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양평의 저녁놀 여행

첫 추위로 마음부터 게을러졌다. 바깥으로 나가기 보다는 자꾸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멋진 풍광도 구경하면서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따끈한 차를 마시는 나들이. 이맘때의 여행 테마로 제격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서울서 가까운 곳이 있다.

팔당호와 남북한강의 합수머리를 둘러싼 곳 전체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 양평군, 남양주시, 광주군, 하남시가 포함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곳을 그냥 ‘양평’이라고 부른다. 서울시민의 인기 있는 휴식공간이다. 가깝고, 다양하고, 편안하고, 맛있다. 아름다운 낙조와도 만날 수 있다.

두 줄기의 큰 물이 만나는 이 곳은 땅의 기운과 물의 기운이 용솟음치는 곳이다. 구석구석 그 의미를 담은 곳이 많다. 지금은 옛 길의 귀퉁이에 내몰려 있거나, 인적 드문 골짜기에서 쓸쓸함을 달래고 있다. 양평 가는 길, 네온의 불빛이 아니라 그 속살을 찾는 것은 어떨까.

다산 정약용은 재주만큼이나 깊은 시련의 생을 산 사람이다. 그래서 그를 생각하면 오랜 유배생활을 했던 전남 강진이 떠오른다. 강진에 다산초당을 짓고 집필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산은 삶의 처음과 끝을 이 곳 강변에서 했고, 여전히 이 곳 언덕에 누워 있다.

그의 고향은 남양주시 조안면 마현마을. 고즈넉한 마을에 그의 생가가 있다. 여유당이라 불리는 생가는 홍수에 떠내려갔는데 1975년 본래의 모습대로 복원 됐다. 생가 왼편 계단으로 오르면 그의 묘와 만난다.

명성에 걸맞지 않는 소박한 묘다. 멀리 팔당호를 바라보고 있다. 예전에는 호수가 아니라 굵은 강물이었을게다. 강진의 다산초당이 왜 강진만의 푸른 물결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팔당호를 굽어볼 수 있는 산속의 명소가있다. 운길산 중턱에 자리한 수종사이다. 마현 마을에서 45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양수리 직전 진중 삼거리에서 좌회전해 약300㎙를 더 가면 왼쪽으로 ‘수종사 입구’라는 입간판이 서 있다.

승용차로 절 입구까지 갈 수 있지만 짧은 산행이 제격이다. 빠른 걸음이면 30분, 늦은 걸음으로는 1시간 정도 걸린다. 낙엽 밟는 소리를 벗하면 힘든 줄 모른다. 이 절에는 내력이있다.

조선 세조가 인근에서 머물렀는데 밤새 기이한 종소리를 들었다. 종소리는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였고 그 옆 바위굴에는 16 나한이 앉아있었다. 세조는 그 터에 절을 짓고 수종사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수종사에서 내려다 보는 팔당호의 풍광은 가히 일품이다. 특히 이른 아침이나 오후 어스름이 좋다. 물안개가 아침 햇살에 흩어지는 모습, 거대한 수면이 낙조의 붉은 빛을 머금고 있는 풍경에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두 강물이 만나는 두물머리를 빼놓을 수 없다. 외진 곳에 붙어 있어서 찾기가 쉽지 않다. 양수대교를 지나면 왼쪽으로 양수리 시외버스 터미널이 보이고 반대편으로 우회전 길이 뚫려있다.

‘한강수질검사소’라는 표지가 눈에 가장 잘띈다. 승용차 두대가 겨우 교행할 만한 시멘트 포장길을 2분정도 달리면 왼쪽으로 두물머리의 상징인 느티나무가 보인다. 지금은 거의 잎을 떨궜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이 곳은 드라마는 물론 각종 CF의 무대가 되고 있다. 봄 가을이면 예비 부부들이 야외 촬영을 하느라 북새통을 이루기도 한다. 두 물이 하나되어 흐르듯 두 인생이 하나됨을 의미하는 곳이라면서.

<사진설명> 양수리쪽에서 바라본 팔당호. 아름다운 저녁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권오현 문화과학부차장

입력시간 2001/11/13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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