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노 연극인의 아름다운 연기인생

장민호의 자전적 연극 ‘그래도세상은 살 만 하다’

배우 장민호씨. 77세. 가까이서 만나면 이웃집 할아버지 같은 사람.

그러나 무대에서 그는 언제나 거듭난다. 변함없이 카랑카랑한 어쿠스틱 육성을 들려주는 한국 최고령의 현역 배우다. 갖가지 인물의 모습으로, 수없이 주역을 맡아 온 그에게만은 세월이 비껴가는 듯 싶었다. 천의 얼굴로 거듭 나오던 그가 이번에는 자신의 내면과 만난다.

극단 신화의 신작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는 유별난 작품이다. 그의 삶을 토대로 동료 극작가 이근삼씨가 썼고, 그가 출연한다. 자서전적 작품에 당사자가 출연하는, 진귀한 무대다. 힘든 시간을 거쳐 낸 노년은 진정 아름답다는 사실을 일깨워 줄 무대다.

아내와 사별 후, 서울 교외에서 홀로 살고 있는 70대 중반의 노배우 황포의 이야기다. 하루가 다르게 기억력이 떨어지고 귀마저 어둡게 되자, 그는 배우로서의 삶이 내심 불안하다.

이러던 차에, 미국서 살고 있는 외동딸은 그더러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손자 재롱이나 보라며 바다를 건너 올 것을 은근히 종용한다. 그의 말년은 망가져 가고 있다.

장단 맞추듯 꿈에서는 세상을 뜬 스승이 자꾸 보이는 나날이 계속되던 날, 황포는 실수까지 저질러 사면초가 신세가 된다.

자신을 존경하고 따르던 후배 여배우가 생신을 축하한다며 내 놓은 보청기 선물 때문에 단단히 삐친 나머지, 쫓아 버리고 만 것. 설상가상으로 다음 작품에서 맡을 역할이 주인공에서 단역으로 바뀌었다는 통보까지 받는다.

처절한 심정에 빠진 그는 ‘파우스트’의 암울한 대사를 되뇌다, 마침내 살충제를 마시려 한다. 그 순간 우연히 딴 사람의 눈에 띈 황포는 그로부터 이웃집 장애인 부부가 아이를 낳게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마음을 돌려 먹는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그날 밤 꿈 장면이 환상적이다. 먼저 세상을 뜬 스승과 동료가 나타나 저승으로 올 것을 권하지만, 그는 단호히 뿌리친다. “나는 아직도 이 세상에서 연극을 해야 해. 그동안 나를 돌봐줬던 사람들에게도 신세를 갚아야 하고.” 다음날, 그는 생의 의욕에 가득한 사람으로 거듭 나 있었다.

반전의 대목이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 연극이다. 배우 장민호씨의 힘겨웠던 최근이 짙게 투영된 때문이다.

10여년 전 사업 실패한 아들의 빚보증을 서는 바람에, 평생 모은 재산을 압류당해 충격으로 40일 동안 병원에서 생사기로를 넘나들었던 그. 그러나 가끔 무대에서 그를 만나는 객석에서는 낌새조차 차릴 수 없었다. 세월의 단련을 이겨내며 쌓여 가는 관록의 힘이란 그런 것.

이 무대는 40년 연극 동지인 원로 극작가 이근삼씨의 헌정품이기도 하다. 춥고 배고픈 연극계에서 함께 버텨 온 기억에다,객관적 자료조사 등 시간 재생 작업을 거쳐 완성된 희곡에는 구수한 말맛이 짙게 배어 있다.

‘파우스트’, ‘리어왕’, ‘맥베스’, ‘줄리어스 시저’ 등 장씨가 출연했던 전설적 무대의 명대사가 군데 군데 배어 나오는 대목에서는 삶이 곧 예술이고자 했던 노대가의 내면이 짙게 느껴진다.

“열심히 밥먹고 술마시고 열심히 사람 사귀고 열심히 사랑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지.” 꿈꾼 후, 주위 사람에게인생을 말하는 황포의 힘찬 말이다. 매일매일 되풀이되는 일에 싫증내지 말아야 한다는 그의 당부는 생의 허망함을 이겨낸 자가 줄 수 있는 최대의 교훈이다.

