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볼가사의한 인간의 내면 그려내기

■올 더 프리티 호스

배우 빌리 밥 손톤은 1996년에 내놓은 감독 데뷔작 <슬링 블레이드>로 '남부의 오손 웰즈'라는 극찬을 들었다. 시나리오, 주연까지 맡은 <슬링>은 사실 내용면에 있어 새로울 것이 없는 영화다.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외면당해온 12살의 지진아가 어머니와 남자 친구의 관계를 목격하고 살인을 저지른다. 25년만에 출소한 그는 의부로부터 학대받는 소년과 우정을 나누게되고, 자신의 유일한 친구인 소년을 행복하게 해주기위해 다시 살인을 저지른다.

어른 몸둥이에 갖힌 순결한 영혼은 <레인 맨> <포레스트 검프> <길버트 그레이프>등에서도 익히 보아왔고, 주인공으로 분한 더스틴 호프만, 톰 행크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최고의 찬사를 안겨주었다.

<슬링>과 손톤은 이들 영화와 배우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더 깊은 호소력을 지니고 있다. 세상과 인간성에 대한 우울한 성찰은 손톤에 대한 루머와 출연작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것이어서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1955년 생인 손톤은 반 대머리에 배까지 불룩 나온, 결코 미남이랄 수없는 용모지만, 믿기 어려운 연기 변신으로 팬을 열광시키고 있다.

<유턴>의 고약한 정비공, <심플 플렌>의 아둔하고 욕심 많은 술꾼, <에어 콘트롤>에선 남의 신경을 있는대로 긁어대는 항공 관제사가 손톤에 의해 창조된 인물이다.

그러나 손톤에 대한 세인의 관심은 우리 시대 최고의 섹시 스타 안젤리나 졸리의 남편이라는 사실에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20년의 나이 차이에 몸에 문신을 새길 정도의 애정 과시로 유명한 커플이다.

이같은 선입견으로는 손톤이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하는 작품의 폭과 깊이를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그가 시나리오만 쓴 <브라더 스토리>는 중년의 백인 가장이 흑인 형을 찾아간다는 감동적인 가족 영화다.

수돗물과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시골에서 15명의 가족과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야했던 성장기, 요양원 생활 등이 손톤에게 깊이와 성찰을 안겨준 것이 아닌가 싶다.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한 저예산 영화의 걸작 <슬링>에 이어 손톤은 2000년에 올 더 프리티 호스 All the Pretty Horses>(15세, 콜럼비아)를 내놓고 있다.

코멕 멕카시의 소설을 각색하여 제작, 감독한 <-호스>는 자연과 말에 대한 예찬, 불가사의한 운명과 사랑, 사나이의 우정과 먼저 산 이의 지혜, 부조리한 법과 이에 희생되는 청춘의 이야기가 집대성된 드라마다.

아름다운 영상 만들기와 인간성 탐구의 성취가 만만치 않으며, 이야기 전개에 극적 요소도 적지 않지만 상업적인 고려는 전혀 없다.

<-호스>의 가장 큰 장점으로 인물 묘사, 특히 주인공보다 주변 인물 묘사가 빼어나다는 점을 꼽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인물을 단선적으로 확실하게 표현하고 있지는 않다. 자신도 알지 못하는 다양한 면면이 혼재하는 것이 인간일진데. 그런 불가사의에 대한 답이라고 할까, 손톤은 특히주인공이 멕시코에서 만나는 인물-대지주, 연인의 고모, 원주민에 대한 묘사에 있어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매력을 느끼게 한다.

주인공의 애절한 사랑이나 내면 고백은 쉽게 잊혀져도, 멕시코에서 만난 이들에 대한 강한 인상은 오래 남아, 할리우드 영화에 그토록 많이 등장하는 멕시코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1949년, 텍사스의 산 안젤로. 지상 낙원으로 여겼던 목장이 팔리자 존(맷데이먼)은 친구 레이시(헨리 토마스)와 멕시코로 떠난다. 도중에 지미(루카스 블랙)란 소년과 동행하게 된 것이 이들의 운명을 바꾸어놓게 될 줄이야.

말에 대한 지식과 애정이 남다른 존은 대목장주 헥토르의 신임을 얻게되고, 헥토르의 딸 알레한드라(페넬로페크루즈)와 사랑에 빠진다.

옥선희 비디오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1/09/18 17:58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