요인으로 자살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분명히 사회적 환경개선으로 막아야 할 것이지만, 이제 자살방지를 위한 접근은, 혈통의 분석을 통한 유전적인 해결책과 여러 가지 환경적 사회적 여건을 개선하는 해결책을 병행해야 되지 싶다.

그렇다면,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 "생명의 전화"도 머지않아 자살유전자 치료법을 소개하는 역할이 핵심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입력시간 2001/09/0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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