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 충북 충주시 신니면 동락(同樂)

충북 음성군과 중원군의 경계를 이루는 곳에 차령산맥 줄기의 한 자락인 가섭산(迦葉山ㆍ710m)이 자리하고 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우리 국군은 아무런 전쟁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졸지에 당하는 변이라, 전쟁이 발발한지 사흘만에 수도 서울을 적에게 내주는 등 계속 밀리기만 했다.

그러나 후퇴를 거듭하던 아군에게 최초의 승전보를 안겨준 전투가 바로 이곳 가섭산을 끼고 있는 무극리(無極里)전투였다. 그리고 그 다음의 승전고는 경북 상주고을의 화령장(化寧場)전투라고 한국전사는 쓰고 있다.

무극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두 주역이 있다. 한 분은 당시 국군 제7연대 2대 대장 김종수(金鍾洙) 소령과 또 한분은 가섭산 기슭 신니(薪尼), 동락(同樂) 초등학교 김재옥(金在玉) 여교사 이다.

당시 북한 예비사단인 15사단(사단장 朴成哲) 48연대는 장호원에서 남하를 계속하고 있었다. 같은해 7월7일 적군은 신장리를 거쳐 충주를 공략하기 직전에 있었다.

한편, 7월6일 아군은 상부로부터 가섭산을 확보하라는 명을 받고 7연대 2대 대장 김종수 소령은 가섭산에서 부용산을 잇는 644고지에 매복하고 있었다. 적 48연대는 국군이 무극리에서 음성 방면으로 퇴각한 것으로 잘못 판단해 중원 신니 동락초등학교에 집결, 마음놓고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국군이 또 퇴각할 기미가 보였는지 당시 동락초등학교 여교사 였던 김재옥선생은 교사라는 신분으로 학교 출입이 자유로웠던 터라,… 정확한 적정을 파악하여 가섭산속에 매복해 있는 김종수 소령에게 찾아와 ‘왜 국군이 싸울 생각은 않고 후퇴만 하는가? 우리국민이 믿는 것은 오직 국군 뿐인데’ 하며 적의 동태를 제보했다.

마침내 김종수 소령은 상부의 지시를 받을 겨를도 없이 작전을 결심하기에 이르렸다. 김종수 소령이 지휘하는 제 5.6.7중대는 적진 3면을 완전 포위하여 7월6일 오전 5시에 새벽의 짙은 안개속을 깨뜨리는 일제 공격을 개시했다.

결과는 국군 1개 대대병력으로 북괴군 2개 연대를 섬멸한 것이었다. 적사살 800명, 포로 90명, 차량노획 60대, 박격포 35문, 소총 1,000정등 엄청난 전과였다. 아군은 단 1명의 부상자를 냈을 뿐이었다. 실로 한국전쟁 발발이래 최대의 전과를 올렸고 후퇴만 거듭하던 국군에게 큰 사기를 안겨 주었다.

숨은 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이 김재옥 여교사였다.

그 뒤, 세월은 흘러, 당시 대대장 김종수 소령은 중장으로 예편, 1960년에는‘전쟁과 여고사’라는 책을 냈는데, 그 내용이 한때 초등학교 반공교재로 쓰였을 정도였다.

여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여교사는 바로 김재옥 교사를 말한다. 이런 인연으로 김교사는 당시의 한장교였던 군인과 결혼,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1963년 12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고재봉사건’ 때 병기대대장으로 있던 남편과 함께 일가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만다.

지금 중원군 가섭산 기슭 동락초등학교 교정에는 김재옥 여교사를 기리는 현충탑이 세워져 있어, 당시를 웅변해 주고 있다.

이름 그대로 김 교사 부부는 한 때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동락’을 이루었다. 지금은 ‘동락’초등학교 교정에 그 녀의 공을 기리는 충현탑에 아로새겨져 겨레의 가슴속에 길이 ‘동락’ 할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홍환 한국땅이름학회 이사

입력시간 2001/11/06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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