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911참사와 진주만

뉴욕 타임스의 퓰리처 상 서평 부문 수상자인 미치코 가쿠타니는 9월11일 ‘대참사’를“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라고 썼다.

가쿠타니는 “이번 참사를 NBC의 톰 브로커가 ‘핵무기의 겨울’, ‘단테의 연옥’으로, ABC의 다이안소우어가 “활화산 분화구 가장자리에 서 있는 것 같다고 표현했지만 이 같은 말은 이번 참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쿠타니는 클린턴 스캔들, 플로리다주의 대통령선거 개표소동, 식인상어 등장 등에 온 신경을 쓰면서 세상이 망하는 것처럼 떠든 미국 언론의 극성이 테러의 형이상학적 의미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영화나 논픽션들이 여객기를 마치 폭탄처럼 악용할 수 있는 테러가 가능하다는 가상을 했지만 그것은 9월11일 발생을 예측한 가상이 아니었고 스펙터클이었을뿐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인간이 내면적인 반성을 하지 않는 동안 실제적인 참사가 일어난 사실을 반성하고, 글을 쓰는 사람들은 21세기를 재조명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올해 퓰리처상 논설부문 수상자인 윌 스트리트 저널 칼럼니스트 도로시 래비노비츠도 9월14일자 ‘그날 이후’라는 칼럼에서 “이번 참사가 1941년12월 7일 발생한 진주만 기습공격과는 다르지만 지금의 20대는 9월11일과 함께 ‘진주만’을 상기하라”고 권했다.

래비노비츠의 20대에 대한 권고는 조금 엉뚱하다. “진주만공격이 있은 날, 미국의 라디오는 정규 쇼프로를 그대로 방송했다. 이 쇼 프로가 끝난후에야 일본 침공 사실이 보도됐다. 이번 참사에서 여러 가지 코멘트가 있었지만 진주만을 모르는 세대는 두 가지를 유의할 것을 바란다.

ABC의 크리스 매투스가 말한 ‘미국인들은 많은 세계인들이 미국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른다. 사탕과자를 주는 것만 가지고 친구 국가를 얻을 수 없다는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공항의 안전을 위해 수색을 강화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대해 전 국무장관 워렌 크리스토퍼가 수색강화는 미국의 개방주의에 어긋난다고 반대한 정도는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참사는 불행한 일임에 틀림 없지만 미국의 TV가 심야 프로에서라도 몇 분간 개방과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점은 잘 된 것이다.”

미국의 인구조사에 의하면 3억3,000만명중 진주만 기습 당시 5살이었던 세대는 아직도 12%가 살고 있다. 이들이 상기하는 진주만은 어떨 것일까.

해답이 될는지 모르겠다. 지난 주 ‘어제와 오늘’ 칼럼에서 소개한 맥나마라 전 미국 국방부장관은 2차 대전 참전용사다. ‘윌슨의 망령’에 나온 그의 회고 한토막에 ‘진주만’이 나온다.

1962년 10월18일 백악관 쿠바 미사일 대책 비상회의에서였다. 국무부 차관이던조지 볼이 말문을 열었다.

그는 쿠바의 미사일 기지를 수술하듯 기습폭격을 가하자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다. “대통령각하, 만약 우리가 경고도 없이 기습폭격한다면 그건 ‘진주만’과 같은 짓입니다. 그건 소련이나 할 짓이지 어찌 미국이 그런 짓을 하리라 세계가 기대하겠습니까.”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도 “아무리 미사일을 제거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지만 우리는 기습 같은 짓을 할 수 없다”고 동의했다. 딘 러스크 국무장관도 “그런짓은 우리의 이마에 카인 이란 표시를 영원히 달게 할 것이다”고 했다.

케네디 대통령은 이튿날 국민들에게 쿠바 해역을 봉쇄한다고 발표하면서 쿠바를 폭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2차대전 참전자들인 비상회의 참석자들은 진주만을 일본의 사술적 기습공격, 미국에‘오욕’을 던져준 기습으로 깊이 새기고 있었다. 케네디가 벌인 소련과의 대결은 이런 기습 방지를 위한 끝임 없는 노력이었다. 그의 대소전략은 기습전략이 아니었다.

‘필설로 표현 안 되는’ 이번 참사는 필라델피아 인콰이어의 칼럼니스트 딕 펄먼에 의하면 ‘전쟁행위’, ‘전쟁상태’, ‘이건 전쟁이다’로 정리 되었다는 것이다. 펄먼에 의하면 지금까지 ‘전쟁’이란말은 제대로 그 가치를 찾지 못하고 정치적인 담론으로 쓰여왔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이번 사건은 테러라고 표현하기엔 너무 충격이컸기에 ‘전쟁’이란 말이 제 구실을 찾았다고 분석한 것이다.

뉴욕 타임스 9월15일자 사설은 ‘환상 없는 전쟁’을 치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란, 시리아, 수단, 예멘 등 전체 이슬람 국가들을 테러국가로 한데 몰아세우는 식의전쟁을 하지 말라고 권하고 있다.

오히려 공습보다 ‘봉쇄’와 ‘고립정책’이 테러국가에게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권고이기도 하다. 미국은 슬픔을 넘어 ‘진주만’을 다시 상기 해야 한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1/09/18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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