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차세대 신무기들의 한판 승부

이창호의 '미완성의 승리- V100'⑭

첸우핑(錢宇平)-. 웬만한 바둑팬도 1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바둑가에서는 중국이 지금 한국바둑에 힘없이 이렇게 밀리고 있는 이유를 첸우핑이 없기에 생긴 현상이라고 보는 시각이 만만찮다.

10년전 세계바둑계 판도는 조훈현 서봉수 네웨이핑(攝衛平) 마샤오춘(馬曉春) 조치훈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光一) 다케미야 마사키(武宮正樹)등 한·중·일 공히 슈퍼스타를 거느리고 있었고, 그래서 3국이 실력적으로 대등한 수준으로 이미 올라와 있었다.

따라서 그 다음 세대를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를 두고 소위 세대교체 차원에서 거론되는 몇 명 유망주들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두 말이 필요 없이 이창호 유창혁이었고 중국의 첸우핑 창하오(常昊) 일본에서는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 고마츠 히데키(小松英樹)였다.

공교롭게 유창혁 요다 첸우핑은 모두 66년생으로 올해 35세를 맞이한다. 그들 중 기대대로 크지 않은 인물이 첸우핑과 고마츠이다. 고마츠는 재주가 없는 편이다. 10년 전과 10년후의 기력 차이가 워낙 벌어져서 일본 내에서도 '그렇고 그런' 기사에 속한다.

그러나 첸우핑은 지금은 완전히 바둑에 손을 떼고 산다. 확실치는 않지만 정신병이 도져 도저히 바둑활동을 하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일설에는 상사병이 나서 한국의 스튜어디스를 짝사랑한다는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상사병은 그가 지닌 정신병의 일환이며 그 상사병으로 인해 머리에 이상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그 이전부터 병력(病歷)은 갖고 있었다.

첸우핑이 제대로 자라주었으면 지금쯤 중국은 창하오와 더불어 중국 천하를 호령할 것이고 그것은 우리의 유창혁 이창호와 쌍벽을 이룰만한 위력적인 더블포스트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동양증권배 8강전에서 이창호는 그 잘 나간다는 첸우핑을 만났다. 다케미야를 이기고 올라온 첸우핑은 대단한 상승세였다. 다케미야는 당시까지 세계 랭킹 1위 기사였다. 후지쓰배를 2년 연속으로 거머쥔 명실공히 세계 랭킹 정상급기사였다. 그 세계1위의 철옹성도 첸우핑의 천재성 앞에서 녹아 내리는 고철에 지나지 않았다.

두 기사는 화점과 소목을 번갈아 두며 귀굳힘도 똑같이 이어진다. 이런 걸로 보아 첸우핑도 이창호와 마찬가지로 그 당시부터 '재미없는' 끝내기 바둑임을 알 수 있었다.

지나고 나서 바라보면 형세판단으로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득세를 하는 시절이었다. 해머 펀치나 송곳 펀치를 휘두르는 기사의 바둑이 재미는 있지만 승부에서 잘 이기지는 못한다. 따라서 이기는 바둑위주의 전법이 그때부터 득세하기 시작했다.

이 두 사람은 나날이 성장해 가는 한국과 중국의 보루였다. 따라서 8강전 4판 중 가장 관심을 끈 한판이었다. 어차피 우승이야 조훈현 다케미야 네웨이핑 등 간판스타들이 할 테지만 차세대 신무기들을 구경하기 위한 관심은 지대했다.

이창호는 대왕과 왕위를 스승 조훈현에게서 차지하여 국내 최고봉의 위용을 갖추었고 첸우핑은 후지쓰배에서 린하이펑(林海峰)을 꺾어 기세가 오를대로 올라있다. 세계무대는 사실 첸우핑이 이창호보다도 먼저 등장한 인물이다.

바둑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칸을 벌리고 지키고 두텁게 집 차지에만 나서는, 그래서 구경꾼에겐 하나도 재미없는 바둑으로 일관했다. 능기(能技)가 서로 비슷한 두 사람이었다.


[뉴스화제]



·강자 연파 '손오공' 서능욱 9단 늦바람

'손오공' 서능욱 9단이 늦바람을 타고 있다. 신예기사들의기세에 눌려 오금을 펴지도 못하는 중견기사들에게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

최근 각종 기전 본선에서 맹활약중인 서9단은 특히 속기전에서 강한 면모를 과시하고 있는데 이창호 9단, 유창혁 9단, 목진석 6단 등 기라성 같은 강자들을 연파하고 있어 화제다.

제한시간 20분의 속기기전인 제1회 KT배에서 이창호 9단을 반집으로 물리친 서9단은 또 하나의 속기전인 제20회 바둑왕전 2회전에서 지난 대회 우승자 목진석 6단을 꺾어 파란을 일으켰다. 또 9월12일에 벌어진 패자조 준준결승에서는 유창혁 9단마저 꺾어 맹렬한 기세를 타고 있다.

"속기라면 누구도 두렵지 않다.” 요즘 서능욱 9단은 이렇게 외치고 다니는 듯 하다.

입력시간 2001/09/18 19:15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