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권력과 인간의 속성 발가벗기기


■킹 메이커

할리우드 영화 중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법정 드라마와 정치 드라마. 국내에서는 이런 장르의 영화를 찾아보기가 힘들기도 하거니와, 이들 영화의 대 사회적 발언 수위가 넓고 깊기 때문이다.

사랑이나 우정, 가정사 등의 소소한 개인사를 넘어서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 놓인 인간의 다양한 양태를 들여다볼 때의 소름끼치는 감동이라니.

영화보다 더 극적이며 지저분한 음모가 현실에는 적지 않다고 하나, 이를 객관화시켜 보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교육 효과가 있다.

그러나 내 나라가 아닌, 더구나 최강국인 미국의 이야기라고 하면 같은 비리라도 덜 화가나는 것은 어떤 심보인지 모르겠다. 교황을 제외한 모든 권력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할리우드의 힘이 부럽기도 하지만.

조지 히켄루퍼 감독의 1999년 작 <킹 메이커 The BigBrass Ring>(18세, SKC)는 대통령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는 야심 많은 정치가가 주지사 선거를 치루는 과정에서 숨기고 싶은 자신의 과거와 맞딱뜨린다는 내용.

선거 유세 중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사건-아내와의 불화와 야심을 위한 잠정적 화해, 미모의 여기자의 추적과 그녀를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 참모진의 또 다른 야심과 엉뚱한 행동 등이 묘사되고 있지만,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후보자의 도덕성.

<킹 메이커>는 링컨의 말로 시작한다. '한 인간을 시험하려면 권력을 주어봐라" 여기에 돈, 명예, 사랑을 부언하면 어떨까 싶지만, 권력을 가지면 이 모든 것이 따라오기 마련이니, 이보다 더 간단명료하게 인간의 속성을 찌르는 말도 없지 싶다.

우리가 "국민의 편에서 봉사하는 삶" 운운 하는 정치인의 말에 잠깐이라도 속아넘어갈 수 있는 것은 권력 근처에도 가보기 어려운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킹 메이커>는 등장 인물 모두의 진의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처리하고 있다. 선거에 이기는 것보다, 외면했던 혈육의 불행에 진심으로 마음 아파하는 것 같은 주인공의 눈물조차 "광대의 눈물"이라고 받아넘길 정도다.

쟁쟁한 연기파 스타들이 이 미묘한 심리의 줄다리기에서 냉정한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 천재 오손 웰즈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까지 알고나면,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영화다.

미주리주 주지사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윌리엄 블레이크 펠라딘(윌리엄허트)은 정치 경력이 일천함에도 불구하고, 유력한 후보자로 떠오른다.

대학 시절에 만난 미디어 재벌의 딸 다이나(미란다 리차드슨)와 결혼하여, 막강한 재정 지원 하에 자신감 넘치는 연설로 인기를 끌고 있는 윌리엄.

걸프전 당시 후세인을 인터뷰했을 정도로 실력있는 여기자 펠라(이레느 야곱)는 윌리엄의 미스테리한 과거를 추적한 끝에 그가 로드 아일랜드 주지사였으며, 케네디와 닉슨 시대를 풍미했던 화려한 경력의 정치가이자, 지금은 쿠바에 망명한 갑부 킴블(나이젤 호손)의 양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윌리엄은 자신의 과거를 폭로하는 뉴스를 들으며 돌이키고 싶지 않은 성장기를 떠올린다. 윌리엄에게는 쌍둥이 형 빌리(그레그 헨리)가 있었고, 나약한 형은 마약과 여자에 취해 양부의 성적 노리개가 되곤했었다.

야심이 많았던 윌리엄은 그런 형을 장애물로 여겼고, 이를 눈치 챈 형은 동생을 위해 대신 월남으로 떠났던 것.

옥선희 비디오 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1/09/0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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