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풍향계] 정국은 정치실험 리트머스

2개의 정치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여당 총재직을 사퇴하고 정치와 국정 분리선언을 하면서 시작된 실험들이다.

먼저 김 대통령은 행정수반으로서 민주당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국정에 전념하는 실험에 착수했다.

또 하나의 실험 주체는 민주당이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집권당의 총재인 대통령이 차기 대선후보가 결정되기 전에 총재직을 내놓은 상태에서 민주당 스스로 당을 추스르고 경쟁력 있는 대선후보를 만들어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김대통령 현실정치 초연, 국정 전념의지

이번 주간을 포함해서 당분간은 이 두 실험을 위한 기초작업이 이뤄지는 기간이 될 것 같다. 김 대통령은 11월12일 국무회의에서 “앞으로 흔들림 없이 국정에 전념하겠다”고 국정 전념의지를 다진 뒤 심혈을 기울일 3대 과제와 4대 행사를 적시했다.

3대 과제는 경쟁력강화, 민생안정 실현, 남북관계 개선 등이고 4대 행사는 월드컵 축구대회, 부산 아시안게임 및 아ㆍ태 장애인 경기대회, 지방선거, 17대대선을 지칭한다.

김 대통령은 최근 육군참모총장과 경찰청장 인사에서 호남출신을 배제하고 각각 경남출신과 충남 출신을 발탁함으로써, 논란이 돼온 호남편중인사 시정에도 시동을 걸지않았느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민주당은 11월11일 조세형 상임고문을 위원장으로 하는 특대위(당 발전과 쇄신을 위한 특별대책기구)를 발족시킨 데 이어 다음날인 12일 당직개편을 단행했다. 10ㆍ25 재보선패배 후 책임소재를 놓고 빚어졌던 극심한 당내 갈등을 수습하고 김 대통령 총재직 사퇴 이후 당을 이끌어갈 과도체제가 일단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두 실험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김 대통령이 현실 정치에 초연해서 국정에 전념할 경우 임기 말 국정안정을 기할 수 있고 경제난 극복과 남북관계개선 등 국가적 현안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견해가 있다.

또 민주당은 다양한 당내 이해관계를 조정해서 새로운 리더십을 창출하고 나아가 정당민주주의를 진일보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맞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녹록치않다. 우선 김 대통령의 경우 민주당의 당내 정치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법안 처리 등 국정수행에 필요한 여야 정치권의 협력을 이끌어 낸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김 대통령은 10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앞으로 청와대는 정치문제 개입을 자제하고 정당간 협력은 여야 모두의 협력을 얻는 초당적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대권게임이 가열되는 과정에서 김심(金心) 작용 논란이 김 대통령의 의지와 상관없이 빚어질 개연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김 대통령이 정말로 차기후보문제에 대해 마음을 비웠느냐는 점을 의심하는 시각도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한나라당의 변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초당적 국정협조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당 정체성에 관련된 정책의 경우 견제가 불가피하고 대선 전략 차원에서 김 대통령의 주요정책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나설 가능성이 높다.

김 대통령은 이 같은 장벽을 넘기 위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의 회동을 추진하고 있으나 이총재측은 군소 정당과는 다른 예우보장을 요구하는 등 벌써부터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비해 김종필 총재는 DJP공조 파기 후 김 대통령과 마주치는 것조차 기피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DJ와 못 만날 이유가 없다”고 다소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직사회 레임덕현상 가속화 될 가능성도

공직사회가 김 대통령의 국정드라이브에 순순히 따라줄 것인지도 문제다. 김 대통령의 임기 말을 맞아 정보유출 무사안일 대선주자 줄서기 등 전형적인 레임덕 현상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김 대통령이 공직사회의 기강을 어떻게 다잡아 국정수행의 에너지를 이끌어낼지 주목된다.

민주당이 처하고 있는 상황도 쉽지 않다. 특대위는 전당대회 시기와 대선후보 선출시기, 대의원 수 증원 등 경선 규칙 보안 등 대선주자들 간 첨예한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들을 처리해야 한다. 당 안팎의 관심을 모았던 특대위 구성 자체는 계파색을 최대한 배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대위의 위상과 권한을 결정하는 과정도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러나 특대위가 전체적으로 한광옥 대표가 주도하는 범주류의 기반인 중도개혁포럼(대표 정균환)과 초재선의원들이 주도하는쇄신파의 대립구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노무현 상임고문이 지방을 순회하면서 선두주자인 이인제 상임고문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이는 등 주자들 간 신경전이 가열되고 있어 이런 분위기가 특대위의 운영과정에 투영될 경우 당내 단합이 크게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이계성 정치부차장

입력시간 2001/11/13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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