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 특정 연기자들 '그룹'형성 메너리즘 위험성도

10월 31일 SBS 회의실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11월 3일 시작된 SBS 새주말 연속극의 시사회에는 박선영 지성 류승범 공효진 등 출연진과 좀처럼 공식석상에 자리 하지 않던 작가 노희경이 얼굴을 내밀었다.

박선영은 시사회가 끝난 후 “노희경 작가님 작품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하겠다. 노 작가님의 작품은 따뜻한 인간애가 있고 메시지가 있어 좋다. 시청률은 나중 문제다”라며“앞으로도 노 작가님의 작품에 출연할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출연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연기자들중에는 특정 작가의 작품에 출연을 원하거나 계속 출연해 특정 작가와 연기자 군이 형성되고 있다.


흥행 보증수표 인식, 특정인 선호

가장 뚜렸하게 연기자군을 형성하는 작가는 김수현이다. ‘사랑이 뭐길래’ ‘사랑과 진실’ ‘청춘의 덫’ 등 인기 드라마 작가로 명성을 날리며 30여년 드라마 극본을 써오고 있는 김수현의 작품에자주 만날 수 있는 중견 탤런트로 윤여정 이순재 강부자 이경영 남성훈 원미경 배종옥 등이며 젊은 탤런트로는 이영애 조민수 등이다.

김수현의 극본 특징은 상세한 지문과 연기 지시를 일일이 표시하는 것이다. 그만큼 연기자의 연기 해석 폭이 좁아짐에도 불구하고 많은 연기자들이 그의 작품에 출연하는 것은 ‘흥행 보증수표’라는 꼬리표가 붙기 때문이다. 김수현의 작품에 나오면 연기자가 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앞다투어 출연을 원하고 있다.

‘파도’ ‘전원일기’ ‘그 여자네 집’의 작가로 잘 알려진 김정수의 작품에는 최불암 이정길 박근형 김영애씨가 단골 출연하고 젊은 연기자중에는 차인표가 대표적이다.

차인표가 영화 ‘아이언 팜’의 촬영 일정을 미루고 최근 끝난 ‘그여자네 집’에 합류한 것은 순전히 작가 김정수 때문이었다. 차인표는 “ ‘그대 그리고 나’작업을 할 때 처음 김정수 선생님을 만났지요. 인간적으로 너무 좋고 연기자의 의견을 대폭 수용해 작업을 편하게 했을뿐만 아니라 작품에 사람냄새가 짙게 배어 있어 좋습니다”고 말했다.

‘은실이’ ‘지평선 너머’의 작가 이금림의 작품에도 단골로 출연하는 연기자들이있다. 특히 반효정과 박근형은 이 작가의 데뷔작에서부터 최근 작품까지 거의 출연하는 등 끈끈한 정을 이어가고 있다.

이금림은 “반효정씨의 경우 초보 작가일 때부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고운정 미운정이 다들어 이제는 반효정씨를 염두에 둔 캐릭터를 생각하고 극본을 쓸 정도”라고 설명한다.

김혜리와 유동근은 ‘용의눈물’ ‘태조 왕건’의 작가 이환경의 드라마에 비교적 자주 출연하는 편에 속하는 탤런트다.

최완규 노희경 박예랑 등 젊은 작가들도 자신들의 작품에 자주 출연시키는 배우들을 갖고 있다. 최완규는 ‘야망의 전설’에 출연했던 최수종을 선호하고, 노희경은 박원숙 배종옥을, 박예랑은 임현식을 자주 출연시킨다.

이처럼 특정 작가와 연기자 군이 형성된 것은 일부 유명작가에 해당되는 현상이다. 요즘 연기자들은 매체가 다양해지고 출연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선택할 작품도 많아졌다. 연기자 중에는 자신을 뜨게 하는 작가는 따로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캐스팅을 하는 사람은 PD, 방송사 책임 연출자(CP), 작가이다. MBC 드라마국 이재갑 부국장은 “요즘작가들이 일부 연기자를 염두에 두고 극본을 쓰는 경우가 많아 작가들의 캐스팅 폭을 늘렸다. 그래서 작가와 호흡이 잘 맞는 그룹이 형성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비슷한 케릭터, 식상한 연기 보여주기도

이렇게 특정 작가와 연기자군이 형성되면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현상이 드러나고 있다. 특정 작가를 만나 뜨는 연기자가 있는가 하면 ‘그 밥에 그 나물’처럼 특정작가의 작품에 나오면서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연기를 하는 탤런트가 있다.

최근 ‘그 여자네 집’에서 가장 인기를 얻은 김남주는 “앞으로 김정수 작가 작품에 출연하겠다. 내 실생활과 성격을 잘 알고 캐릭터를 살려줘서 높은 인기를 누린 것 같다. 김정수 선생님에게 욕먹지 않게 최선의 연기를 하겠다”고 말했다.

김수현 작품에 자주 출연하는 이경영과 조민수는 늘 봐왔던 연기를 반복하고 있어 시청자들에게 적잖은 부담감을 준다. 이에 대해 방송가 사람들은 “특정한 작가의 작품에 주로 출연하다보면 작가가 요구하는 색깔의 연기만을 하게 된다. 이것이 특정 작가와 연기자 군의 형성에 가장 큰 폐단이다”고 지적한다.

앞으로 형성될 특정 작가와 연기자군도 있다. ‘진실’ ‘맛있는 청혼’의 작가 김인영은 앞으로 소유진이나 손예진을 기용하겠다고 했고 ‘사랑은 아무나 하나’와 ‘선희 진희’의 작가 김진숙 역시 손예진을 가급적 출연시켰으면 한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특정 감독과 특정 연기자군에 이어 형성된 특정작가와 특정 연기자 군이 드라마 영화 시트콤등 대중문화 발전에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배국남 문화부기자

입력시간 2001/11/09 11:01


배국남 문화부 kn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