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검찰] 불신의 늪에 빠진 檢

권력형 비리의혹의 중심에 '우뚝'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4월 취임후 처음으로 법무부에서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말고 법대로 하라는 당부였다.

그리고 9개월여가 지난 99년 1월 검찰은 대전법조비리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심재륜 대구고검장의 항명파동과 소장검사들의 연판장 파동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2001년 8월 복직한 심 고검장은 당시 ‘검찰이 정치적 사건에서 일관성이 없고 자의적인 기준에 따라 사건을 처리함으로써 국민에게 분노와 허탈감을 안겨주었다. 정권이 교체되고 세상이 바뀌어도 검찰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소리까지 듣게 됐다’고 질타했다.

그는 나아가 ‘문제는 검찰 수뇌부가 직접 지휘·감독하는 정치사건이다. 권력만을 바라보고 권력의 입맛대로 사건을 처리해 왔으며 스스로 권력의 뜻을 파악해 시녀가 되기를 자처해 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 검찰에 대한 불신이 높다. 정치검찰 시비에서 헤어나지 못한는 와중에 또다시 이용호 커넥션의 중심에 검찰이 있다는 의혹이 강하게 재기되자 검찰조직 전체가 소용돌이 휘말리고 있다.<류효진/사진부 기자>

검찰 수뇌부는 ‘뼈를 깎는 자성과 거듭나기’를 국민에게 약속하면서 파동국면을 일단 수습했다.

그리고 다시 10개월여가 지난 뒤 검찰은 옷로비의혹 사건, 언론장악 문건 사건등에 시달렸다. 옷로비의혹사건은 고위관계자들의 부인이 연루돼 처음부터 검찰의 수사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옷로비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론은 ‘실패한 로비’로 해프닝이었다는 것이었다. 짜맞추기 수사라는 비난이 쏟아졌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파업유도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건의 산물이 특별검사제였다. 검찰에 대한 불신의 결과였다.


검찰 불신 키운 잦은 재수사

그동안 잦았던 재수사는 또 어떠했나. 재수사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나 의혹사건들에서 많았다. 재수사는 이미 이뤄진 수사는 믿을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같은 사건을 두고 수사진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다른 결과는 검찰 조직에 대한 불신을 가져옴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서경원 전의원 밀입북 사건이 대표적이다. 현정권하의 수사팀이 전정권하에서 수사한 수사팀을 조사했다.

검찰조직으로서는 참담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재수사는 진실캐기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검찰의 치부를 드러내는 작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들은 정치적 사건 수사때마다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납득할 만한 결과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실날 같은 기대는 ‘역시나’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국민들은 물론 검찰 내부에서 조차 대한민국 검찰은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가 하는 자괴감이 팽배했다.

그리고 2001년 9월 현재는 어떤 상황인가. 온 나라가 G&G그룹 회장 ‘이용호 커넥션’으로 시끄럽다. 온통 의혹 투성이다.

거명되는 기관들이나 인사들은 한마디로 총체적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강물을 흐린다’고는 하지만 일련의 정황으로 볼 때 ‘한 마리’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거명되는 사람들이나 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듯하다.

물론 그것이 비리와 부정, 직무유기로 드러날 지는 두고 볼일이다. 대검중수부가 이용호 사건을 수사하고있고, 대검 감찰부가 이미 한번 이뤄진 수사 과정에서의 잘못을 가려내기 위해 자기 식구들을 감찰 하고 있다.

검찰은 나아가 사상 처음으로 특별감찰본부를 구성, 본격 수사에 나섰다. ‘의혹 꼬리자르기’가 아니냐는 시선을 갖고 있는 2야는 특검제 도입 방침을 정하고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고 있다.


정ㆍ관ㆍ검 총체적 연루 의혹

2야가 특검제 도입까지 벼르는 이유를 보자. 검찰은 내사와 자료수집 끝에 긴급체포한 이용호씨를 무혐의로 풀어주었다.

이 과정에 서울지검 특수2부와 지휘간부가 있고 그 간부에게 전화를 건 검찰총장 출신 변호사가 직ㆍ간접으로 연관돼있다.

게다가 현직 검찰총장의 동생이 이씨로부터 6,666만원을 받은 사실까지 드러났다. 검찰이 총체적 비리의혹의 소용돌이 중심에 있는 듯하다. 검찰로서는 이만 저만 곤혹스런 처지가 아닐 수 없다. 나아가 금융감독원, 국세청, 경찰, 해양수산부 등 정부 기관의 관련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 신승남 검찰총장(위)의 친동생이 이용호씨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검찰내부와 정치권의 시선이 곱지 않다.아래사진은 문제의 G&G본사 사무실<박서강·고영권/사진부 기자>

이씨와 관련 의혹이 있는 것으로 거명되고 있는 정치인들은 정ㆍ관계에 발이 넓은 것으로 알려진 전 폭력조직의 두목이 구속되자 한결같이 발뺌을 하고 있으나 상당수는 의혹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세인들은 정ㆍ관ㆍ검이 총체적으로 연루된 비리의혹 사건으로 보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씨가 로비를 벌인 20여명의 이름이 올라 있는 ‘이용호 비망록’이 있다고 주장하며 검찰을 압박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검찰 거듭나기의 기회일 수 있다. 그러나 말로만 하는 자성으로는 안된다. 국민들은 검찰이 또 기회를 차버릴 것인지를 주시하고 있다.

