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누가 흑자재정을 무너뜨렸나

부시 대통령의 세금인하 조치와 경제 침체가 쿠션(흑자재정)을 터뜨렸다. 쿠션의 함몰이 어떤 파장을 가져오기에 지금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일까. 또 이를 둘러싼 상호 비난전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재정흑자규모 추정액에 비해 큰 폭으로 감소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연방재정의 흑자기조는 별이 반짝거리는 커다란 어린이 담요가 혼자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어린이의 마음을 진정시켜주듯 국민들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지난 4월 백악관은 이번 회계연도의 재정흑자가 2,810억 달러(약 365조원)에 이를 것이며 향후 10년간 무려 총 3조4,000억 달러(약 4,420조원)에 달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 같은 액수라면 부시 대통령의 감세조치와 의회가 추진하려는 각종 대형 프로그램,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 학교 개혁, 노인들에 대한 복지혜택 확대에 들어가는 비용은 물론 국가채무를 갚고도 어마어마한 돈이 남게 된다.

너무 좋은 이야기라서 믿기가 힘드시다고. 정곡을 찔렀다.

백악관은 지난 주에 이번 회계연도의 재정흑자 규모가 지난 4월의 추정규모보다1,230억 달러나 줄어들 것 같다고 고백했다. 남은 1,580억 달러는 거의 대부분 사회보장세에서 나오게 된다. 사회보장세는 부시 대통령이나 의회 지도자들이 건드리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던 세입 부분이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의회 예산국(CBO)이 더욱 비관적인 수치를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골자는 연방정부 재정이 연내에 고갈돼 3년만에 적자재정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내용(CBO는 이후 사회보장세를 제외하면 올 회계연도 미국연방정부 재정은 90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발표)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광고를 통한 공격전이 점화됐다. 재정적자를 충당하기 위해 사회보장세를 전용할 가능성이 커졌고, 이 바람에 은퇴한 노인들을 위한 사회보장이 위협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누가 흑자재정을 죽였나. 부시 대통령은 ‘나는 아니다’라고 잡아떼고 있다. 지난 주 예산 관련 연설을 거창하게 하면서 자신의 감세조치는 경제를 부양할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그는 뭉칫돈 쓰기를 좋아하는 민주당 정권이 재정흑자를 망가뜨렸다며 전임 대통령인 빌 클린턴에게 책임을 돌렸다.

부시 대통령은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의 초상화를 배경으로 연설을 하면서 노인들에게 복지혜택을 주었던 최초의 대통령으로 꼽히는 트루먼처럼 자신도 노년층의 벗이라는 이미지를 풍기려고 애를 썼다.


부시, 전임 민주당정권에 책임 떠넘겨

그러면 민주당 탓인가. 민주당 사람들은 ‘우리를 쳐다보지 말라’며 부시 대통령을 가리키고 있다.

민주당은 재빨리 워싱턴 D.C.와 미주리, 텍사스 지역 등에 광고를 냈다. 광고는 “조지 W. 부시는 그의 예산안을 해리 투루먼의 고향에서 설명을 하면서 국민들에게 해명할 것이 꽤나 많았다”며 “이는 부시의 예산이 해리 트루먼의 ‘노인을 보호하자’라는 대원칙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비꼬았다.

물론 재정흑자 규모가 쪼그라들고 있지만 아직 사회보장제도의 수혜자들을 위협할 수준은 아니다. 또 이 같은 정치권의 정치공방이 재현되면서 사람들은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머리를 해변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악화하고 있는 연방재정은 국민들의 실생활에 큰 충격을 줄 것이 분명하다. 약속대로 사회보장예산을 유지하기 위해 의회는 농업 보조금이나 빈곤층을 돕기 위한 각종 세액 공제 등을 축소할 수도 있다.

또 정부가 없는 살림에 국가부채를 상환하게 되면서 시중 이자율이 상승, 주택할부금융과 신용카드의 이자율이 오를 수도 있고, 지난해 대선 후보였던 부시와 고어가 한창 논쟁을 벌였던 노인들에 대한 의약품 지급이 연기될지도 모른다.

더 근원적인 문제는 중소기업이나 가계를 꾸려본 사람이라면 ‘수입규모 내에서 지출을 해야 한다’는 원칙이 매우 중요하고, 또 지출이 수입을 초과하는 적자 상태가 되면 얼마나 피곤한지도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아칸소 주 골프협회 이사인 제이 폭스는 “사업을 벌이다 보면 수입과 지출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균형예산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된다”며 “만약 사업을 하고도 남는 돈이 없다면 어떻게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의 측근들은 재정 흑자규모가 작아진 것은 거의 대부분 경기침체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백악관 예산관리국(OMBㆍthe Office of Management and Budget)은 지난 주 발표한 보고서에서 증권시장의 침체가 2000년 3월부터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클린턴 대통령이 흑자기조를 무너뜨린 주범이라는 것이다. 사실 증발된 1,230억 달러중 460억 달러는 경기침체에 따라 일반세입 규모가 작아지면서 축소된 것이다.

OMB의 미치 다니엘스 국장은 “연중계속된 불경기에도 불구, 흑자기조를 유지(백악관의 OMB는 10억 달러의 흑자를 추정하고 있는 반면 의회의 CBO는 90억 달러의 적자를 예상하고 있다)한 것은 대단한 성과임에 틀림없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나머지 부분인 770억 달러는 부시 대통령의 국방비 증액과 세금 환급 때문이다.

이와 관련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의 래리 린제이 의장은 “세금감면은 정말 시의 적절했다”며 “세금감면이 경제붕괴를 막았다”고 주장했다. 린제이 의장은 더 나아가 ‘세금 환급이 국민들의 소비지출을 자극하면서 정부의 세금 수입도 늘어나고, 재정 흑자 규모도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주당 "세금감면으로 국민현혹"

그러나 민주당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부시 대통령이 세금감면이 마치 부작용도없는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국민들을 현혹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상원 예산위원회 의장인 켄트 콘라드는 “그는 마치 세금은 깎아주어도 국방비를 증액하고 교육예산도 늘릴 수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며 “그는 뭔가 잘못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민주당 진영은 부시 대통령이 자신에게 유리한 가정을 근거로 수치를 제시하는등 신뢰할 수 없는 셈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민주당 측은 OMB의 경우 내년 경제성장률을 3.2%라는, 실현 가능성이 없는 높은 수준으로 잡고 재정흑자 규모를 추정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부시 정부는 세금감면 조치로 인한 재정 감소 규모를 1조3,5000억 달러로 추계했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의 최근 연구결과 2,500억 달러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흑자 감소는 경제에 타격을 주고 미국 사람들의 지갑을 얇게 만들 수 있다. 미국의 중앙은행 총재(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은 무려 7차례에 걸쳐 단기 금리를 인하했지만 집을 할부금융으로 구입한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장기 금리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장기 금리는 정부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채권 거래자들이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목하 재정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경제논쟁이라기 보다는 정치논쟁에 가깝다. 전쟁은 장기전화하면서 전선에 많은 변화가 있겠지만 부시 대통령이나 의회가 사회보장예산을 당초 약속과 달리 공무원 월급 같은 일반 행정비에 전용할 경우 부시 대통령은 최대의 정치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입력시간 2001/09/04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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