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3대악재 행방] 대우차 매각, 여전히 비포장길

매매 양해각서 체결 초읽기, 조건부 매각에 비난

대우차 매각은 현재 제너럴모터스(GM)와 매매 양해각서(MOU) 체결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이다. 지난 5월29일 산업은행이 본격협상 진행 사실을 발표한 이래 불과 3개월이 경과한 시점임을 감안하면, 거래의 규모와 복잡성에 비해 엄청난 ‘속도전’을 벌인 셈이다.

◁ GM은 시설 노후화, 노조문제 등을 들어 협상초기부터 부평공장 인수를 거부하고 있지만 전체 매매는 성사단계에 들어섰다. <박서강/사진부 기자>

하지만, 이 같은 ‘진전’에도 불구하고 드러나고 있는 협상 내용은 대우차와 관련된 국내의 어떤 주체도 만족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양측 협상의 동기와 입장, 대우차 처리의 절박성 같은 배경을 생각할 때, 이 같은 결과는 처음부터 예고된 것일 지도 모른다.


부평공장 매각제외, 매각 대금 1조원 남짓

정부와 채권단은 이번MOU 체결만큼은 충분한 시간을 활용하면서 협상 막바지까지 최대한 정밀하고 구체적인 문구를 합의안에 넣겠다는 입장이다.

물론 현대투신 매각의 혼란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최종적인 협상 결과는 이번 주나 다음 주중 MOU가 체결돼야 분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협상의 큰산은 대부분 넘었다”는 협상단 내외의 판단을 근거로 지금까지 나오고 있는 협상의 골자는 ‘부평공장은 일단 이번 매각대상에서 제외하고, 구체적 매매범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매각대금은 1조원 남짓일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부평공장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는 문제는 협상 초기부터 이번 협상의 성사여부를 결정지을 분수령으로 꼽혀온 문제이다.

GM은 협상 초기부터 시설 노후화 및 수익성 악화, 노조문제 등을 이유로 부평공장 인수를 거부했다. GM의 이 같은 입장은 정부와 채권단에게는 거꾸로 심각한 딜레마를 야기했다.

즉, 부평공장을 억지로 매각대상에 포함시킬 경우 GM의 ‘매각대금 후려치기’에 걸려 추후 매각 헐값시비에 휘말리게 되고, 그렇다고 부평공장을 제외하면 부평공장 노동자들이나 주변 대우차 협력업체, 인천 지역민의 격렬한 반발을 감수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건용(鄭健溶) 산업은행총재 등 채권단 관계자들이 “어떤 결론이 나와도 욕을 먹을 수 밖에 없는 게임”이라고 푸념하는 것도 이 같은 상황에 따른 것이다.

최근 나오고 있는 ‘부평공장 조건부 매매’ 구도는 이런 딜레마에 따른 ‘와일드 카드’인 셈이다. 부평공장 조건부 매매 구도는 부평공장을 이번 매각에서 일단 제외하되, 독립법인화해 향후 5~6년간 독자경영한 후 GM이 인수한다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추후 매매의 전제조건으로 가장 큰 난제인 노조문제, 적절한 수준의 구조조정 등이 이루어져야한다는 내용이 MOU에 구체적으로 명시될 전망이다.

이 같은 합의는 GM의 완강한 입장과, 대우차 처리를 늦어도 9월말(3ㆍ4분기말)까지는 해결하고 본격적인 경기부양에 들어가야만 하는 정부의 절박한 입장을 절충한‘고육지책’인 셈이다. 좋게 해석하면 부평공장의 재기를 위해 5년여의 시간이 부평공장 경영진과 현장 노동자 등에게 주어졌다는 것이고, 나쁘게 해석하면 골칫거리 문제를 다음 정부에 떠넘겼다고 볼 수 있다.

매각 대금은 부평공장처리방향과 긴밀하게 연계돼 있다. 당초 협상테이블 주변에서는 부평공장을 포함하면 3,000억원, 제외되면 1조원이란 얘기가 흘러나왔다.

물론 최종적인가격산정은 대우차 매매범위가 확정돼야 가능한 것이지만, 앞서의 분위기를 감안해서 1조2,000억원~1조5,000억원까지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물론, 이 같은 가격은 포드가 지난해 6월 제안한 70억달러(약 9조원)에 비해서도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처럼 보이고, GM 스스로 평가한 대우차 자산가치(3조7,000억원)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이다. GM은 현재 “평가 당시보다 대우차의 브랜드 가치가 하락했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협상에서 원칙적으로 매매 가능한 대우차 자산은 부평 군산 창원 등 3개 승용차 공장과 대우차 판매ㆍ대우캐피탈ㆍ대우통신 보령공장 등 국내자산과 12개 해외생산 및25개 판매법인이다

. 하지만 이번 협상에서는 부평공장을 일단 제외한 것으로 칠 때, 창원 군산 보령공장 및 대우자판과 일부 해외법인 정도로 인수범위를 좁혀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캐피탈은 제외될 것이 유력하다.


부평공장 반발 해소 및 채권단 합의가 관건

MOU협상은 마쳤으나‘갈길은 아직 멀다’는 것이 협상 주변부의 진단이다. 우선 부평공장과 인천 지역의 반발기류가 만만찮다.

인천시 관계자는 최근 “어떠한 모양새로도 부평공장이 당장 매각에서 제외된다면 노동자와 주변 협력업체 등 최소 1만1,000명이 매일 청와대앞에서 데모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며 “이는 정권차원의 문제로 비화할 것”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민주노총 관계자 역시 “(부평공장 매각 제외는) 사실상 부평공장을 시한부 청산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조건부 매매안 역시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와 채권단에게는 이제 어떤 모양새로든 부평공장의 독자생존을 지원한다는 새로운 메시지를 만들어내야할 숙제가 생긴 셈이다.

채권단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 “부평공장 독자경영을 지원하기 위해 현지 연구소의 조사연구(R&D) 기능을 지원하게 될 것”이라며 “현재 GM과 채권단이 공동으로R&D 지원 프로젝트를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원안에는 GM이나 채권단의 장기 리스 등을 통한 신차개발 지원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정도로는 다분히 감정에 기초하고 있는 반발세력을 무마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결국 정부와 채권단으로서는 일부 반발을 무마하면서 한편으로는 국민경제적 차원에서 대우차 처리의 절박성 등을 강조하는 대대적 홍보를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금융권 부채만 12조원, 국내외 전체 부채 22조3,000억원(2000년말 기준)인 대우차의 부실규모를 감안할 때, 매매가 성사돼도 국내 채권단이 받을 돈은사실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

물론 각 채권은행 등은 지난해부터 대우차 부채에 대해 80%에 가까운 대손충당금을 쌓아놓고 있어서 당장 연말 자기자본비율(BIS)에 심각한 타격을 받는 입장은 아니다.

그러나, MOU에 명시될 보다 구체적인 부채 분담 구도나, 추후 지원을 위한 출자전환 배분 문제 등에서는 각채권 금융기관 간 하이닉스반도체 못지않은 심각한 마찰과 갈등이 예상된다.

채권단 고위 관계자는 이 같은 정황에 대해 “MOU체결은 협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며 “개인적으로 어떠한 불이익과 비판도 수용하겠다는 생각으로 대우차 처리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결연한 입장을 밝혔다.

장인철 경제부기자

입력시간 2001/09/18 20:13


장인철 경제부 icja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