정치검찰 논란은 우리 현대사에 끝임없이 계속 돼왔다. ‘정치검사’들은 정치권과 줄을 대며 스스로 '권력의 시녀'이기를 자처했다. 집권자도 말로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외치면서 행동은 다른 경우가 많았다.

정치적 중립의 최소한의 장치인 검찰총장 2년 임기제가 대표적인 경우다. 김영삼 정권이나 현정권에서 임기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현 정권들어 박순용 전 총장이 2년 임기를 채웠을 뿐이다. 정치검찰 논란을 가져온 사건들은 부지기수다.


끊이지 않는 ‘정치검찰’ 논란

‘검찰총총장’이라는 비아냥을 들은 김영삼 전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역사바로 세우기 수사’는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다.

“12ㆍ12사건에 대해 성공한 내란은 처벌할 수 없다”며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렸던 검찰은 잉크가 채마르기도 전에 재수사에 착수해야 했다. 재수사는 앞의 수사결과를 뒤집었다. 곧 검찰 스스로에게는 치욕이 아닐 수 없다.

당시 검찰 내부에서 “우리는 ‘견찰(犬察)’이다”는 울분의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소위 말하는 의혹사건의 수사는 대부분 정치적 요인에 의해 왜곡돼 국민들의 궁금증을 증폭시키면서 불신만 키웠다. 99년 1월4일 자민련 이원범의원(대전 서갑)의 공천헌금 수수의혹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이 갑자기 수사중단을 선언했다.

당시 대전지검장은 정치적 파장이 워낙 커 수사를 중단한다고 설명했다. 공동정부이던 자민련은 파트너를 박살내려는 음모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당시 법무장관이 수사 책임자에게 정치감각이 없다고 질책한 것으로 알려져 국민들이 실소를 금치 못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동방금고-한빛은행 불법대출사건과 정현준-진승현 게이트에서도 갖가지 의혹이 제기됐지만 수사에서 제대로 밝혀진 것 없이 흐지부지됐다.

정치인이나 정권 실세들의 이름이 오르내린 이들 사건들 중에는 핵심 관계자들이 국외로 탈출해 국민들의 의구심을 샀다. 왜 그들의 해외도주를 막지못했느냐에 대한 불만도 함께 했다.


정치논리에 흔들리는 법과 원칙

사상 처음으로 특별검사제가 도입된 옷로비의혹 사건은 어떤가. 검찰이 재수사 소동까지 벌였지만 법원에 의해 특별검사에게 완패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사직동팀, 서울지검 특수부, 국회 청문회, 특별검사를 거쳐 이 사건의 재수사에 착수한대검 중수부는 ‘이형자씨 자작극’으로 결론 내렸다.“한점의 의혹도 남기지 않겠다”는 공언과 함께 시작된 수사의 결과였다.

그러나 법원은 검찰이 네 여인 중 유일하게 구속기소하고 가장 높은 형량(2년)을 구형한 최순영 전신동아그룹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와 그의 동생 이영기씨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김태정 전검찰총장의 부인 연정희씨, 강인덕 전통일부 장관의 부인 배정숙씨, 옷가게 주인 정일순씨에 대해선 유죄를 선고했다.

당시 검찰 내부와 법조계에서도 한결같이 “검찰이 해방 이후 최대의 위기상황에 직면한 것 같다”는 진단이 나왔다.

일부 검사들은 “98년 여름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의 수천억원 외화밀반출 사실을 밝혀냈을 때 구속했더라면 로비 필요성이 없어 옷 로비 사건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사건의 근본 원인은 법과 원칙이 아닌 정치·경제 논리로 흔들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했다.

정치적 중립성 확보 등 검찰의 거듭나기는 검찰 스스로의 의지와 실천, 대통령의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조직과제도의 보완도 필요하지만 검찰 스스로가 변화하려는 의지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해도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뒷받침도 다름아닌 의지다. 정권만 잡으면 검찰권을 정권유지에 이용하다가 정권 교체 이후에는 부메랑 효과처럼 정치보복을 당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돼 왔다. 정권차원에서 검찰을 이용하려는 족쇄를 끊어 주어야 그 같은 악순환이 없어진다.

검찰 총장 인사청문회 도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청문회를 통해 자질이 객관적으로 검증된 총장이 임명된다면 권력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국민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검찰의 인사위원회를 형식적인 심의기구에서 외부인사도 참여하는 의결기구로 개편하거나 특검제를 상설화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검사 개개인이 검찰권을 공정하게 행사하고 어떤 경우에도 부당한 외부 압력을 물리치겠다는 정신으로 무장하는 것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입력시간 2001/09/2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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