장민호씨와 국립극단 등지에서 오랜 세월 호흡을 맞춰 온 윤주상ㆍ김종구ㆍ김재건등 중견 배우들의 앙상블이 무대를 지긋이 눌러 준다. 김영수 연출. 10월 31일~11월 11일 동숭홀. 월~금 오후 7시 30분, 토ㆍ일 오후3시.(02)923-2131


[연극]



ㆍ 불가리아 극단 크레도 '외투' 국내공연

불가리아 극단 크레도가 대표작 ‘외투’를 국내 상연한다. 위험천만의 유령을 방면했다는 혐의를 받고 김옥에 갇힌 개 사육사 두 사람의 이야기다. 황당한 이야기를 이 극단은 상상력, 광대놀이, 즉흥 연기 등 반짝이는 연극어법을 빌어 한편의 연극으로 만들어 세계를 휘어 잡았다.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발 최고작품상(1996, 1997년), 에딘버러 페스티벌 최고상(1997년) 등에 빛나는 작품이다. 세계150여개의 연극제에 참여, 갈채를 얻은 작품이다. 11월 8~11일 문예회관소극장. 목ㆍ금 오후 7시 30분, 토 오후 4시 30분 7시, 일오후 4시 30분.(02)764-8761


[콘서트]



ㆍ 베르디 오페라 '가면 무도회'

아리아와 중창의 향연 , 베르디의 오페라 ‘가면 무도회’가 펼쳐진다. 예술의전당이 제작한 이 작품은 정치적 암살 사건 속에, 음모ㆍ사랑ㆍ권력 등의 소재를풀어낸 대서사시다. 정치적 소재에다 비극적 내용을 주조로 가볍고 환상적인 요소를 가미, 사랑만을 노래하던 종래 이탈리아 낭만주의 오페라의 틀과관습을 벗어난 작품이다.

이 무대는 특히 조총련계 지휘자 김홍재씨가 펼쳐낼 특유의 화려한 선율에 큰 관심이 모아진다.

자신의 부정을 의심하는 남편에게 부르는 애절한 아리아 ‘죽기 전에 한번만이라도 아들을’을 비롯, 3중창 ‘도시인들 몇몇은 얼간이여’, 4중창 ‘너 빛나는 뮤즈의 신이여’ 등 다양한 형식의 중창을 감상할 수 있다.

이소영 연출, 워렌목 김혜진 강형규 등 출연. 31~11월 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평일ㆍ토 오후 7시 30분, 일 오후 4시.(02)580-1130


ㆍ 이예찬 바이올린 연주회

현대음악에 강한 바이올린 주자 이예찬씨가 다양한 장르의 곡을 한 무대에 녹여 낸다. 세계적 명성의 러시아 작곡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의‘‘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외줄타는 사람’을 국내 초연한다.

작곡가 김성기씨의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모노로그’와 또 여류 작곡가 이혜성의‘바이올린과 가얏고를 위한 다름’은 초연이다. 11월 11일 오후 3시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02)583-6295


[전시]



ㆍ 원인종 '산' 전

산(山)의 작가 원인종씨가 근작 전시회를 갖는다. 흙과 금속을 재료로 해 산의 이미지를 사실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알루미늄,철, 쇠못 등을 사용한 전시물은 일견 산의 자연주의적 모형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는 산의 등고선 지도를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한다. 산의 주름과 높이가 3D(차원) 이미지처럼 생생하게 재현된 이 작품들은 산의 본질에 닿아 있다.

‘나는 치악산이 손닿을 듯한 원주에서 태어나 성장했다…산은 나로 하여금 자연이 내포하고 있는 아득한 공간감, 시간성, 거대한 질량감을 깨닫게 해주었다’ 고 그는 작가 노트에서 밝혔다. 작품은 ‘3개의 관악산’,‘청계산’, ‘몸-산’ 등이다. 11월 4일까지 선화랑.(02)734-0485


[가요]



ㆍ 김세레나 데뷔 35주년 기념콘서트

‘갑돌이와 갑순이’ㆍ‘새타령’의 가수 김세레나(52ㆍ본명 김희숙)가 데뷔 35주년을 맞는다. 그가 기념 콘서트 ‘나의 인생, 나의 노래’를 펼친다. 춤과 가야금 병창 등 민요 관련 기예를 두루 익힌 그에게 붙여진 ‘민요의 여왕’이란 호칭은 당연한 것이다.

최근 발매한 앨범 기념 공연의 뜻도 함께 한다. ‘삼천리가 열린 세상’, ‘무정한 사람’ 등이 특히 인기를 끌고 있다. ‘까투리 타령’, ‘만고강산’ 등 왕년의 히트곡도 국악ㆍ양악 30인 밴드와 20인 무용단의 율동에 실려 온다. 11월 24일 오후 6시, 25일 오후 3시ㆍ6시 30분 세종문화회관대극장.(02)337-8474

장병욱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11/05 18:54


장병욱 주간한국부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