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영화세상] 태국영화를 아십니까

태국영화라고? “아니, 태국에도 영화가 있냐”고 반문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영화에 좀더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얼마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개봉한 태국영화 ‘방콕 데인저러스’를 기억할 것이다.

쌍둥이 형제인 옥사이드 팡과 대니 팡이 공동 연출했다. 고아이자 농아인 콩이 주인공이다. 그의 직업은 살인청부업자. 냉정한 킬러로 유명한 그는 어느날 약국에서 일하는 여자 퐁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데이트 도중 콩이 퐁에게 추근대는 남자들을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퐁은 그를 멀리한다. 콩은 절친한 친구인 조와 그의 여인이 조직폭력배에게 살해당하자 복수를 시작한다.

도시 뒷골목의 희망 없는 젊은이들의 자화상을 그린 ‘방콕…’은 액션 느와르이다. 현란한 화면과 푸른 색조, 흔들리는 화면과 극단적인 클로즈 업, 점프컷에 CF 냄새도 강하다. 다분히 신세대 감각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무척 낯익다. 어, 이거 홍콩영화 아니야? 부천영화제는 이 영화를 초청하면서 ‘80년대식 홍콩액션의 태국적 부활’이라고 묘사했다. 맞다. 왕자웨이 냄새가 난다.

홍콩영화에서 시작해 유행처럼 한국을 거쳐간 것들이다. 아직은 독창적 미학을 거론하기에는 시기상조인 ‘홍콩영화의 모방 단계’인 셈이다.

그러나 바로 그 속에 태국영화의 미래와 희망이 있다. 그런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다름아닌 90년대 후반에 등장한 젊고 유능한 뮤직비디오와 CF 출신의 감독이고, 해외에서 그들을 주목하고 있으며, 그들의 흥행 성공이 새로운 영화자본이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영화도 불과 몇 년 전에는 그랬으니, 그 과정을 생각하면 태국이 일본, 홍콩, 대만, 이란, 한국에 이어 아시아 영화의 또 하나의 강국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태국 역시 연간 100여편에 달하던 자국영화가 9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20편으로까지 줄었다.

전근대적 제작시스템, 정부의 지나친 통제 속에서 암울하던 태국영화. 그러나 1997년 3명의 신인 감독(논지니미부트르, 옥사이드 팡, 펜엑 나타나루앙)의 등장으로 화려한 부활을 시도했다.

논지 니미부트르는 데뷔작 ‘댕버럴리와 그 일당들’로 기존 타이영화의 흥행기록을 깼고, 99년에는 한국의 ‘쉬리’처럼 ‘낭낙’으로 ‘타이타닉’을 침몰시켰다. ‘방콕데인저러스’ 역시 토론토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위시트 사사나티엥의 ‘검은 호랑이의 눈물’과 함께 20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지난해에도 태국은 용유스 통콘턴의 ‘철의 여인들’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제치고 최고 흥행작을 기록했고, 그 결과 97년 12%였던 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올해는 20%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태국영화는 과거 청소년영화에서 탈피해 다양한 장르를 추구하고 있으며, 같은 이야기라도 전혀 다른 해석과 감각으로 제작되고 있으며, 투자의 확대는 중견 감독들의 부활까지 유도하고 있다.

그 태국영화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11월9~17일)에 대거 초청됐다. ‘방라잔’(감독 타니트 지트나쿤), ‘골 클럽’(감독 키티코른 레오 리와우시라콘), ‘잔다라’(감독 논지 니미부트르), ‘킬러 타투’(감독 유틀럿 시파팍), ‘달 사냥꾼’(감독 반디트 리타콘), ‘수리요타이’(감독 차트리찰레름 유콘), ‘통을 찾아서’(감독 티라톤 시리푼바라폰)등 장편 7편과 단편 4편. ‘타이영화의 힘, 뉴 타이영화와의 근접 조우’란 특별전을 마련한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이렇게 설명했다.

“태국영화를 주목할필요가 있다. ‘제2의 한국’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영화의 창’인 부산영화제가 창을 활짝 열고 준비한 태국영화의 오늘과 내일. 할리우드와 유럽영화에서 잠시 시선을 거두고 우리에게는 미지였던, 그러나 우리의 뒤를 쫓고 있는 그들과의 조우를 즐겨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아닐까.

<사진설명> 태국영화 ‘달 사냥꾼’. 1973년학생운동의 리더였던 섹산을 주인공으로 한 정치실화극이다.

이대현 문화과학부 차장

입력시간 2001/11/07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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