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軍

FX 업 등 무기 현대화 계획 보류 또는 백지화 움직임

국방부가 야심차게 추진해온 대형 무기도입 사업들이 김대중 정권의 레임덕과 맞물려 크게 흔들리고 있다.

올해 착수키로 했던 대부분의 사업들이 내년으로 연기되고, 일부 사업은 예산압박으로 수년이상 연기 또는 백지화 가능성까지 흘러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군내에서는 내년이 정권 마지막 임기인데다 대통령 선거 등 정치적 일정 관계로 이들 사업이 결국 차기정권으로 넘어갈 것으로 내다보는 분석도 유력하게 나오고 있다.

군이 올해 또는 내년에 착수키로 한 무기도입 사업은 총 10조원이 넘는다. 건군이래최대 규모다. 차세대 전투기(F-X)사업은 올해 착수해 2008년까지 4조2,000억원의 예산을 들여 40대의 전투기를 도입한다는 계획으로 미국보잉사의 F-15K, 프랑스 다소사의 라팔, 유럽4개국의 유로파이터, 러시아의 Su-25기가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군 전력 증강 계획에 큰 차질

육군의 대형 공격형 헬기(AH-X) 도입 사업은 올해부터 2008년까지 2조1,000억원의 예산으로 공격형 헬기 36대를 구입한다는 목표로 미 보잉사와 벨사, 러시아의 키모프사가 접전 중이다.

또 차기대공미사일(SAM-X)도입사업은 올해부터 2009년까지 2조4,000억원을 들여 미사일 48기를 전력화한다는 계획으로 단독 입찰한 미국 레이시온사와 가격 협상이 진행중이다.

해군의 이지스급 한국형 구축함(KDX-Ⅲ)사업은 2001~2008년까지 1조원을 투입, 이지스체계를 갖춘 7,000톤급의 구축함을 건조하는 계획으로 아직 이지스 시스템의 입찰은 실시하지 않은 상황이다. 공중조기경보통제기(E-X) 도입 사업은 내년에 착수, 2009년까지 4대를 확보한다는 목표로 1조8,00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 같은 군 전력증강 사업 중 현재 당초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KDX-Ⅲ 사업뿐이다. KDX-Ⅲ의 경우 올해는 50여 억원의 예산으로 구축함 설계작업에 들어가는 기초단계로 아직 이지스체계에 대한 입찰을 실시하지 않아 별 잡음이 발생할 소지가 없다.

나머지는 모두 협상 지연과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기종 선정작업이 계속 늦춰지고 있어 올해 착수는 사실상 물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F-X사업은 10월 19일 국방부 고위관계자가 “연말까지 최적기종을 선정한다는 목표이지만 시한을 못박아 추진하다 보면 불명확한 계약이 이뤄질 수 있다”면서 “우리 군의 요구조건이 맞지 않을 경우 연말을 넘길 가능성도 있다”고 말해 내년 연기 가능성을 강력 시사했다.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F-X사업의 내년 연기를 직접 언급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국방부는 이어 11월 1일에는 AH-X사업이 협상 지연으로 난항을 겪자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 중인 한국형 다목적 헬기(KMH)를 우선 생산, 전력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AH-X사업과 우선 순위를 놓고 논란을 빚었던 KMH의 우선 생산 검토지시는 AH-X의 연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SAM-X사업도 레이시온사와 가격에 대한 이견으로 협상이 진척되지 않아 올해 안 타결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내년에 사업을 착수할 예정이었던 E-X사업 역시 예산압박으로 사업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착수시기를 2007년으로 미루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잡음 우려, 차기정권으로 넘길 듯

문제는 이들 무기도입 사업이 올해 안에 이루어지지 못하면 내년에도 착수가 어렵다는 점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레임덕이 조기에 찾아오면서 결정을 미루고 있는 정권과 군 수뇌부가 각종 선거와 대통령 임기 마지막인 내년에 말썽소지가 많은 무기 기종선정을 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다.

내년은 6월 지방자치단체장선거와 월드컵대회, 대통령 선거 등 정치일정이 잡혀 있어 각종 비리의혹 사건으로 위기에 몰린 현 정권 입장에선 각종 잡음을 최소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따라서 한 사업 당 1조원 이상 드는 무기도입사업을 아무리 투명하게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야당이 선거전략 차원에서 물고 들어갈 것이 명약관화한 만큼 차기 정권으로 넘겨 부담을 최소화하려 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군수뇌부도 마찬가지다. 군은 이미 김영삼 정권 시절 전력증강을 위한 율곡사업비리로 군 전체가 위기에 빠지는 호된 경험을 당한 적이 있다. 때문에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장관 입장에선 지금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잠시 욕을 먹지만, 잘못 결정을 내리면 ‘청문회’에 불려가 곤혹을 치룰 수 있는 만큼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F-X 기종선정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업계에선 외국 업체들의 로비 및 정치자금 제공설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더욱이 보잉사가 최근 미국의 차세대 통합타격기(JSF)수주전에서 록히드 마틴사에게 패배, F-X사업에 전력을 쏟을 게 분명한만큼 로비전은 더욱 치열해지고, 혼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보잉사는 자사와 관계가 없는, KAI와 록히드 마틴이 개발한 국내 최초의 초음속 고등훈련기(T-50)출고식에 대한 축하 광고를 언론에 게재, 빈축을 산 것도 이 같은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F-X 사업은 현재 보잉의 F-15K와 프랑스라팔이 유력한 후보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신인도 추락, 군 반발등 부작용도

그러나 무기도입 사업이 차기 정권으로 넘어가면 우리나라의 국제적 신인도 추락과 도입 비용상승은 물론 군 전력 증강 차질과 각 군의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키는등 부작용이 만만찮다.

이미 공군과 육군은 국방부의 연기가능성 시사에 공공연하게 반발하고 있다. 공군은 “F-4 팬텀 등 노후기종으로 사고가 빈발하고있는 상황에서 F-X사업마저 차기정권으로 넘길 경우 동북아를 겨냥한 전략 공군 육성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며 국방부의 사업 연기에 반기를 들고 있다.

공군이 11월 1~2일 역대참모총장을 초청, ‘정책자문회의’를 개최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받아들여진다.

육군도 “국방부가 한국형 다목적 헬기(KMH)를 우선하려는 것은 육군의 숙원사업인 AH-X 도입사업을 폐기할 의도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며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김 대통령과 군 수뇌부가 어떤 묘수로 ‘시한폭탄’인 무기도입 사업을 풀어갈 지 주목된다.

<사진설명> ·2008년까지 4조원을 들여 40대의 전투기를 도입하려던 계획이 올해를 넘기게됐다. 사진은 fx사업의 경쟁기종인 라팔과 유로파이터, F-15k.

·한국항공우주산업과 독히드 마틴이 공동 개발한 국내 최초의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FX사업의 연기움직임이 보이는 가운데 출고 되었다.

권혁범 사회부기자

입력시간 2001/11/08 17:30


권혁범 사회부 hbkwo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