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위기경영과 감원 공포

대대적인 내부 개혁, 재계 파급효과 클 듯

IMF체제이후 3년여만에 감원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국내 최대재벌 삼성이 인력축소에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비단 삼성직원이 아니더라도 샐러리맨들의 심리적 불안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현실에서 감원은 가장 극한 구조조정 방식이다. 투자를 줄이고, 경비를 깎고, 그래도 안될 경우기업이 쓰는 마지막 선택이 감원이다.

△ 국내 최대 재벌 삼성이 상반기 흑자기조에도 불구하고 인력축소에 나서며 재계에 감원 분위기가 확산될 조짐이다.

노조저항이 거세고, 노동관련법규도 까다로운데다, ‘회사’란 의미가 냉정한 고용계약 보다는 정서적 공동체에 가깝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사람은 손대지 않으려는 것이 국내기업들의 보편적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계에 감원바람이 거세지고, 삼성까지 가세했다는 것은 그만큼 경기침체의 골이 깊다는 것을 말해준다.


감원 소용돌이에 휩싸인 지구촌

세계는 이미 감원 소용돌이속에 휘말린 상태다. 지역별로는 장기불황의 늪에 빠져있는 일본, 업종별로는 경기침체의 진원지인 전자산업 쪽이 특히 심하다.

일본 언론들은 30대 주요기업의 감원규모가 16만명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8,500명의 인력감축을 단행했던 도시바는 전체 직원의 12%에 달하는 1만7,000명을 2004년까지 추가 감원하고, 1만명의 직원을 재배치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히타치는 내년 4월까지 국내인력 1만2,000명, 해외인력 4,500명 등 1만4,700명을 감원키로 했고, 후지츠 역시 전세계 법인망에서 1만6,400명을 줄인다는 구조조정안을 마련했다. NEC도 4,000명 감원계획을 내놓았다.

세라믹 제조업체인 교세라는 1만명 감원을 추진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도체, 가전, 멀티미디어 등 세계 정보기술(IT) 산업을 주도하는 일본의 거의 모든 업체들이 감원체제에 들어간 셈이다.

미국이나 유럽쪽도 사정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거대통신회사인 루슽느가 1만5,000~2만명의 감원을 추진중이고, 네덜란드 필립스(4,500~5,500명), 독일의 지멘스(2,600명)도 인력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브리티시 에어(1,800명), 스위스 에어(1,250명)등 항공업계에도 감원태풍이 몰아닥치고 있다.

우리나라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삼성도 마찬가지다. 비록 대내외적 악조건속에서도 상반기 흑자기조를 이어갔다고는 하나, 삼성은 내부적으로 상당한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이미 각종 경비한도를 3분의1 수준까지 감축했고, 삼성전자는 투자규모를 두차례에 걸쳐 2조원이상 삭감했다. 일부 비수익사업은 포기했고, 해외법인도 철수가 잇따르고 있다.

사실 삼성은 올 상반기부터 특유의 ‘소리나지 않는 방식’으로 인력감축작업을 진행해왔다. 방법은 자연감소인력을 다시 충원하지 않는 것과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것 등 두가지.

연간 자연퇴직인력이 2,000명에 달하는 삼성전기의 경우 빈 자리를 다시 채우지 않음으로써 인력규모를 1만3,000명에서 1만1,000명 수준으로 감축했다.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종합화학 등은 지난해말부터 희망퇴직을 실시, 이미 감원을 완료했다.

삼성 SDI의 경우 수원의 브라운관공장 1개 라인을 중국으로 이전하면서 400명을 재배치하고, 100명 정도를 희망퇴직시켰다. 계열사마다 분사를 통한 인원조정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삼성의 감원이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바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때문이다. 생명과 전자는 삼성의양대 주력업종인 금융과 전기ㆍ전자 분야를 대표하는 간판 계열사이자 막대한 수익을 내왔던 캐시박스(Cash box)다.

