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충남 금산 진악산 보석사

충남 금산은 인삼의 고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불과 50여 년 전만 해도 한반도 인삼의 절반 이상이 이 곳에서 나왔다.

지금은 인삼 산지가 전국 각지로 흩어져 있어 과거의 권위를 내세울 수는 없지만 여전히 인삼 유통의70~80%가 이루어지고 있는 본고장이다.

인삼의 이미지에 가려 금산의 속살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금산은 빼어난 풍광과 의미깊은 유적이 즐비한 여행명소이다. 금강의 상류 물줄기를 따라 입맛을 돋구는 먹거리도 많다.

진악산(해발 737㎙)은 금산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산이다. 금산의 진산이기도 하다. 금산군의 대표적인 초, 중, 고등학교 교가는 대부분 ‘진악산 줄기…’로 시작된다.

한반도에서 처음 인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는 개삼(開蔘)터가 진악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금산의 존재는 바로 진악산에서 비롯된 것이다. 금산 사람들의 사랑이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진악산은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울창한 숲과 기암괴봉, 맑은 계곡이 어우러진 밀도있는 산이다. 산행시간은 가장 긴 구간이 약 2시간 30분. ‘고스락’이라 불리는 정상에서의 조망이 빼어나다. 민주지산, 덕유산, 운장산, 대둔산, 계룡산, 국수봉 등 충청지역의 수많은 연봉들이 파도처럼 펼쳐진다.

진악산 기슭에 보석처럼 빛나는 사찰이 있다. 이름 그대로 보석사(寶石寺)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의 말사이다. 근처의 산 중턱에서 금을 캐 불상을 만들었다고 해서 보석사란 이름이 붙었다. 이름으로 미루어 볼 때꽤 웅장한 모습이 상상되지만 앙증맞을 정도로 자그마한 절이다.

그러나 역사적 무게는 만만치 않다. 신라 헌강왕 11년(885년) 조구대사가 창건했다. 한창 번성했을 때에는 500여 명의 승려와 3,000여 신도가 북적댔다고 한다. 호남의 많은 절을 관장했던 31본 중 하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영규대사가 이 절에서 수도했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고종 때 명성황후가 중창했다.

주차장을 지나 절 입구에 들어서면 일주문과 만난다. 최근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세월의 깊이를 느낄 수는 없지만 단청을 칠하지 않은 소박한 아름다움이 있다.

일주문 건너편으로 400여 ㎙의 길이 보인다. 절까지 이르는 길이다. 길 양쪽으로 아름드리 전나무가 도열해 있다. 변산반도 내소사 전나무길에 못지 않은 풍치를 자랑한다. 전나무 바깥으로는 맑은 계곡물이 흐른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리를 타고 계곡을 건너면 보석사이다. 지금은 대웅전, 산신각, 의선각, 조사장, 응향각, 요사채 등만 남아있다. 진악산의 병풍 같은 봉우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대웅전과 산신각의 모습이 단아하다. 요사채 마당에 펼쳐놓은 빨간 고추와 절집의 단청, 가을의 푸른 하늘이 잘 어울린다.

절을 지나 산길로 접어드는 곳에 거대한 나무가 서 있다. 천연기념물 365호로 지정된 은행나무이다. 조구대사가 제자 5명과 함께 6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었는데 그 나무들이 모두 한 몸이 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전해진다.

둘레가10.4㎙, 높이가 40㎙에 이른다. 바람에 날리는 연기처럼 하늘을 향해 가지를 풀어헤친 모습이 장관이다. 가을이 깊어지면 나무의 주변은 온통 노란색이 된다. 이 나무는 영물이다. 나라의 큰 경사나 재앙이 닥치면 바람을 맞으며 운다.

권오현 문화과학부차장

입력시간 2001/09/04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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