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C는 '용들의 펀드'인가?

이용호 회장 구속 계기로 '정치권 관련설' 의혹 증폭

G&G그룹 이용호 회장이 구속됐다. 검찰은 ‘전격작전’을 방불케 하는 신속한 수사로 그의 신병을 확보했지만, 정작 증권가는 때늦은 감이 있다는 반응이다.

그 만큼 이 회장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주가조작과 펀드의 자금을 횡령했다는 것이다. 시각이 다양한 것은 드러난 혐의가 전부는 아닐 수 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사실 이 회장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9년부터다.

◁ 이용호 회장

당시 이 회장은 모회사 격인 GNG구조조정(옛 세종투자개발)을 통해 ㈜대우금속(현재 인터피온)을 인수하고, 한국전자부품(KEP전자), 삼애실업(삼애인더스트리), 레이디, 스마텔, 조흥 캐피탈을 속속 인수했다.

조비는 최대주주의 반발로 기업인수에는 실패한 사례에 속한다. 이들 기업은 증권가의 관심종목에 빠지지 않았다.

인터피온은 6배, 삼애는 보물선 재료로 8배나 폭등했다. 더욱이 이 회장측은 주가가 오를 재료를 시장여건에 맞춰 수없이 발표했다. 그렇지 않으면 루머가 먼저 퍼지고, 증권거래소가 조회공시를 요구하면 이를 확인하는 절차가 진행됐다.

거래소측은 조회공시가 이용당하는 것 같다는 반응까지 보였다. 레이디의 경우 부동산을 팔아 특별이익이 500억원 발생했지만, 회사가 망하기 전에 지분을 다 팔고, 이후 다시 회사를 살리겠다고 나서 머니 게임이 아니면 앞뒤가 맞지 않는 경영을 했다.


주가조작 무협의, "뒤에 누가 있다" 소문

이 회장 구속 소문은 4월부터 시장에 파다했다. 그러나 이를 뒤로 하고 이 회장은 6월에는 금융업에 손을 댔다. 앞서 인터피온의 주가급등과 관련 사법당국 조사에서 무혐의 처리되면서 확산된 ‘뒤에 누가 있다’는 시각은 더욱 굳어졌다.

이미 시장의 물을 흐리는 대표적 인물로 지목됐지만, 그는 6월에는 쌍용화재의 최대주주로 등극한 것은 물론 대한·국제·리젠트화재중 1곳 인수까지 추진했다. 증권가는 그의 실체를 파내는 경쟁도 벌였지만, 그 실체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만 실체를 짐작할 사건들만 여럿 나타났다. 리빙TV는 올초 경마중계권을 확보해 주목받았다. 이 회장은 KEP전자 등 관계사들을 통해 리빙TV의 최대주주가 된 뒤 경마중계권과 경마복권 판매까지 확보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부 지분은 로케트 전기에 넘어갔고, 이후 로케트 전기는 경마중계권을 손에 넣었다. 이에 대한 해석은 이 회장이 로비에 한계를 느끼자 지분을 대표적 호남기업인 로케트 전기에 넘겼다는 것이다.

실제 로케트 전기의 이사진은 1명의 제외하고 해당 지역출신 언론인 등으로 짜여진 것으로 파악됐다. 이 회장과 함께 의문의 사세확장을 한 인물로는 C씨가 있다.

이번 사건에서 묻혔지만, 그는 민주당 후원회에서 상당 역할을 했던 것으로, 이 회장은 민주당 광주시 지부의 간부란 명함을 파 가지고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 주목할 점은 G&G 구조조정이 이른바 구조조정전문회사(CRC)란 점이다. 처음 인수한 인터피온을 비롯한 관계사들은 모두 부실기업이고 G&G가 그 매개역할을 했다.

CRC는 작년 정부가 화의·워크아웃 등 기업의 구조조정을 좀 더 신속하게 추진하기 위해 허용한 것이다. 그림은 CRC가 부실기업을 법원을 통해 채권단에서 인수한 다음,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회사 경영을 안정시키고 건실화시킨 다음 3자에게 되파는 구도다.

이 과정에서 채권단은 대출금 일부라도 회수할 수 있고, 또 3자 유상증자에 참여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 이용호회장의 구속 이후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다음엔 누구"식의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김명원/사진부 기자>

또 CRC는 회사 정상화에 따른 주가상승과 M&A를 통해 이익을 낼 수 있다. 정부로서는 검은 자금을 비롯한 시중자금을 통해 공적자금을 들이지않고 민간에 의해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제도상 누구도 손해보지 않는 윈윈 게임인 셈이다.


구조조정 과정서 '검은 거래'의혹

증권가가 이번 사건에 주목하는 것은 검찰이 이 CRC에 손을 댔다는 점이다. 그동안 주식시장 안팎에선 CRC가 제도상의 취지와 달리 시장 침체에도 불구하고 대박을 얻는 비책으로 알려져 있고, 그 과정에 검은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공공연하게 유포돼 왔다.

