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김제의 황금 지평선

풍요가 무르익는 한반도 쌀농사 1번지

초등학생도 다 안다. 한국 제1의 곡창지대는 호남평야라고. 그러나 그 곡창지대가 어떤 모습인지 직접 가보지 못한 사람의 머리 속에는 상상으로만 제각각 존재할 뿐이다. 들판과 하늘이 맞닿아 있다.

◁ 김제의 가을벌판. 마치 황금바다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산과 구릉이 많은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지금 여물어가는 곡식이 바람에 출렁이고 있다. 지난 여름의 집중호우도 풍년의 꽹과리를 침묵시키지 못했다.

전북 김제시는 그 지평선 한가운데에 들어있다. 한반도의 쌀농사 1번지이다. 땅의 70%가 경작지이고 그 중의 80%가 논이다. 논 중에서 가뭄에도 끄떡없는 수리안전답이 거의 99%이다.

대둔산에서 발원한 만경강과 내장산에서 흐르는 동진강이 바다로 흘러들면서 기름진 옥토를 쌓아놓았다. 평야의 중심에 있는 마을 이름은 아예 광활(廣闊ㆍ광활면)이다. 너른 땅이 가질 수있는 행복한 지명이다.

지평선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진봉반도. 광활면이 위치한 곳이다. 반도의 끄트머리까지 가서 동쪽으로 뒤돌아보면 놀랍게도 산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몇 개의 마을과 전신주가 그 직선의 간결함을 방해할 뿐이다.

쌀문화 1번지 김제의 상징은 뭐니뭐니해도 벽골제. 이 땅에 만들어진 인공저수지중 가장 오래 됐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각각 신라 흘애왕 21년(330년)과 20년(329년)으로 조성시기가 기록돼있다. 무려 1,700년 가깝게 물을 가두어 놓고 있었다. 당시로서는 규모면에서 동양 최대였다. 총 3㎞에 이르는 제방은 지금도 기록적이다.

그래서 김제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수리(水理)박물관이 있다. 부량면 신용리에 있는 수리박물관은 물의 관리와 그에 따른 농경문화의 발전사를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 곳. 논에 물을 대는 무자위, 곡물의 쭉정이를 날려버리는 풍구, 곡실을 넣어두는 뒤주 등 25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 우리나라 인공저수지 중 가장 오래된 벽골제.

금산사에 들러볼만 하다. 김제의 진산 모악산 기슭에 세워진 금산사는 법상종의 원찰이었던 곳으로 모두 11개의 국보와 보물이 있는 대찰이다. 후백제 견훤의 슬픔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견훤은 맏아들 신검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가장 용맹한 넷째아들 금강을 후계자로 지목한다. 그러자 신검은 쿠데타를 일으키고 견훤을 잡아 가둔다. 견훤이 유폐되었던 곳이 바로 금산사이다.

김제에는 황금빛 지평선만 있는 것이 아니다. 논처럼 너른 갯벌도 있다. 서해바다와 맞닿은 김제의 곶부리 심포항 일대이다. 물이 빠지면 수 ㎞에 걸쳐 땅거죽이 드러난다. 검은 지평선이다. 그 땅에는 들판 못지 않은 보물이 들어있다. 갯벌 생태계의 보고이다. 특히 씨알이 크고 맛이 좋기로 유명한 생합이 무진장이다.

심포 갯벌은 새만금 간척지가 완공되면 방조제에 갇히게 된다. 역시 넓은 들판이 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더 많은 쌀을 생산하려고. 가뜩이나 쌀이 남아돌아 농민들이 통곡을 하는 판인데. 방조제 건설을 주장하는 측이 이제는 안쓰럽기까지 하다.

김제시에서는 황금벌판이 출렁일 때 축제를 연다. 이름이 곱다. ‘지평선 축제.’ 올해로 3회를 맞는데 9월20일부터 5일간 벌어진다. 각종 민속행사와 논농사 체험 프로그램, 해양체험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김제의 가을벌판. 마치 황금바다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우리나라 인공저수지 중 가장 오래된 벽골제.

권오현 문화과학부 차장

입력시간 2001/09/1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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