따라서 생명과 전자가 감원에 들어갔다는 것은, 여타 군소계열사들의 인력구조조정과는 의미나 충격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간판기업 삼성생명ㆍ전자 ‘인력조정’

삼성생명은 지난 3일 배정충 사장의 사내 방송을 통해 본사인력 8,000명 가운데 1,050명을 연말까지 감축하는 내용의 인력조정계획을 발표했다.

세부내역을 보면 ▦400명은 희망퇴직 ▦300명은 타 금융ㆍ유통계열사로 전출 ▦본사 소속인 대리점을 별도 법인화함으로써 250명을 법인대리점 직원으로 전환 ▦100명은 남성설계사로 계약직화 한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순수 감원규모는 희망퇴직자 400명 뿐이다. 삼성생명측은 “희망퇴직은 문자 그대로 희망하는 사람에 국한되는 것으로 강제퇴직은 없다”며 “이들에겐 1년분 기본급에 해당하는 인센티브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지난달말부터 희망퇴직 접수에 들어갔다. 삼성전자 역시 “희망퇴직은 전적으로 자발적인 것이며 인원 할당 목표도 없다”고 밝혔지만, 내부적으론 자연퇴직자(5~7%)를 포함해 연말까지 인력규모를 10%(4,000명) 가량 줄인다는 잠정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 삼성생명과 삼성전자의 인력감축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다만 시기가 문제였다. 생명의 경우 사상유례없는 저금리 행진으로 자산운용에 차질이 생기면서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왔고, 경영진단을 맡았던 맥킨지 역시 인력조정을 권고했다.

삼성전자 역시 반도체 가격폭락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3ㆍ4분기 이후엔 흑자기조(반도체 부문) 유지마저 어려울 것이란 시장의 불안감이 확산 되면서 강력한 원가절감 요구에 직면해있는 상황이다.

삼성측은 감원문제로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에 대해 상당히 곤혹스런 눈치다. 삼성 고위관계자는 “상시구조조정 체제하에선 언제라도 사람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다른 대기업들도 알게 모르게 다 인력조정을 하는데 왜 삼성에만 시선이 집중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이 스포트라이트를 것은 바로 삼성이기 때문이다. 재계에는 오래전부터 실체가 무엇이든 ‘삼성이 하면 일단 할 만한 이유가 있다’ 또는 ‘삼성이 어떻게 하는지 좀 보고 결정하자’는 인식이 흐르고 있으며, IMF체제 이후 현대ㆍ대우대의 붕괴속에 삼성 독주체제가 고착화하면서 재계내 삼성의 심리적 견인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심각한 불황 보여주는 증거

특히 불황기에 ‘삼성효과’는 크게 나타난다. 인력조정에 고민하던 기업들도 일단 삼성이 시작한다면 따라갈 공산이 크다.

삼성의 또 다른 관계자는 “삼성의 긴축경영이 외부에 실제 이상으로 과대포장돼 알려지는 측면이 적지 않다”면서 “우려스러운점은 감원 자체 보다도 마치 삼성이 감원을 주도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구조조정에 서로 눈치만 보고 있던 생명보험업계는 삼성성명의 감원발표이후 인원감축계획 실행에 스피드를 내고 있다.

현재로선 재계에 환란 때와 같은 전면적 감원바람이 밀어닥칠 공산은 크지 않다. 아직까지는 감원이 화학섬유나 석유화학, 컴퓨터 등 몇몇 불황업종에 국한되어 있으며 그 폭도 크지는 않다.

하지만 감원의 불길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국내에선 삼성까지 인력감축을 모색한다는 것은 현재의 불황강도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함을 시사하는 것으로, 경제주체들의 심리적 부담감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시기적으론 국내경기가 반등의 실마리를 찾느냐, 아니면 장기불황으로 빠지느냐를 결정할 금년 하반기가 기업들의 향후 감원여부에 최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이성철 경제부기자

입력시간 2001/09/12 16:43


이성철 경제부 sc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