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국형 전염병에 전국이 '벌벌'

콜레라 기승, 허술한 방역체계 미흡으로 환자속출

‘전염병 후진국이라는 오명을 받아서는 안된다.’ ‘민족 대이동이 있는 추석 전까지는 진압해야 한다.’ 확산중인 콜레라로 비상이 걸린 방역당국의 지상과제이다. 뿐만 아니다 최근들어 렙토스피라 등 가을철 전염병과 홍역 등 후진국형 전염병이 늘어나는 추세다.

콜레라 환자는 9월 8일 현재 106명으로 100명을 넘어섰다. 이는 91년 113명이래 가장 많은 숫자다. 당국의 걱정대로 콜레라 10년 주기설이 맞아 떨어지고 있다.

8월말 울산, 9월 2일 경북 영천에서 환자가 발생한 이후 5일 50명을 넘어섰던 환자수는 3일만에 배로 늘어났다.

8일 현재 환자분포를 보면 영천 46명, 경주 17명, 경산 7명, 포항3명, 영덕ㆍ성주 각 2명, 군위 1명 등 경북도가 78명으로 가장 많고 대구 19명, 부산 3명, 김포 2명, 서울ㆍ울산ㆍ거제ㆍ고성 각 1명이다.

△ 콜레라 환자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비브리오 패혈증 환자까지 발생하자 여행업계는 물론이고 수산업게에도 손님의 발길이 끊어지는 등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노량진 수산시장의 썰렁한 모습. <최규성/사진부 차장>


2차감염 확산, 단체급식등에 초비상

문제는 이 같은 분포에서 보듯이 환자가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추세인데다 2차 감염환자가 속속 드러나고 대량의 환자를 발생시킨 영천과는 다른 경로의 환자가 있다는 점이다.

이를 빨리 차단하지 못할 경우 최대의 명절인 추석(10월 1일)을 맞은 민족 대이동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추석 연휴는 사실상 9월 29일(토요일) 오후부터 시작돼 내달 3일까지로 예년에 비해 비교적 길어 과거 어느 때보다도 귀성인파의 이동이 많을 것이란 점도 콜레라를 조기에 진압해야 하는 이유다.

이번 콜레라는 영천 기사식당에서 식사를 한 뒤 콜레라에 감염된 가족으로부터 전염된 경기 김포의 이모(78)씨가 2차 감염자로 첫 확인된 데 이어 영천, 부산 등지에서도 2차 감염자가 속속 확인되고 있어 보건당국을 긴장케하고 있다.

특히 경북지역에서 추가로 확인된 콜레라 환자 가운데 설사가 시작된 뒤에도 나흘간이나 손님들에게 음식을 제공한 중국음식점 주인과 초ㆍ중등학생들까지 있어 이들에 의한 2차 감염 확산의 우려가 높다.

각급 학교는 초비상이다. 상당수 학교들이 단체급식을 중단하는 등 학생들의 위생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잇다.

경북도교육청은 콜레라 확산을 막기 위해 환자가 발생하고 있는 영천과 경주, 경산,영주, 영덕, 군위, 성주 등7개 지역에 대해 오는 10일부터 15일까지 학생 야영장의 수련활동을 중지하는 한편 이들 지역 학생이 다른 시.군으로 이동해 야영하는 것도 금지했다.

제주도교육청도 학생들의 육지 여행 자제를 당부했다. 제주제일고는 18일로 예정됐던 경북ㆍ대구등지로의 수학여행 일정을 10월말로 연기했다.

또 신성여고, 중앙여고 등 나머지 제주지역 고교들도 이번 달로 예정된 수학여행 일정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콜레라 확산에다 비브리오 패혈증 환자까지 늘어나면서 횟집 등 수산업계는 말할 것도 없고 여행업계에까지 여파가 미치고 있다. 관광업계에 따르면 단체관광객들의 호텔 및 숙박시설 객실 예약이 취소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초ㆍ중ㆍ고생들의 수학여행기를 앞두고 특수를 기대했던 호텔과 여관 등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이상기후 등으로 이질, 홍역등 전염병 급증

세계화로 인한 여행과 교역 증가, 세계적인 이상기후 현상, 환경파괴, 면역체계약화 등으로 전염병 확산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현재의 콜레라 확산과 홍역 창궐 등 잊혀져가던 전염병이 자주 발생하고 있으나 보건당국은 예산과 인력부족으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방역사상 처음으로 지난 5월부터 최근까지 초등학교 2년~고등학교 1년 학생 590만명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의 전국 일제 무료 홍역예방접종 사업을 실시했다.

홍역은 지난해부터 기승을 부리기 시작해 지난해 3만2,088명이 감염된데 이어 올들어서도 7월 현재까지 2만4,479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홍역환자는 96년 65명, 97년 2명, 98년 4명, 99년 88명등에 불과했다.

