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LP여행] 펄 씨스터즈(下)

펄씨스터즈는 69년 중반 시민회관에서 최초의 보컬듀엣 리싸이틀 <소울 카니발>을 개최하며 전국순회공연에 나서는 등 초고속 인기 가도를 내달렸다.

신중현, 키보이스 등 당시 우정출연한 가수들의 면면은 펄 자매의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가를 짐작케 해준다.

데뷔시절 교통비조로 5,000원정도를 받던 수입은 지구레코드로 소속을 옮기면서 전속료만도 50만원으로 폭등하였다. 또한 영화계와 전국각지의 공연요청은 코로나승용차를 구입해야만 스케줄을 지킬 수 있었을 만큼 끊이질 않았다.

69년12월 MBC 10대가수 청백전은 펄씨스터즈 노래인생에서 절정의 순간이었다. 이미 한국문화대상 등 10여개의 상을 휩쓸었지만 가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최고의 영예인 가수왕 등극은 놀라운 사건이었다. 정식데뷔 1년남짓만에 최정상에 군림한 가수는 전례가 없었다.

전속사를 옮긴 후, 펄은 소울사이키델릭에서 박춘석, 백영호 등의 <수탉같은 여자> <슬퍼도 떠나주마>등 스탠더드곡으로 변신하며 히트퍼레이드를 이어갔다.

이당시 KBS TV의 30분 스페셜 <패티킴 쇼>는 좋은 반응을 받던 때. 시험삼아 펄씨스터즈로 특별시간을 편성, 3차례 방영했다. 상상을 초월한 시청률에 눈이 휘둥그레진 것은 경쟁방송사인 MBC, TBC. 엄청난 개런티와 조건을 내건 전속계약 쟁탈전으로 비화되며 펄씨스터즈는 감당하기 힘든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이때 터진 <도둑 음반출시>사건. 킹레코드 소속 신중현이 작곡하고 지구레코드 소속 펄씨즈터즈가 노래한 TBC TV 일요연속극 주제가 <나팔바지-유니버샬,KLH9,70년5월>를 킹레코드의 박성배 사장은 가수와 작곡가에게 한마디 언질도 없이 출반했다.

서울을 제외하고 지방배급만을 해버린 음반이 대전공연때 우연히 레코드가게에 들른 펄자매에 의해 발각되자 음반회수여부로 법적대응설까지 나도는 등 소란스러웠다. <나팔바지>는 한국최고의 소울가수 박인수의 첫 녹음곡이라는 희소성과 거침없고 시원한 코러스로 인기가 높은 희귀음반이다.

또한 69년 명동 코스모스홀 펄,신중현 재회의 오작교 <소울파티>공연때 발표했던 10곡이 수록된 <속 님아-유니버샬,KST2,70년11월>도 주목할만한 음반. 가수왕 수상식 사진까지 수록된 볼거리와 더불어 무려 7분이 넘는 사이키델릭 사운드로 무장된 타이틀곡은 전곡에 비해 더욱 절규하는 소울색감을 뽐내며 사랑을 받았다.

71년 여름 오아시스로 또다시 전속을 옮겼다. 이번에는 허벅지가 드러나는 요염한 핫팬티를 선보이며 남성팬들의 애간장을 녹였다.

이때 발표한 윤항기곡 <별이 빛나는 밤에>는 MBC 심야음악프로와 이름이 중복되어 타 방송국의 방송거부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이때 터진 배인순과 인기가수 이상열의 염문설은 연예가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새벽 드라이브’, ‘해변 데이트’로 뜨겁게 달궈져가던 스캔들은 이상열의 짝사랑 자작극으로 밝혀졌다. 100번째 취입곡인 이봉조의 <사랑의 교실>. 입상은 못했지만 동경국제가요제 본선에 진출하는 영광을 안기며 일본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해 주었다.

72년4월, 구설수를 피해 ‘공부하러 간다’며 잠적하듯 서둘러 일본에 진출한 펄 자매는 모던발레연습과 일본의 유명작곡가 스즈끼 구니히꼬로부터 발성법을 새롭게 배우며 일본정복을 꿈꿨다.

소니 CBS와 2년 계약을 맺으며 일본엔 너무도 흔한 씨스터즈 이름 때문에 <준과 숙>으로 듀엣 명칭을 바꾸어 데뷔를 했다. 일본 데뷔음반은 <달빛에 젖은 꽃> <이젠 만날 수 없어>라는 두곡의 도너츠판이었다.

이중 <달빛에 젖은 꽃>은 5회 신주꾸가요제에서 은상에 입상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73년5월, 일본 국내 히트곡 8곡과 자신들의 오리지널 4곡을 묶어 발표한 첫 독집 <하얀 가랑비의 이야기>는 일본TV, 라디오 등의 열렬한 주목을 받았지만 정상정복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절치부심하던 펄 자매는 미국그룹 <루이스>의 권유로 캐나다와 미국 라스베이거스, 뉴욕 등으로의 진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아리랑 등 한국의 민요와 자신들의 히트곡으로 제법 관심을 끌었지만 세계의 벽은 너무 높았다.

76년10월 언니 배인순의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결혼으로 펄씨스터즈는 자동해체되었다.

동생 배인숙은 79월6월 솔로 데뷔히트곡 <누구라도 그러하듯이>를 발표하며 가능성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82년 재미동포 내과의사 한전수와 결혼을 하며 은퇴, 평범한 주부로 돌아갔다. 미모와 가창력으로 비디오가수 시대를 주도하며 가요의 세계화를 시도했던 펄씨스터즈가 남긴 음악은 여전히 나이든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짙은 향기를 내뿜고 있다.

입력시간 2001/11/01 11:26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