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세가지 '눈물'

이제 ‘911 대 참사’를 ‘테러 없는 세계’로 바꾸기 위한 큰일이 벌어진다.

그것이 ‘수술적 폭격’이건, 특수 병력에 의한 ‘대 테러 전쟁’이건 그건 21세기 전쟁의 한 모델이 된다.

비록 이 역사(役事)가 전쟁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으로 급전 한다면 그것도 역사적(歷史的)인 것이 될 것이다. 다만 이 참사를 두고 흘린 세가지 ‘눈물’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할 때 급전은 이뤄진다.

리처드 코헨은 뉴욕에 거처를 두고 워싱턴 포스트에 주 2회 칼럼을 쓰는 인기칼럼니스트다. 1976년부터 이 신문에 쓰는 칼럼은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터프한 모습과는 달리 섬세하고 세상을 따뜻하게 보는 눈길이 있다.

911 참사 때 그는 뉴욕 세계무역센터 현장부근에 있었고 숱한 이웃과 그가 사는 동네의 소방관들이 순직한 것을 알게 됐다. 그는 9월 18일자 칼럼 ‘한 국가(미국)의 눈물’에서 “9월11일 이후 얼마나 뉴욕 시내를 울고 다녔는지 기억이 없다”고 썼다.

그가 사는 동네에도 ‘현장’에서 돌아오지 않는 이웃이 있었다. 매캐한 연기 속에 야외카페에서 만나 식사하던 많은 이웃들은 “이렇게 눈물을 많이 흘린 적이 없다”고 했다.

몇몇 이웃들은 해변으로, 다른 도시로 떠나보기도 했지만 그곳에서도 무역센터의 붕괴와 치솟는 연기의 악몽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고 전화로 전해왔다. 아파트 주민들은 모여 웅성거렸다.

“여지껏 세계에서 제일 안전한 곳이 미국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 맨해튼 남쪽 아파트 마을 입주자 2명 중 1명이 실종자다. 우리는 TV 뉴스에나 그런 불행이 있는 줄 알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코헨 자신도 이런 중압감으로 해변으로 나가봤다. 하늘은 맑았으나 칼럼을 쓰기위해 접촉되는 것은 여전히 참사와 관련된 것 뿐이었다. “시간이 해결 해줄 것이다. 아직도 폭발 잔해에서 먼지와 매캐한 연기가 나는 속에 나는 눈물을 흘려야만 하고 울어야만 하는가 하는 공포를 지닌채 돌아와 정직하게 칼럼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코헨이 뉴욕의 현장에서 느끼는 ‘눈물’과 워싱턴에서 느끼는 ‘눈물’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크리스토퍼 매튜스는 샌프랜시스코 이그재미너지 워싱턴 지국장이며 NBC케이블 TV 시사프로 ‘하드볼’의 사회자다.

그의 칼럼은 허스트계 신문에 실리고 있다.1996년에는 케네디와 닉슨이란 책을 냈다. 카터 대통령의 스피치 작성자였다.

매튜스는 이번 참사를 통해 미국민은 러시아 국민이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모스크바 침공에 대항해 왜 장렬하게 싸웠는가를 알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참사가 일어난 날, 백악관 인근 성 요한 성당에서 열린 한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가 장례미사에 합류할 당시 사람들은 막 “미국은 아름다워”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선구자들의 저 아름다운 꿈은 세월이 갈수록 영원하리/ 당신 조국의 희고 매끄러운 빛나는 도시는/ ‘인간의 눈물’로 흐릿해지지 않으리”라는 구절이 그렇게 마음에 가깝게 다가왔다.

그는 노래 속에서, 그 말 속에서 고통과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려고 눈을 뜨자 눈물 대신 반짝거리는 많은 눈동자들을 볼 수 있었다.

매튜스는 결론 내리고 있다. “대학에서 나에게 러시아에 대해 가르치던 교수는 미국민은 러시아인들처럼 자기가 사는 도시를 지키려 않는다고 했다. 자 이제 미국은 자기의 도시를, 국가를 싸워 지킬만큼 나이가 들었다.” ‘미국은 아름다워’에 나오는 “‘인간의 눈물’로 흐릿해 지지 않으리”라는 대목을 참사에 대한 망연자실 대신 ‘전쟁에의 결의’, ‘조국애’로 결론 내린 것이다.

매튜스의 칼럼이나, 코헨의 칼럼을 읽어서가 아닐 것이다. CBS TV의 대표적토크 프로의 하나인 ‘늦은 밤 데이빗 리터맨 쇼’는 1주일여를 쉬고 17일 자정 이례적으로 CBS 이브닝 뉴스 앵커 댄 레더를 초대손님으로 불렀다.

리터맨은 레더에게 ‘참사의 그날 10분간 당신은 혼자서 방송했는데 그날 현장에 있었는가’라고 물었다.

레더는 참사의 배경을 설명하려다 문제의 ‘미국은 아름다워’의 가사를 읊조렸다. “당신 조국의 희고 매끄러운 빛나는 도시는/ ‘인간의 눈물’로 흐릿해지지 않으리”라는 대목에 이르자 레더는 눈물을 글썽이며 목메이다가 울음을 터트렸다.

방송은 중단 됐다. 광고가 나갔다. 또 이은 방송에서도 레더는 또 한번 울음을 터뜨려야만 했다. 코미디언 사회자인 리터맨이 위로했다. “운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요 그건 인간적인 것입니다.”

뉴욕포스트 언론비평 칼럼니스트인 에릭 페트만은 “TV 뉴스에서 앵커는 좌ㆍ우로부터 오는 온갖 뉴스를 닻과 같이 확고하게 처리하는 엄정성과 냉정성을 갖추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뉴스에 나와 울고 웃는 것은 정치적 연기일 뿐이다. 그러나 댄 레더가 운 것은 잘 한 것이다. 그만큼 국민들이 어떤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미국은 아름다워”라는 노래처럼 ‘인간의 눈물’이 ‘희고 매끄러운 도시’를 볼 수 없게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실제로 연기가 나며 붕괴되는 세계무역센터 건물은 ‘눈물’을 담고 보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눈물을 닦고 복수를 하겠다는 것과 눈을 씻고 건물을 다시 세우는 것은 다른 일이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1/09/26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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