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연해의 중국통신(6)] 대만 선거의 계절 ‘口水戰’난무

대만에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10월11일 후보등록이 마감되면서 4년 임기의 입법원(국회) 의원 선거를 위한 레이스가 불꽃을 튀기고 있다. 선거일은 12월1일.

20여년만의 최악 경제불황에도 불구하고 타이베이(臺北)시는 후보들의 홍보용 깃발과 옥외 광고탑으로 숲을 이루고 있다. 이번 선거는 유례없는 격전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입법원 총의석은 지역구 176석과 비례대표 49석을 합쳐 모두 225석.

대만 내 97개 정당 중 12개 정당이 지역구 후보 325명을 내보냈고 무소속도 133명 가세했다. 지역구 후보로만 보면 당선확률은 38%. 경쟁률이 썩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선거판을 달구는 것은 경쟁률이 아니라 정치적 상황이다.

이번 선거는 지난해 반세기만에 집권당이 국민당에서 민진당으로 바뀐 이래 처음 치러지는 입법원 선거다. 국민당은 이번 선거를 정권 탈환을 위한 전환점으로 여기고 있다.

반면 집권 민진당은 원내 소수파의 한계를 벗고, 재집권의 토대를 굳힐 기회로 삼고 있다. 입법원 선거가 2004년 총통선거의 전초전으로 바뀐 것이다.

대만 입법원 선거 사상 처음으로 단독 과반정당이 불가능한 상황도 이번 선거를 격렬하게 끌고가는 요인이다. 종전까지는 국민당이 넉넉하게 과반 의석을 차지했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친민당 세력이 분가하면서 국민당이 분열한 반면, 민진당은 집권당의 프리미엄을 등에 업고 세불리기에 박차를 가해왔기 때문이다.

현재 입법원 판도는 국민당 124석, 민진당 68석, 친민당 17석, 신당 5석, 무소속 7석 등이다. 단독 과반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국민당과 민진당은 원내 제1당 자리를 놓고 사력을 다하고 있다.

국민당이 민진당의 경제실정을 집요하게 공격하는데 반해, 민진당은 경제부흥을 위해서는 ‘힘있는 집권당’이 필수적이라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상황이 상황인 만치 천쉐이비엔(陳水扁) 총통도 총통선거 당시 내세웠던 ‘당파초월 정치’ 공약을 내던진 채 지원유세에 여념이 없다. 제3당인 친민당은 케스팅 보트 역할을 자임하며 부동층을 공략하고 있다.

정계 구조변화가 걸린 만큼 이번 선거전은 초반부터 치열한 ‘코우쉐이짠(口水戰)’으로 치닫고 있다. 코우쉐이짠은 ‘코우쉐이(口水ㆍ침)’와 ‘짠(戰ㆍ전쟁)’의 합성어. 침을 튀기며 상대방을 헐뜯는 말싸움을 뜻한다.

정책은 없고 비방과 음해만 난무하는 선거전을 비유하는 말이다. 민진당은 집권당의 위치를 활용, 선거필승을 위한 중량급 카드를 내놓았다. 국민당 재산 획득과정 조사가 그것이다. 국민당이 과거 집권기간 불법으로 취득한 재>산을 실사해 국고로 환수함으로써 국민당의 자금줄을 끊겠다는 계산이다.

아울러 검은돈 추방과 매표단속을 전면에 내세워 국민당에 대한 압박강도를 높이고 있다. 여기에 가세한 것이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 리 전 총통은 국민당 지지기반 약화와 민진당 측면지원으로 현역시절보다 더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국민당에 대해서는 “(중국대륙에서 건너온)외래 정권이 당과 국가를 동일시해 왔다”고 공격하고 있다.

반면 민진당에 대해서는 “(중국과는 다른)대만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세워야 한다”며 독립노선을 지원하고 있다. 공식 실업률 6%에 육박하는 경제상황 속에서 코우쉐이짠을 바라보는 대만인들의 표정에는 정치염증이 확연하다.

상당수 대만인들은 상하이(上海)에서 개최된 아ㆍ 태경제협력체(APEC) 회의에서 대만 대표가 조기 철수한 것도 집권당의 선거전 술책으로 여기고 있다. 대만 내 반중국 여론을 자극함으로써 민진당의 독립지향적 노선에 대한 지지를 확대하려 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오너인 푸(傅)씨는 “대만은 이제 희망이 안 보인다”며 “중국대륙으로 사업을 옮길 계획을 추진중”이라고 말했다. 반세기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대만의 민주화 비용치고는 좀 비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배연해기자

입력시간 2001/11/0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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