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JP 밀월시대 열리나

반 DJ협력체제 구축, 정치적 계산은 다를 수도

김영삼 전대통령과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의 밀월이 시작되는가.

YS와 JP의 회동이 결정된 9월 11일 JP는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그는 이날 자민련 경남도지부 후원회에서 “내일(12일) 김영삼 전대통령을 뵌다. 나라의 내일을 위한 여러가지 상의를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 YS가 JP와 만난다. JP의 공동정부 이탈을 계길 정치9단끼리의 회동은 내년 대선정국을 앞두고 정가의 관심을 끌기 에 충분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1992년 문민정부를 세우려는 국민들의 생각이 간절해 저는 김영삼 대통령을 옆에서 도와주고 대통령으로 모셨다”면서“ (YS가) 대통령을 잘하셨다. 외롭게 대통령을 끝마치고 지금도 (나라가) 어려울 때면 국민들을 각성시키는 말을 해 주신다”라며 YS를 한껏 치켜세웠다.

DJ에 대해선 “속이고 사는 것보다 속고 사는 것이 괜찮다”고 서운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에 비하면 최상급의 치사였다.

12일 회동은 예기치 않은 미국 테러 참사로 불발에 그쳤다. 그러나 이들이 조만간 다시 약속을 잡으리란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YS는 왜 JP를 필요로 할까

11일 회동을 제의한 쪽은 YS인 것으로 전해진다. YS가 JP에게 직접 손을 내민 계기는 자민련과 민주당의 결별이다. YS는 임동원 통일장관의 해임안이 가결되자 “JP가 역사에 남을 용단을 내렸다”고극찬했다.

특히 대북문제에 관한 한 YS는 줄곧 보수층의 대변자를 자처하며 정치권의 누구보다도 오른쪽에 서왔다.

‘햇볕정책의 전도사’인 임동원장관을 끌어내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JP를 YS가 격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가에선 정치 9단인 YS가 JP에게 보내는 우호적 제스처에는 여러가지 정치적 복선이 깔려 있다고 보고 있다. YS의 머리는 벌써 내년 말로 닥쳐온 대선을 전제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인사의 분석. “퇴임이후 지금까지 YS는 외로운 정치적 행보를 해왔다. 그는 DJ에게 끊임없이 독설을 퍼부으면서도 반DJ의 선봉에 섰던 이회창 총재 역시 거들떠 보지 않았다. 자신을 짓밟은 이 총재에 대한 앙금을 거두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JP는 다르다.

사실 그가 JP를 ‘토사구팽’했지만 이미 오랜 세월이 지났다. 그가 반DJ의 깃발을 든 이상 YS가 JP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 더욱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정치를 같이 해 온‘3김’인가. JP는 자신과도 격이 어울린다. 사실 YS 입장에선 오랜 시간 JP의 변심을 기다리고 있었을 수도 있다.”

내년 대선에서 여러가지 가능성이 남아있지만 YS가 대선정국에서 자신의 입지를 최대한 넓히려 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YS는 JP를 지금까지 와는 다른 눈으로, 즉 DJ의 협력자가 아닌 ‘반DJ’ 연합의 가장 손쉬운 파트너로 보고 있지 않을까.


JP는 왜 YS를 필요로 하는가

공동정권에서 철수한뒤 사실 JP는 정치생명을 건 도박을 하고 있다. 심지어 정가에선 “JP가 수를 내지 못한다면 JP는 물론 자민련도 시한부 인생에 접어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당장 비교섭단체로 국고지원까지 끊겼고, 자민련의 국민들에 대한 영향력은 미미하다. 내년 대선에서 자민련이 대선후보를 내지 못한다면더 이상 정당으로서의 자생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자민련에선 ‘JP대망론’이 한때 나왔지만 이 역시 공동정권을 전제로 한 이야기. 공조 붕괴 이후 JP대망론의 목소리를 자민련에서 듣기는 어렵다.

자민련의 한 인사는“우리가 살 길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이고, 그 목소리는 보수의 소리”라고 짚었다. 정가에선 JP가 가장 그리고 싶어하는 구도가 ‘보수대 연합’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YS 역시 JP에게 가장 쉽게 손을 내밀 수 있는 파트너가 될 수 있다.

그러나 JP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의 협력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지에 대한 숙제를 풀어야 한다. 발등의 불인 교섭단체 문제를 풀려면 이 총재의 도움을 얻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YS는 DJ가 내민 영수회담을 덮석 물어버린 이 총재를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

이 같은 상황 탓에 YS와 JP가 만나더라도 햇볕정책을 비판하며 ‘반DJ 협력체제 구축’ 정도의 수준에서 머물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온다.

물론 정가에선 “기로에선 JP가 좀처럼 회복기미가 보이지 않는 YS와 이 총재간의 가교역할을 하며 큰 그림을 그리지 않겠느냐”는 시각도 있다. JP가 YS회동에 이어 이회창 총재와도 접촉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문제를 풀어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YS나 JP나 상대방의 손짓하나면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분들”이라며 “두 사람은 당장 무엇을 손에 잡겠다기 보다는 언제든지 손을 잡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망하는 이회창 총재

JP와 YS의 심상찮은 움직임을 바라보는 이 총재와 한나라당 주류 그룹의 시선은 무덤덤하다. 이 총재의 한 측근의원은 “두 사람이 만나봐야 합의할 것이 있겠느냐”며“정치적으로도 그리 큰 의미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기류도그의 발언 범위내에서 크게 벗어나있지 않다. 한 관계자는 “두 사람 모두 적으로 돌릴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라며 “이 총재를 공격하지 않는 정도에서 방어를 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한나당에선 YS든 JP든 반드시 우군으로 확보해야만 대선에 이길 수 있다고 보는 분위기는 아니다.

심지어 “JP와 YS에게 손잡고 표달라는 것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도움이 되겠느냐”는 소리들도 나온다. 오히려 우리 정치사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3김’과의 차별성과 변별성을 보여주고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실제 표로 연결된다는 시각이다.

한나라당에서 JP에 대한 신중론이 제기되는 것도 이 같은 시각을 반영한 것. 정가에선 이 총재와 JP의 회동설이 계속해서 흘러나오지만 한나라당의 주류그룹에선 “아직은 때가 안됐다”고 손사래를 친다.

야당내에선 “YS는 대세론자”라며 “판이 형성이 되면 자연스럽게 그도 대세를 따라오지 않겠느냐”는 전망을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당내의 중진그룹 중에선“JP와 YS를 빨리 끌어 안아 대세론에 못을 박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아무튼 YS와 JP, 그리고 이 총재가 엮어 내는 야권의 조합은 지역연합, 보수대연합 등 이념과 지역구도 등으로 대여전선에서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점에선 이론의 여지가 없어보인다. 아직은 3인의 이해관계와 과거사 문제 등등 정리해야 할 숙제들이 많으나 뒤집어 생각하면 3인에게는 꿈틀거리는 정치공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이태희 정치부기자

입력시간 2001/09/18 19:47


이태희 정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