올들어 증시 최고의 테마로 각광받은 M&A도 이의 연장선에서 전개돼왔다. G&G는 그 가운데에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한 경우에 속한다.

CRC들이 대박을 터뜨리기 위해선 로비력, 자금력, 다양한 금융기법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은행 등 채권단의 합의를 이끌어내 부실기업을 헐값에 사기 위해선 여러 선의 힘이 동원돼야 한다.

또 법원 파산부에 구조조정안을 승인받기 위해선 유능한 변호사도 필요하다. 최종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선 자금력과 새로운 금융기법이 동원되는데, 여기에 숨겨져야 할 비밀들이 쌓인다.

특히 자금력의 경우 CRC가 자체 마련하기 어려운 액수여서 외부(전주)에서 끌어들여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부실기업은 감자를 한 후 증권시장에 재상장 되고, 이 경우 회사의 부채가 거의 탕감되고, 또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거나 또 다른 곳에 M&A한다는 재료가 붙기 마련이어서 주가는 평균 3~8배 가량 뛰어 오른다.

여기에서 대박은 물론 시세 차익이다. 전주의 경우 대상 회사를 시장 밖에서 ‘합법적인 주가조작’을 해서 시장에 올리는 만큼 앉아서 차익을 얻을 수있어 서로 돈을 대려고 한다.

때문에 CRC회사들은 전주와 비밀계약을 체결해 차익의 50% 가량을 받기로 하고, 또 돈을 외자로 둔갑시켜 끌어들이는 것이 보통이다.

국내자금의 경우 지분매각이 일정기간 제한되지만, 외자의 경우 그 같은 제한을 받지 않아 주가가꼭지에 달할 때 팔아 시세차익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장외에서 자본금 30억~50억원을 끌어모아 CRC나 사모펀드를 만들고, 로비력 있는 정치권 인사를 끌어들여 한탕만 하면 수 십억원을 쉽게 벌 수 있는 구조다.


정치권·CRC는 검은자금으로 연결?

그래서 CRC회사의 실력은 항상 정치권과의 연계성이 초점이 된다. 반대로 정치권을 위주로 보면 CRC회사를 통해 정치자금을 쉽게 조달할 수 있다.

실제 제법 이름이 알려진 CRC회사들은 정치권 누구 누구의 펀드라는 식으로 통한다. 대권주자로 거명되는 인물들이 대부분이라 이른바 ‘용(龍)들의 펀드’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은 CRC에서 3자 유상증자를 할 때 돈을 수 십억원을 넣을 권리를 차지한 다음, 재차 펀드를 조성해 돈을 끌어모아 그 차익을 챙기거나, 아니면 아예 CRC회사 뒤를 봐주면서 일정 자금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이 회장이 구속될 때 증시의 관심도 주가조작이나 횡령보다는 이같은 CRC업계가 수술대에 오른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들의 검은 뒷거래로 주가가 급등락을 거듭했다는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홍인기/사진부 기자>

물론 CRC 모두가 검은색으로 칠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등록된 CRC중 소재나 실적이 파악되지 않는 곳도 상당수에 달하고, 장외 머니 게임의 장본인이란 점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6월까지 36개 CRC들은 314개 회사에 1조768억원을 투자해 많은 기업들은 이를 토대로 정상화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CRC를 통해 정상화한 기업은 극소수이기고, 일시 호전되던 경영상태가 또 다시 부실로 치닫거나, 해고·감자로 인해 기존 직원이나 주주들이 큰 피해를 입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엄청난 의혹·파장 불러올 수도

그러나 사건이 워낙 갑자기 터지고 수습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나 소문은 이 회장 개인비리에 밀려난 모습이다.

한 증권계 인사는 “정현준 사건처럼 언론이 먼저 터뜨리고, 검찰이 이를 따라가는 식으로 수사가 진행됐다면, 이번 사건도 엄청난 의혹과 파장을 불러왔을것”이라고 했다.

실제 이 회장이 구속된 4일 증권가의 해석 중 하나는 “야당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이 회장 건의 폭로를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지자, 여권이 미리 이 회장을 구속시켜 선수를 쳤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사세확장 자체가 의혹인 G&G의 이 회장은 이번 수사와 여론의 반응이 달가운 것일 수도 있다. 정치권과 관련된 소문의 입이 사건이 터지자 닫혀버렸고 여론의 관심도 빗겨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로서는 G&G 외에도 ‘다음에는 S회사’라는 식으로 계속 부풀려지는 CRC들에 대한 의혹을 풀어줘야 하는 부담이 줄지 않고 있다. 더구나 쉽게 칼을 빼지 않는 대검 중수부가 수사를 맡은 이상 ‘뭔가 있을것’이란 기대와 우려는 여의도 증권가에도 아직 꺾이지 않고 있다.

이태규 경제부기자

입력시간 2001/09/12 17:03


이태규 경제부 tg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