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영화세상] 해외영화제를 홍보의 수단으로?

스타들의 무대 인사도, 사인회도 없다. 할래야 할 수도 없다. 주제가를 부른 유명 가수의 대형콘서트도 물론 불가능하다.

영화 한 편 제작비라야 기껏 10억원. 당연히 수 억원을 쓰는 광고와 매체홍보, 대규모 시사회든 가능하랴. ‘무사’ 한 편 마케팅, 광고비로 ‘섬’ 같은 영화 3편을 만들 수 있는데.

국내 메이저 배급사에 사정하거나, 그들과 손을 잡지 않으면 극장조차 잡을 수 없다. 영화는 좋은데, 그 영화를 효과적으로 유통시킬 방법이 없다. 지금 충무로의 현실이다.

그나마 예술영화전용관을 자처하는 극장들이 몇 개 있을 때는 나았다. 지금은 너도나도 ‘돈 되는 상업영화’에만 매달리고 있다. 참신하고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은 ‘소름’조차 겨우 6개 상영관에서 2주동안 걸고 말았다.

◁ 해외영화제 진출로 국내 마케팅을 대신하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다른 방법이 없을까. 그래, 해외영화제 진출과 수상을 마케팅에 이용하자.

국내 먼저 초라하게 개봉하고 나서 국제영화제에 나가 보란 듯이 평가를 받아 그 분을 풀기보다는 먼저 해외영화제부터 공략하자. 순서가 달라졌다. 거꾸로다.

‘수취인 불명’이 국내에서 1만 명이란 초라한 흥행성적을 기록하고 나서야 올해 베니스영화제 본선에 나가게 됐을 때 김기덕 감독은 이런 말을 했었다.

“두번째이다. 이런 비극이. 그나마 영화제에 진출하면 비디오라도 내 영화를 사람들이 많이 보게 된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고.

해외영화제는 분명 영화에 대한 관심을 높여준다. 그것을 가장 효과적인 배급과 흥행수익으로 연결시키는 일이야말로 오늘 한국의 작고 소중한 영화의 유일한 마케팅 대안이다. 명필름이 제작한 임순례 감독의 두번째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10월 중순에 개봉을 잡았다.

영화는 이미 5월에 완성했다. 기간을 충분히 갖는다는 점에서는 일본의 영화 개봉방식과 비슷하지만, 마케팅 초점을 해외영화제 진출에 두고 있다는 것이 다르다.

스타도 없고, 요란하지 않지만 그만큼 완성도와 재미에 자신이 있다는 것이다. 벌써 6군데에서 초청을 받았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당연히 그 사실을 자랑하면서 인지도가 높아졌다. 심재명 대표는 “현재로는 최선”이라고 했다.

그러면 자연히 배급력도 커진다. 송일곤감독의 첫 장편 ‘꽃섬’도 올해 베니스 영화제장편경쟁 부문에서 처음 상영됐다. 국내개봉은 11월로 잡았다. ‘꽃섬’ 역시 디지털영화로 역시 작고 스타가 없다. 때문에 무리하게 국내 개봉을 서두르지 않고 해외영화제부터 뚫어 ‘실험성과 예술성’을 인정 받았다.

물론 그것으로 두 영화 모두 국내상영 못지않은 수익을 해외 배급으로 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또 한번 국내 관객들을 자극할 것이다. 자기나라에서 외면 받지않기 위해 남의 평가를 먼저 받고 와야만 하는 우리 예술영화의 비극.

김기덕은 그것을 “먼 길”에 비유했다. 이것도 명필름이나 세롬엔터테인먼트처럼 투자사가 돈의 여유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나마 그 먼 길이라도 돌아오겠다는 감독이 있고,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한국영화가 돈만 밝히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만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입력시간 2001/09/18 18:44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