세균성 이질환자도 96년 9명, 97년 11명, 98년 905명, 99년1,781명이었던 것이 지난해는 2,510명으로 급증했으며 올들어서도 7월 현재 212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말라리아 역시 비무장지대 군인을 중심으로크게 유행, 작년 4,141명의 환자가 발생한데 이어 올해들어서도 증가 추세가 꺾이지 않아 7월 현재 1,314명의 환자가 새로 발생했다.

말라리아를 야기하는 모기가 최근에는 부산 농촌지역에서도 서식밀도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부산시가 지난달 기장군 신천리와 강서구 녹산동 지사리를 대상으로 한 농촌지역 모기 채집결과 말라리아를 야기하는 중국 얼룩날개 모기도 4,331마리로 28.7%의 밀도를 보였다. 말라리아가 중부지역의 문제만이 아님을 경고하고 있다.

가을철 전염병으로 분류되는 유행성출혈열, 쯔쯔가무시증, 렙토스피라증 등급성 열성질환 환자도 98년 이후 급증하고 있다.

유행성출혈열환자는 95년 91명, 96년 119명, 97년 106명 등100명 전후 수준에서 98년 219명, 99년 201명, 지난해 221명 등 98년 이후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쯔쯔가무시증도 95년 274명, 96년 263명, 97년 277명에서 98년 1,144명,99년 1,342명, 2000년 1,656명 등 98년을 기점으로 그 이전보다4~6배로 증가했다. 95년 13명, 96년 6명, 97년 4명에 불과했던 렙토스피라증 환자도 98년 92명, 99년 133명, 2000년 87명으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렙토스피라증은 9-12월(10월정점), 쯔쯔가무시증은 10-12월(11월〃), 유행성출혈열은 10월-이듬해 1월(11월 〃)에 특히 환자가 많이 발생한다.

유행성출혈열은 한탄바이러스 등에 의해 옮겨지는 전염병으로 들쥐나 집쥐 등의 폐에 있던 바이러스가 사람의 호흡기를 통해 전염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균 2∼3주 정도 잠복기를 거쳐 초기에는 감기와 비슷한 증세을 보이다가 발열과 오한, 두통 등이 나타나며 치사율은 7% 정도다.

쯔쯔가무시증은 털진드기의 유충에 물려 걸리며 감염 뒤 보통 10일 정도 잠복기를 거쳐 급성으로 두통, 발열, 오한, 발진, 근육통, 피부반점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심한 경우 기관지염이나 폐렴, 심근염, 수막염 등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렙토스피라증은 가을철 추수기에 주로 들쥐나 집쥐, 족제비, 여우, 개 등 렙토스피라균에 감염된 동물을 매개체로 전염되며, 특히 농민들이 이들 동물의 소변에 오염된 물과 토양에서 작업하다 피부상처를 통해 감염되는 경우가 많다.

초기에는 발열과 두통, 오한, 근육통, 충혈 등 감기몸살과 비슷한 증세를 보여 대부분의 환자가 대수롭지않게 생각하다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가을철 전염병 최근 들어 발생 잦아

이들 가을철 전염병은 주로 야외활동을 하다 감염되는 만큼 가급적 들쥐 등이 많은 산이나 풀밭에 가지 않는 것이 좋고 불가피할 경우에도 긴바지와 긴소매 상의를 입어 피부노출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귀가 후에는 반드시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깨끗이 목욕을 하면 예방에 도움이 된다.

특히 논밭에서 일하는 농민의 경우 작업에 앞서 손발 등에 상처가 있는지 확인하고 반드시 장화나 장갑 등 보호구를 착용하며, 가급적 논의 물의 뺀 뒤 벼베기 작업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특히 올해는 비브리오 패혈증 사망자수도 증가세다. 98년 22명(환자수50명)에서 99년 14명(〃27명), 지난해 10명(〃16명)으로 감소했다가 올들어 8일 현재 16명(〃28명)이다. 비브리오는 생물 분류 상콜레라와 같은 속(屬)으로 주로 어패류를 날 것으로 먹을 때 감염되며 치사율은 최고 70%에 이른다.

전염병들의 확산은 선진적인 국가방역 관리체계를 요구하고 있으나 우리는 예산과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올해 국립보건원 전체예산이 348억원에 불과하고 이 가운데 방역사업에 투입되는 액수는 164억원에 그치고 있다. 인원도 턱없이 부족해 법정 전염병을 관리하는 직원이 21명에 불과한 실정으로 전염병 관리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또 의사들이 전염병을 보건당국에 제대로 신고하지 않는 등 전염병 감시체계가 엉성하고 전염병 감염 경로를 밝혀낼 역학 전문가가 부족한 것도 전염병 퇴치를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공중보건 인프라 구축이 시급함을 말한다.

전준호 사회부기자

입력시간 2001/09/12 18:48


전준호 사회부 jhju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